건강상식

체내 지방 녹인다는 석류즙 실험, 믿을 수 있나

해암도 2019. 3. 26. 21:13

[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30)  

비만이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통계에 따르면 비만한 사람은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의 발병위험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2배 이상 높다고 한다. 성인병뿐만 아니라 다양한 암의 발병 확률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온갖 다이어트법이 끝도 없이 등장하고 그 시장만도 수천억 원에 달한다. 인간의 날씬해지기 위한 노력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비만은 주로 과잉으로 공급된 에너지가 지방으로 축적돼 일어난다. 비상시국(기아)를 대비해서다. 지극히 당연한 생리현상이지만 비상시국의 도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풍요의 시대에 사는 현대인에게는 소용없는 과잉본능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체내 지방 빼준다는 엉터리들
석류가 여성의 갱년기 장애를 개선하고 암에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알려지며 한동안 큰 인기를 끌었다. 더불어 체내 지방까지 녹여낸다는 주장까지 등장했는데, 이런 주장을 경계해야 한다. [사진 pixabay]

석류가 여성의 갱년기 장애를 개선하고 암에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알려지며 한동안 큰 인기를 끌었다. 더불어 체내 지방까지 녹여낸다는 주장까지 등장했는데, 이런 주장을 경계해야 한다. [사진 pixabay]

 
그동안 체내지방을 빼준다는 음식과 방법이 ‘쇼닥터’에 의해 수도 없이 등장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가 막히는 쇼 한둘을 소개한다. 우선 과일 같지도 않은 석류 이야기다. 석류에는 에스트로겐 유사 호르몬이 많이 들어있어 여성의 갱년기 장애에 좋고 항산화 물질이 있어 암에도 효력이 있다는 등 예찬이 요란했다.
 
이제는 체내 지방을 녹여낸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등장했다. 물 위에 돼지기름을 띄워놓고 석류, 양파, 부추즙을 각각 부어 일정 시간 지난 후 기름이 줄어든 양을 보여주고는 석류즙이 혈관 속 기름을 녹여준다는 실험이었다. 한의사가 나와 시연을 하고 양의사가 추임새를 넣는 식으로 방송이 진행됐다. 시청자를 우습게 보는 엉터리 프로그램이었다. 컵 속과 혈관 속을 동일시 하는, 소화 및 물질의 흡수과정을 전부 무시하고 인간의 생리현상을 컵 속의 변화와 같이 보는 그들만의 향연이었다.
 
주스 즙으로 실험하려면 내가 알기로는 인삼, 더덕, 도라지즙이 최고가 아닐까 싶다. 기름을 물에 분산시키는(녹이는) 효능이 좋은 유화제 성분(사포닌 등)이 많이 들어 있어서다. 더 좋은 것은 계란 노른자다. 기름과 물을 잘 섞이게 하여 만든 것이 마요네즈이기 때문이다. 더더욱 좋은 것은 비누다. 먹을 수가 없어서 그렇지. 시각효과는 이들이 최고인데 왜 하필 석류즙인가. 애석하게도 물 속에서 유화작용을 나타낸다고 혈액 속에서도 그러리라는 것은 바보들의 희망 사항이다.
 
얼마 전 중국에서 과일이나 야채 주스가 몸에 좋다 하니 먹는 것보다 혈관에 직접 넣으면 더 좋을 것이란 착각에 실제 과일주스를 주사기로 혈관에 주사해 중태에 빠졌다는 기사가 신문에 났다. 이런 허접한 방송을 보면서 우리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중국에서 몸에 좋다는 음식을 직접 혈관에 주사해 소동이 난 적이 있다. [사진 pixabay, 중앙포토]

얼마 전 중국에서 몸에 좋다는 음식을 직접 혈관에 주사해 소동이 난 적이 있다. [사진 pixabay, 중앙포토]

 
또 하나 최근 같은 방송국에서 한의사가 아닌, 양의사가 재료를 달리해 똑같은 시연을 했다. 이번에는 주스 대신 크릴(새우) 오일과 식용유를 비교해 크릴 오일이 돼지기름을 물에 잘 분산시키는 실험을 보여주고는 혈관 속 지방을 빼 준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현상은 크릴 오일에 물과 기름이 잘 섞이게 하는 유화제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신기할 것도 없다. 이런 분산현상과 체내지방의 제거와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사실 혈액 속 지방(기름)은 그들이 말하듯 물 위에서처럼 둥둥 떠다니지 않는다. 리포단백질(lipoprotein)이라는 알갱이(과립)가 안전하게 실어 나르기 때문에 혈관에 달라붙거나 막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석류즙 등에 기름을 녹이는 성분이 있다 해도 이 물질이 소화과정을 거쳐 혈관 혹은 세포 속으로 들어가 그 속에 있는 지방을 녹여 없앤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지방을 녹여 주면 독약으로 작용한다. 몸속 필수인 지방까지 제거할 테니 말이다. 최근에도 같은 방송을 반복했다. 이번에는 부추와 양파를 생강, 시금치로 바꾸고는 출연한 의사를 달리해 또 쇼를 벌였다.
 
운동과 노동만이 지방 제거 방법
우리 몸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지방을 모아둔다. 다이어트 후 요요현상이 발생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체내 지방을 녹이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노동이다. [사진 unsplash]

우리 몸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지방을 모아둔다. 다이어트 후 요요현상이 발생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체내 지방을 녹이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노동이다. [사진 unsplash]

 
몸속 지방을 없애는 방법은 많이 움직이는 것밖에 없다. 운동이든 노동이든 우리가 운동을 지속하면 먼저 간이나 근육 속에 소량 저장된 탄수화물인 글리코겐이 대사되면서 에너지를 공급한다. 이 물질이 고갈되면 지방으로 대체된다. 따라서 운동량이 많거나 부하가 심한 노동에 의해서만 지방이 소모되어 체중이 줄어든다.
 
인간의 몸은 음식이 귀했던 시절(기근)을 기억하고 있어, 있을 때 최대한으로 먹어 비축하는 기능이 있다, 게다가 일단 쌓인 지방은 절약 모드로 전환돼 좀처럼 소비하려 들지 않는다. 이른바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여 비상시를 대비하겠다는 본능이다. 이게 다이어트를 해도 좀처럼 체중이 빠지지 않는 까닭이다. 한편 다이어트를 끝내고 정상 식이로 돌아오면 단기간에 말짱 도루묵이 돼버리는 요요현상도 이를 말해준다.
 
주제와 좀 거리가 있지만, 괜한 상상을 해보자. 인간이 얼마를 굶으면 살이 빠지고 죽을까. 보통 성인이 사회활동을 할 때 하루에 필요한 에너지가 2300Kcal쯤 된다고 치자. 지방 약 260g이 내놓는 열량에 해당한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10일을 버티면 2.6kg 줄어든다. 물론 운동을 열심히 하면 하루 1kg 이상도 줄일 수 있다. 단식투쟁에는 단연 비만한 사람이 유리하고 오래 버틴다.
 
어딘가에 나오는 영국에서의 기록이다. 22명이 물만 먹고 벌인 단식투쟁에서 46일에 1명, 73일에 1명, 8명은 그사이에 죽었다. 살아남은 12명은 도중에 단식을 중단했는데 체중이 평균 35% 감소했다. 이때 체지방의 70~90%, 단백질이 30~50%가 줄었다. 몸속 필요불가결한 최소한의 지방만 남게 되면 이제는 근육 단백질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죽지 않고 버틴 세계기록은 382일이다. 204kg 나갔던 사람이 127kg으로 감소했다.
 
고도비만은 성인병 발병 등으로 수명이 짧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정상 체중보다 과체중인 사람이 오래 산다는 통계도 있다. 다이어트에 그렇게 신경 쓸 일이 아닌 듯도 싶다. 지나친 비만이 아니라면 말이다. 결론은 쇼닥터의 기만에 속지 말지어다.
 
 
이태호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9.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