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289

“개같이 벌어 개한테 쓴다”

[한현우의 미세한 풍경] 최근 찾은 애견용품 박람회, 축구장보다 훨씬 큰 전시장에 ‘人山犬海’ 犬체공학적 가슴줄, 50만원짜리 개소파… 유모차보다 개모차가 더 팔려 저출생 시대, 개같이 벌어봐야 줄 사람도 없다는 말이 우스개 아니더라 일러스트=이철원 얼마 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애견용품 박람회에 갔더니 입구에 이렇게 쓰인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개같이 벌어 개한테 쓴다.” 처음에는 우습게만 여겼는데 곱씹을수록 그럴듯한 표현이란 생각이 들었다. 돈 버는 일은 점점 더 힘들고 개 키우는 사람은 줄곧 늘어나고 있다.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으니 개 먹이고 치장하는 게 낙이다. 나는 설령 개같이 벌더라도 그 돈을 개한테 쏟아부을 생각이 없지만 어쨌든 그 플래카드 밑을 지나 내돈내산, 아니 ‘개벌개쓴’..

잡담 2024.03.26

천국에 갈 수 있다면, 당신은 지금 죽겠습니까?

[김동식의 기이한 이야기] 노인이 사라진 사회, 천국인가 지옥인가 일러스트=한상엽 천국에서 내려온 그의 목소리를 전 국민이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을 천국의 국토부 장관이라 소개한 그는 충격적인 제안을 했다. “이번에 저희 천국에서 신도시 개발을 완료했습니다. 천국에서도 1등급으로 훌륭한 영혼들만 갈 수 있는 지역이라 자부하는데, 지금 너무 텅 비어서 보기 휑한 게 문제입니다. 책임자인 제 면이 서려면 좋은 그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드리는 제안인데, 앞으로 한 달 안에 노환으로 사망할 운명인 노인분들을 모두 즉시 사망토록 하고 싶습니다. 대신에 그분들은 어떤 죄를 지었든 간에 무조건 천국행을 보장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여러 요소에서 충격을 받았다. 천국이 존재한다는 것, 천국에도 신도시 같은 게 있다는 ..

잡담 2023.06.18

누구든 그날 밥값 술값 내는 사람이 ‘형님’이라는 것!

조영남 "손기정 어르신이 '형님'···날 그렇게 부른 딱 하나 이유" [조영남 남기고 싶은 이야기] 예스터데이 〈24〉 육상 광팬 된 사연 1990년대 미국 LA에서 열린 육상대회에 각각 대회 명예회장과 축가 가수로 초청받은 고 손기정 선수와 조영남씨. [사진 조영남] 빨리 약속대로 손기정 선수에 관해 써야 하는데 그래서 방금 전화를 끊었다. 남쪽 여수 어느 섬에 폼나는 서재 겸 미술 작업실을 만들어 놓은 독일 쪽 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전화였다. 나는 수 분간 일방적으로 타박만 받았다. 조심하시라. 김 교수는 선배고 후배고 그런 거 없이 마구 들이댄다. 요는 지금 귀하께서 읽고 계신 조영남의 중앙SUNDAY 내용이 최근 속도가 느슨해졌다는 것이다. 빌어먹을! 무슨 재주로 코로나와 무더운 땡볕 속에서 매..

잡담 2021.08.14

어느 ‘新대깨문’의 일기

[논객 조은산의 시선] (※이 글은 지은이의 시각이 아닌, 각종 커뮤니티 게시글, 언론 기사 댓글들의 내용 등을 토대로 재편성한 풍자글임을 먼저 밝힙니다.) 나는 대깨문이다. 내가 언제부터 대깨문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다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본디 나는 귀가 얇고 심장이 약해 길거리에서도 온갖 종교인들에게 끌려갔다가 겨우 빠져나오길 반복했는데, 이만한 종교가 따로 없을 것 같기도 하니 사실 잘된 일이기도 하다. 한때 이런 글이 떠돈 적이 있다. 이른바 ‘대깨문의 일기’라 불리는 이 글은 짧고도 명쾌하게 대깨문의 실상을 까발리므로 심장이 꽤나 아픈 것이다. 먼저 읽어보도록 하자. ‘서울 서대문구에서 전세를 살던 대깨문 김모씨는 종부세 인상 뉴스에 투기꾼 놈들 잘됐다며 박장대소를 했다. 5..

잡담 2021.08.06

대선 주막에 강호 고수들이 모여들었다

[논객 조은산의 시선] 더운 어느 여름날, 고을 주막에 한 노객이 들어섰다. 자리에 앉은 그는 탁주를 한 사발 들이켜고는 이와 같이 읊는 것이었다. “보수의 맏아들이 잠시 집을 떠나 변방에 머물렀음에 당파는 무파요, 무파는 편파니 내 마음은 아파요. 복당 한번 하기가 참 더럽게도 힘들구나.” 말을 마친 그가 깍두기를 집어 우적우적 씹자 주변의 한 식객이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혹시 홍(洪) 대감 아니시오?” 그는 대답 대신 다시 이렇게 읊조렸다. “무무무무(無無無無)는 지지지지(知止止止)라, 없는 것은 없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요, 그침을 알아 그칠 데 그쳐야 할 것이로되, 이미 스무 가지가 넘는 의혹이 있거늘 어찌 검증을 하지 않고 윤(尹)과 더불어 대업을 논할 수 있으리오.” /일러스트=이철원 이..

잡담 2021.07.02

일본인의 친절(?)을 다시 생각한다

(지디넷코리아=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아침 출근길이었다. 늘 지나는 공원에 설치된 ‘아이를 업은 엄마’라는 동상이 왠지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왜 그럴까 싶어 발길을 돌려 동상을 살펴봤다. 자세히 보니 누군가가 엄마와 아기에 얼굴에 마스크를 씌워놓은 것이었다. 엄마 마스크와 아이 마스크는 각각 성인용과 유아용 마스크로 세심한 배려를 한 것으로 보아 누군가가 장난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은 참으로 친절하구나’하는 생각을 하려다가 문득 예전에 읽은 ‘공기의 연구’라는 책이 떠올랐다. 최근 과거사에 대한 일본 정부 태도가 강경하게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며 분노할 때도 있지만 저들은 왜 저런 태도를 보이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기 않을 때가 많다. 과거 일본이 우리나라 주권을 강탈하고 ..

잡담 2021.06.14

주식을 하면서... 나는 종종 파블로프의 개가 된다

[투자의 민낯] 차트만 보면 폭발하는 거래 욕구에 대처하는 자세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남희한 기자] ▲ 매일 실험당하는 투자자 파블로프의 개가 내 안에도 있었다. ⓒ 남희한 나의 주식 투자 행태를 말할 때, 너무나도 유명한 파블로프의 개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종소리만 들으면 침샘이 폭발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주가 창만 열면 혹은 9시만 되면 폭발하는 거래욕. 나는 개미인가, 개인가. 모두가 알다시피 파블로프의 개 실험은 먹을 것을 줄 때마다 종소리를 들려주면, 먹을 것을 주지 않아도 종소리에 침을 흘리게 ..

잡담 2021.05.20

뿌리 깊은 ‘K투기’

게티이미지뱅크·그래픽=김성규 1890년대 일본 미곡상들이 인천에 ‘미두 취인소(米豆取引所)’라는 쌀 선물거래소를 만들었다. 10% 보증금만으로 대량 매매가 가능해 ‘대박’을 노리는 투기꾼들이 인천으로 몰려들었다. 하루 거래량이 100만석을 웃돌면서 일본 선물시장을 추월했다. 하지만 조선인 투자자는 대부분 패가망신했다. 일본 선물가격을 기준가격으로 삼았는데, 일본 시세를 전보를 통해 미리 알아낸 일본인들이 시장을 농락했다. “논밭은 동양척식회사에 뺏기고, 조선인 돈은 미두(米豆) 바람에 다 날아간다”는 말이 떠돌았다. ▶100년 뒤 1996년에 문을 연 주식 선물 시장이 투기판 계보를 이어받는다. ‘압구정 미꾸라지' ‘목포 세발낙지' 별칭을 가진 고수들의 대박 성공담이 화제가 됐다. 2011년엔 하루 선물..

잡담 2021.04.25

고개만 갸웃해도 간식 바치니 인간 길들이기 별것 아니네

[아무튼, 주말] 나는 강아지로소이다 개들 세계에는 ‘일찍 일어나는 개가 뜨신 똥을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것은 증조할머니 때나 통하던 말이다. 요즘 개들에게 그런 말을 했다간 꼰대견으로 찍히기 십상이다. 대신 요즘 개들은 눈으로 모든 것을 말한다. 내 눈동자에는 흰자가 거의 없어서 인간들은 내가 눈으로 뭘 말하는지 잘 모른다. 그런데도 자꾸 내 눈에서 표정을 읽으려고 한다. 내가 식탁 밑에 앉아 개아범을 쳐다보면 그는 안 돼, 너 먹는 거 아냐, 하고 말한다. 그러나 엄마는 인간이 뭘 먹고 있으면 그 옆에 얌전히 앉아 하염없이 쳐다보라고 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러고 있으면 언젠가는 먹을 게 떨어진다고 말이다. 나의 눈은 평온할 때나 화 나고 약오를 때나 똑같다. 내 눈은 뜨고 있거나 자려고 ..

잡담 2021.04.17

그 똥은 얼마인가?

예술인양 무책임하게 부려진 똥 상처 치유는커녕 세상 오염시켜 “위선적 광신자, 작가 성공 못해” 벚꽃만큼만 위안 주는 예술이길 “상처를 치유한다”는 말은 미술계의 대표적 상투어다. 그러나 진정 상처를 치유하는 미술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은 의술(醫術)로도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방문한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서 나는 이 유구한 안타까움을 또 한번 확인해야 했다. 우여곡절 코로나 사태로 두 차례 연기됐다가 3년 만에 열린 전시, 영혼을 주제 삼아 치유와 회복의 장(場)을 표방했으나 그 의미를 해하는 엉뚱한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미국 성조기에 똥을 그려넣고 불태우는 지극히 반미(反美)적인 그림이었다. 개막식에 앞서 초청자들을 몰고 다니던 어느 좌파 단체 인사는 이 그림 앞에서 “미국이 통일을 방..

잡담 2021.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