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말, 좋은글 196

나중에 온 사람을 먼저 우대해 주는 사회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인도의 M·간디는 20세기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진실과 정직, 반(反)폭력과 인간 사랑의 정신은 21세기에 사는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이다. 지금 우리는 지도자들이 진실을 포기하고 국민은 폭력을 일삼는 사회에 살고 있다. 언어의 폭력은 정신적 폭력이다. 최근 종교계 성직자들까지 대통령에 대해 괴물, 비행기 사고로 죽었으면 좋을 사람이라는 폭언을 삼가지 않는 정황이다. 간디의 반폭력·인간사랑 정신 간디는 살아 있을 때 긴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기차 안에서 읽기 위해 영국의 존 러스킨(J.Ruskin 1819~1900)의 저서 『이 최후의 사람에게』를 가지고 떠났다. 크게 감명받은 간디는 모든 정치 특히 경제문제 해결이 여기에 있다고 공감했다. 러스킨은 어떤 사람인가. 예술..

먼 곳까지 항해하는 커다란 배를 타고 싶다면

[김영민의 문장 속을 거닐다] 장자의 ‘외물’ 편으로 본 좁은 방에서 벗어나는 방법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당신 말은 쓸 데가 없소. 그러자 장자가 대답했다. 쓸모없음을 알아야 비로소 쓸모를 이야기할 수 있소. 천지가 넓디넓고 크디큰데, 사람이 쓴다고 해봐야 발이 닿는 부분일 뿐이오. 그렇다고 해서, 발이 딛고 있는 부분을 뺀 나머지 부분을 허물어 황천에까지 닿게 해버리면, 남은 땅인들 사람에게 무슨 쓸모가 있을 수 있겠소?(惠子謂莊子曰,子言無用. 莊子曰, 知無用而始可與言用矣. 天地非不廣且大也. 人之所用,容足耳. 然則厠足而墊之致黃泉,人尙有用乎惠 子曰,無用. 莊子曰,然則無用之爲用也, 亦明矣)”. -장자, ‘외물(外物)’ 스페인 화가 루이스 그라네르(1863~1929)의 그림 '바다 위의 배'(1927)..

미소가 최고의 수행이다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학 교수 새해 인사차 절 집안 가까이 사는 사형 스님을 찾아갔다. 인사동의 한 찻집 주인이 보내온 ‘노군미(老君眉)’라는 차를 선물로 챙겼다. 늙은 임금의 눈썹 같은 맛이 나는 차라는 이름이다. 아름답게 늙어가는 노승에게 딱 어울리는 선물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사형 스님이 선의 지혜가 물씬 깃든 ‘눈썹 법문’을 들려준다. “얼굴에 눈썹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얼굴에서 눈썹은 아무 역할을 못 하지만 없으면 꼴이 우습지. 모름지기 스님들은 눈썹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네.” 수행자의 마음은 평등심과 평정심으로 늘 그 자리에서 본분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눈썹은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 치켜올리면 화난 것이고, 아래로 내려가면 너그럽게 웃는 것이다. 눈 주위에는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귀 얇은 노인이 되고 싶다

©gettyimage 오래된 나무에서 근사함을 찾듯, 나이 든 자의 얼굴에서 근사함을 찾고 사랑하고 싶다. 그런 걸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늙고 싶다. 늙음의 첫 징후는 ‘듣지 않는 자세’에서 찾을 수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말을 공들여 들을 것이다. 참 귀 얇은 노인이네, 종국엔 이런 말을 듣고 싶다. 귀가 얇은 노인이 남의 말을 듣지 않는 노인보다 훨씬 귀여울 테니까. 모든 국은 어쩐지 괜히 슬프다. 왜 슬프냐 하면 모른다 무조건 슬프다. 냉이국이건 쑥국이건 너무 슬퍼서 고깃국은 발음도 못하겠다. 고깃국은… 봄이다, 고깃국이. 혼자 방에 앉아 이 시를 읊조려볼 때가 있다. 김영승 시인의 〈슬픈 국〉이란 시다. 이 시를 통해 태어난 존재의 근원적 슬픔을 본다. 태어난 이상 무언가를 먹어야 하는, 존재의 ..

‘홍합탕 한 그릇’

일본 사람들은 ‘해 넘기기 우동’을 먹는다. 삿포로의 한 우동 가게에도 12월 31일 늦은 밤 남루한 차림의 여인이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와서 1인분을 주문했다. 딱한 사정을 알아챈 주인은 몰래 1.5인분을 내어주고 세 모자는 맛있게 나눠먹는다. 구리 료헤이의 소설 ‘우동 한 그릇’의 줄거리인데 실제로 따뜻한 한 끼의 추억을 지닌 이들이 적지 않다. 미국 뉴욕에 사는 A 씨도 그중 한 명이다. ▷A 씨는 가난한 고학생이었다. 겨울 밤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A 씨는 서울 신촌시장 뒷골목에서 홍합을 파는 리어카를 보았다. 배가 고팠던 그는 “홍합탕을 한 그릇 먹을 수 있겠느냐. 돈은 내일 드리겠다”고 했고, 아주머니는 선뜻 한 그릇을 내주었다. 그 다음 날이라고 없던 돈이 생겼을까. A 씨는 이후 이..

“인생은 양초 한 자루 태우는 것”

"인생은 양초 한 자루 태우는 것" 아주 오래전에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을 인터뷰하러 간 일이 있습니다. 세계 최대 커피 생산지인 나라답게 어딜 가나 향이 끝내주는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워싱턴 근무 중이어서 커피란 '테이크아웃', 그러니까 종이컵에 들고 다니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브라질에 가니 종이컵을 안주더라고요(요즘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제서야 저는 '앉아서 커피 한잔 마실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쁜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렇진 않죠. 바쁘다고 생각하는 것도 습관이었던 겁니다. 룰라 대통령을 인터뷰하던 날, 대통령 궁에 갔는데 아침에 하기로 해놓고 하루 종일 기다리게 하더군요. 제가 마감시간 때문에 안달복달하니까, 비서실 직원이 "누구에게나 인생이란 자신..

백성호의 현문우답

짧은 생각 하늘에는 달이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달을 진리에 비유합니다. 그 진리가 우리의 가슴에 그대로 내려와 앉기를 바랍니다. 세종 때 지은 가사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도 그런 뜻입니다. 하늘의 달이, 하늘의 진리가 천 개의 강에 비친다는 말입니다. 말그대로 하늘의 달이 강물 위에 도장을 꽝! 찍는다는 의미입니다. 해인사의 ‘해인(海印)’도 그런 뜻입니다. 하늘의 달이 바다에 도장을 꽝! 찍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되느냐고요? 맞습니다. 내 안에 달이 뜹니다. 하늘에만 있는 줄 알았던 달이, 내 안에도 뜹니다. 사람이 바로 하나 하나의 강이고, 사람이 바로 하나 하나의 바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불교에만 이런 표현이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리스도교에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 안에 거..

기도란 무엇일까요.

짧은 생각 기도란 무엇일까요. 마음을 던지는 일입니다. 하늘을 향해 내 마음을 던지는 일입니다. 그 마음이 하늘에 가 닿기를 바라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늘이 움직이기를 고대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던집니다. 나의 바람, 나의 욕망, 나의 집착, 나의 가짐을 신의 이름을 빌어 하늘에 던집니다.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얼마 전 선종하신 정진석 추기경께 물은 적이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추기경님, 기도가 무엇입니까?” 정 추기경께서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다시 물었습니다. “진정한 기도란 무엇입니까?” 정 추기경님의 답은 이랬습니다. “사람들은 기도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간절히 구합니다. 그게 이루어지면 ‘하느님이 계시다’고 합니다.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느님이 안..

하느님(하나님)은 어떻게 생긴 분일까.

짧은 생각 이런 물음을 던져봅니다. 하얀 머리카락과 긴 수염을 휘날리는 인자하신 할아버지. 우리는 그런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만약 꿈에서 그런 분을 만났다면 “나는 하느님을 만났어”라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은 그렇게 생긴 분이겠지”라고 정해놓고 있으니까요. 따져보면 딱히 근거가 없습니다. 그럼 많은 사람이 왜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는 걸까요. 저는 미켈란젤로의 성당 벽화 ‘천지창조’에 등장하는 하느님의 모습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진흙으로 빚은 아담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할아버지 하느님의 이미지 말입니다. 부지불식간에 우리는 “하느님은 그렇게 생기셨을 거야”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 '천지창조'에서 아담을 창조하고 있는 하느님의 모습이다. 정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