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459

"한국인, 서로 밀쳐내는 고슴도치 같다"

인간다움을 묻다 ② 권수영 교수 권수영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 상담코칭학과 교수는 “나를 돌아보는 것”을 인문학적 공동체 문화 회복의 첫 걸음으로 봤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22년 ‘보다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BLI)에서 한국의 사회적 연결 지표는 41개국 중 38위였다. 생활·교육 수준은 높았지만, ‘도움이 필요할 때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응답은 80%로 OECD 평균 91%를 밑돌았다. 어쩌다 효와 예, 공동체적 가치를 중시해온 우리의 관계 지표가 최하위 수준으로 추락한 걸까. 지난 6일 만난 ‘관계 전문가’ 권수영(57)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코칭학과 교수는 “한국인은 원래 관계를 중시했는데, SNS(소셜미디어) 등으로 ..

논설 2024.03.21

출산 장려용 복지정책은 왜 계속 실패하는가

[朝鮮칼럼]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동기가 있어야 행동 대한민국 수도권은 초고밀도 인구 밀도 높아 경쟁 심해지면 결혼·출산 미루고 자신에게 투자 복지 정책은 착한 제도지만 출산율 높이는 데는 낙제점 원래 계획 있던 부부에게만 도움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지난 2월 28일 통계청은 우리나라의 작년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0.72명이었다고 발표했다. 2022년(0.78명)보다 0.06명 줄었다. 게다가 작년 4분기는 0.65명으로 출산율 감소 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더 충격적인 수치는 서울시의 0.55명이다. 우리나라는 2002년에 1.3 이하로 내려온 이후 계속 추락하고 있다. 합계출산율이 2.0 정도는 되어야 기존 인구수를 유지할 수 있는데, 이..

논설 2024.03.20

“남조선이 대한민국이라고?”

[양상훈 칼럼] 백두 혈통 위협하는 한라 혈통 탈북민과 북 가족이 대한민국 선망 일으킬까 김정은 입에서 나온 ‘대한민국 것들과 전쟁’ 김정은이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 것들’이란 표현을 쓰기 시작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대한민국’은 금기어였다. 그들 나름의 외교 전략이 있겠지만 이 급작스러운 정책 변경은 북한 사회의 참담한 실상이라는 내부적 요인도 한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김정은이 같은 회의에서 “평양과 지방 격차 해소”라는 이례적 지시를 한 것도 그런 내부적 요인을 짐작하게 한다. 일론 머스크가 엑스(트위터)에 올린 한반도 야간 위성 사진. /엑스 탈북민들 얘기를 들어보면 평양과 지방은 다른 나라다. 평양 특권층은 프랑스 명품을 입고 샤부샤부를 먹는다. 평양 일반 주민도 한국 1980년대 생활은 하..

논설 2024.01.18

아직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인가

김정은의 노동당 연설… 통일 민족주의, 棺에 못 박아 남이건 북이건 힘 더 강했을 때 상대에게 ‘통일하자’ 큰소리… 김정은 발언은 결국 두려움일 뿐 지금 한반도에서 시급한 건 통일 아닌 평화적 외교 관계다 2023년 12월 3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연설하고 있다./노동신문 뉴스1 우리의 소원은 통일인가? 북한 지도부의 답변은 결단코 ‘노’이다. 지난 12월 30일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 연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 관계가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임을 분명히 했다. 또 조선중앙통신은 ‘민족, 동족이라는 개념’이 북에서 이미 삭제됐다고 천명했다. 놀랍지만 놀랍지 않다. 1990년대 김정일 위원장이 강조한 ‘우리 민족 제일주의’의 민족이 ..

논설 2024.01.17

‘인간’을 잃어버린 현대의학

안태환 의학박사·이비인후과 전문의 1923년 12월 파리에서의 초연 이후 1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세계 곳곳의 연극 무대에 오르는 쥘 로맹의 희곡 ‘크노크, 어쩌면 의학의 승리’. 극도로 민감한 의학 자본주의와 군중 통제의 이면을 다뤘는데, 코로나의 길고 긴 터널을 지나오며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요즘 말로 역주행을 하고 있다. 작품 속 크노크는 사익에 가득 찬 돌팔이 의사의 전형이다. 질병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선량한 마을 사람에 공포심을 심어주려 한다. 주민들을 잠재적 환자로 규정하며 비과학적이며 허구에 가득 찬 그의 의학적 선동은 나치의 괴벨스를 절로 연상시킨다. 크노크의 프로파간다는 탐욕적이며 효과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에게 생명에 대한 위협만큼 두려운 것은 없을 터이니. 이런 대사가 있다...

논설 2023.12.16

국민은 국회를 탄핵하고 싶다

巨野, 탄핵을 국정 마비와 협박 도구로 삼아 불체포특권은 범죄자 보호용 방탄으로 사용 與, ‘험지 출마’니 뭐니 서로 등 떠밀며 버텨 국가 미래 고민 없이 자기 이익에만 목매 제도는 잘못 없다, 문제는 그걸 사용하는 ‘인간’ 일러스트=이철원 권력이 인간을 타락시킨다는 건 틀리는 말이다. 아일랜드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권력이 인간을 타락시키는 게 아니라, 바보들이 권력을 타락시킨다고 말했다. 잘 쓰면 권력만큼 세상에 이로운 것이 없다. 문제는 그게 바보들 손에 들어갔을 때 어떤 흉기가 돼서 세상을 어지럽힐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바보들 손에 권력을 쥐여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요즘 대한민국 국회만큼 잘 보여주는 곳이 또 있을까 싶다. 그게 어떤 흉기인지도 모르면서 일단 휘휘 휘두르며 노는 모..

논설 2023.11.17

과학이 보여주는 진취적 기상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옛날 인간들은 세상이 평평하다고 믿었다. 국지적으로는 산과 계곡 등 여러 가지 지형이 있지만 큰 그림을 볼 때는 거대한 평지에 약간 울룩불룩한 정도이지 않은가. 그리 멀리 어디 가 보지 못한 사람들이 지구가 둥글다고 상상하지 못했던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유럽의 천문학자들은 그래도 꽤 오래전부터 지구는 둥글고 그것이 우주의 중심에 있으며 모든 천체는 그 주위를 돈다고 생각했는데, 중국 등 다른 지역에서는 땅덩이가 공 모양이라는 ‘지구’ 개념을 강력히 거부했다고 한다. 그 중 한 가지 이유는 중국이 글자 그대로 세계의 중심에 있는 국가여야 하는데, 구형의 표면에는 중심이 있을 수 없다는 문제였다고 한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 증거를 편한 대로 선택해서 해석 ..

논설 2023.09.27

병자가 된 독일, 우리 미래는 다를 수 있을까

英·獨 옛 성공 모델 집착하다 혁신·활력 잃고 병자 신세 돼 우린 지금까지 잘해왔는데 그 성공에 안주할까 두려워 9월 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금융가 빌딩들 뒤로 해가 지고 있다./AP 연합뉴스 “한마디로 박물관이죠.”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의 유럽 평가는 짧지만 매섭다. 10여 년 전 국제 콘퍼런스 참석차 방한한 그는 전광우 당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글로벌 경제 전망에 대해 얘기하다 이런 진단을 내놨다. 그리스와 로마, 대영제국 등 과거 화려했던 시절 선조들이 이뤄 놓은 유산과 유물로 먹고사는 박물관 같은 존재 아니냐는 것이다. 유럽은 이제 세계를 이끌어갈 활력과 혁신을 찾아볼 수 없는 초라한 존재라는 일갈이었다. 몇 년 전 이 얘기를 들었는데 유럽에 관한 한 이만큼 통찰력 있는 직관은 없다..

논설 2023.09.25

국가의 품격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 전 총장 요즘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많다. 실제로 1인당 국민소득이나 국가 전체의 경제 규모 등 객관적인 지표도 그렇고, G20 등 국제 외교무대에서 받는 대우도 과거와는 다르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특히 한류(韓流)의 유행으로 세계적으로 한국은 가고 싶은 나라, 보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이제 변방의 잘 안 알려진 조그마한 국가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국민 의식의 변화도 가져와서 과거처럼 문제가 생기면 선진국을 바라보는 습관을 극복하고 우리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도 보이기 시작했다. ‘빠른 추격자’가 아니라 ‘선도자’로 발돋움하려는 자세를 갖추려는 것이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경제적으로 선진국 문턱 왔으나 선진국의 품격은 ..

논설 2023.09.17

홍범도가 본 홍범도

[송평인 칼럼] 소련서 나온 자료 보기 전까지 홍범도 아는 체 말아야 그의 自意識은 소련을 새 조국으로 삼은 빨치산 한인 무장해제에 가담했고 강제이주에도 불만 없어 문재인이 한 도발 바로잡는 걸 도발이라 해선 안 돼 송평인 논설위원 홍범도에 대해서는 소련 붕괴 이후 공개된 자료를 보기 전까지는 알량한 지식으로 함부로 얘기해선 안 된다. 그중에서도 꼭 봐야 할 자료가 1932년 홍범도가 소련 정부로부터 연금과 특혜를 받기 위해 제출한 이력서와 소련 정부 측 질문 항목에 맞춰 응답한 앙케트 자료다. 두 자료는 홍범도가 자신의 삶을 한 번은 자유롭게, 또 한 번은 형식에 맞춰 요약한 것이다. 동아일보가 1993년 대우그룹과 공동기획해 거금을 주고 러시아에서 구입한 자료에 들어 있었다. 홍범도는 1921년 11..

논설 2023.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