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병원 영양사가 쓰는 질환 대응 식단]
고혈압·뇌경색을 이겨낸 식탁 혁명
꾸준한 식이요법·운동 지도가 만든 기적

유자 삼치 스테이크 /필자 제공
50대 후반이었던 한 공무원은 오랜 세월 고혈압이라는 ‘침묵의 폭군’을 혈관 속에 안고 살아왔습니다. 고혈압은 뚜렷한 증상이 없어 방치되기 쉬운 질환인데, 스스로 위험 신호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 채 수년을 보냈습니다. 의사가 더는 미룰 수 없다고 경고하자, 그때서야 금연을 결심했습니다.
김형미 연구소장이 환자와 함께 지켜온 건강한 식습관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조선멤버십 전용 기사입니다. 멤버에게는 더 많은 혜택이 있습니다
그러나 담배를 끊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흡연이 남긴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빵·과자·달콤한 음료 같은 고당질·고칼로리 간식을 찾기 시작한 겁니다. 금연 자체는 옳은 선택이었지만, 대체 행동이 잘못되면 오히려 체중 증가와 대사 질환 위험이 커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급격히 증가한 체중은 본태성 고혈압(특정 원인 없이 유전·생활 습관과 관련해 발생하는 가장 흔한 고혈압)의 부담 위에 ‘비만’이라는 악재를 더했습니다. 두 위험 요인은 조용히, 그러나 치명적으로 혈관을 압박했습니다.
매섭게 춥던 어느 겨울날 오후, 그는 사무실 의자에서 갑자기 힘없이 쓰러졌습니다. 즉시 응급실로 이송해 빠른 처치를 받았고, 위기의 순간은 넘겼지만 뇌경색으로 인해 오른쪽 편이 마비되는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했습니다. 뇌경색은 혈관이 막혀 뇌세포가 손상되는 질환으로, 발병 후 초기 수시간 대응이 생사를 가르기 때문에 ‘시간과의 싸움’이라 불립니다.
퇴원 후 집으로 돌아온 일상은 거의 모든 것이 불가능한 절망과 무기력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다른 한 사람은 끈질긴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아내였습니다.
식탁의 혁명: 치료의 무대를 만들다
그의 아내는 절망 앞에서 가장 먼저 ‘식탁’부터 다시 세웠습니다. 하루 세 끼를 일정한 시간에 차려냈고, 식단 구성은 새롭게 재편됐습니다. 흰쌀밥 대신 잡곡밥, 전에 자주 먹던 지방이 많은 삼겹살·갈비 대신 순살코기·두부·생선 같은 저지방·고단백 식품이 식탁의 중심이 됐습니다. 조리 방식도 튀김에서 찜·구이·수육 중심으로 바뀌었고, 매 끼니마다 다양한 색 생채소가 듬뿍 올랐습니다. 반대로 짠 반찬·젓갈류·가공식품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 식단은 ‘DASH 식단(Dietary Approaches to Stop Hypertension)’이라 불리는 방식입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고혈압 환자를 위해 개발한 대표적 치료식으로, 나트륨은 줄이고 식이섬유·칼륨·마그네슘·칼슘을 늘린 구성을 말합니다. 혈압을 안정시키고 혈관 기능을 회복시키는 데 과학적으로 입증된 방식입니다.
처음엔 남편의 투정과 거부감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 식탁은 단순한 ‘식사 공간’이 아니라 남편의 생명을 되돌리는 치료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계절이 바뀌어도, 명절이 와도, 주변에서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만류해도 원칙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은 점차 식단에 적응했고, 식사 외 시간에는 우유와 소량의 과일만 허용했습니다. 이전처럼 스트레스를 간식으로 해소하는 습관은 완전히 끊어졌습니다.

천천히, 그리고 마침내: 일상의 재건
식사 관리와 함께 재활 운동도 시작됐습니다. 처음엔 가족의 부축을 받아 겨우 용변을 처리할 정도로 무력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두 발을 떼듯 하루 10보, 20보씩 걷는 거리를 늘려갔습니다. 뇌경색 재활에서 ‘미세한 기능 회복이라도 반복하면 뇌가 새로운 경로를 만들어낸다’는 ‘뇌 가소성(neuroplasticity)’ 원리가 작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작은 걸음들은 결국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어느새 하루 두 시간 산책을 소화하기 시작했고, 나아가 한 시간 이상 조깅도 일상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3년 후 기적을 증명한 ‘버진로드’
3년 후, 딸의 결혼식 날. 식장에서 그는 뇌경색 이전보다 더 탄탄하고 근육질의 모습으로 신부의 손을 잡고 당당히 버진 로드를 걸어 들어오셨습니다. 아내가 긴 투병 기간 동안 마음속에 품어온 간절한 소망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주치의는 “본태성 고혈압이라는 근본적 체질은 바뀌지 않지만, 지속적 식습관과 운동 덕분에 혈관 탄력성과 회복력이 젊은 층에 가깝게 회복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혈관 노화 속도가 사실상 ‘역전’된 것과 같아, 고혈압이 혈관에 미치는 손상 위험이 크게 줄어든 상태였습니다.
부부는 서로의 손을 잡은 채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이 변화는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절망 속에서도 하루하루 쌓아 올린 정확한 식사·꾸준한 운동·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만들어낸 숭고한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그 공무원은 바로 제 아버지이십니다. 그 후에도 아버지는 이전보다 더 건강하고 활력 있는 노후를 보내고 계십니다.
아버지의 회복은 단순한 개인적 경험을 넘어, 제 인생 진로를 결정짓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임상영양사가 되어 병원에서 수많은 환자들의 무너진 생리적 균형을 ‘맞춤 식사’로 회복시키는 일을 오래도록 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식사는 끼니를 때우는 행위가 아니라, 몸이 스스로 회복하도록 돕는 가장 강력한 의료적 개입임을 매일 확인했습니다.
여러분의 건강과 운명 역시 매일의 식습관과 선택이 쌓여 만들어집니다. 오늘, 여러분은 식탁에 어떤 질서를 세우고 계십니까?
☞ DASH 식단
DASH(Dietary Approaches to Stop Hypertension) 식단은 고혈압을 치료하기 위한 식사 원리를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기 쉽게 고안된 식사요법으로 미국 국립 심·폐·혈 연구소(NHLBI)에서 오랜 기간 광범위하게 연구하여 효과를 입증했습니다.

김형미 메디쏠라㈜ 연구소장·연세대 임상영양대학원 겸임교수 조선일보 입력 2025.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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