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상식

10개월 만에 암세포 싹 죽었다…의사도 놀란 ‘담도암 4기’ 기적

해암도 2025. 12. 3. 12:39


 길면 6개월입니다. 

박주혜(44)씨는 어쩌면 두 계절 후면 세상에 없을 수도 있었다. 그는 지난해 7월, 담도암 4기로 시한부 6개월 선고를 받았다. 담도암은 증상이 거의 없어 발견이 어렵고 예후가 좋지 않은 암 중 하나다. 특히 3, 4기로 가면 생존율이 더욱 희박해진다. 의사의 말대로라면, 박씨에게 2025년은 오지 않을 미래였다.

초봄의 햇살처럼 기적이 찾아온 걸까? 박씨는 북받치는 마음으로 봄을 맞았고, 6개월을 넘어 16개월째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게다가 지난 4월 암세포가 모두 죽은 상태인 ‘완전 관해’ 판정을 받았다.

보너스처럼 주어진 삶을 하루하루 충만하게 살아가고 있는 박씨를 만났다. 그가 나고 자랐고 뿌리를 내린 울산에서. 쾌활한 목소리로 반갑게 맞는 박씨의 얼굴에 병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송정저수지를 바라보던 그는 “호수가 이렇게 아름답게 반짝이는 줄 전에는 몰랐다”고 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와보니 삶이 더 찬란하게 보인다고 했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울산에서 청소전문기술학원을 운영하는 박주혜씨. 투병 중에도 꾸준히 본인의 일상을 기록했고, 이 내용을 묶어『어떤 계절의 농담』(브로북스)을 펴냈다.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송봉근 기자



박씨에게 어떻게 완치할 수 있었냐고 물었다. 그는 “1%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알듯 말듯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 기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굳건한 얼굴로 죽음에 맞선 한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박씨를 치료한 세브란스병원 간담췌외과 강창무 교수의 인터뷰도 함께 실었다.

이런 내용을 담았어요

📌지나가는 아저씨 잡고 펑펑 운 날
📌담도암 발견 전 이 증상 있었다
📌“나 시한부래” 가족에게 어렵게 꺼낸 말
📌항암치료 견딜 수 있었던 건
📌항암 부작용도 깔깔깔
📌10개월 만에 완전 관해, 기적의 비결
※세브란스병원 간담췌외과 강창무 교수 인터뷰

🍀 지나가는 아저씨 잡고 펑펑 운 날
시한부 선고를 받던 날 기억하나요?  
2024년 7월 9일, 날짜까지 또렷하게 기억해요. 계속 배가 아파서 MRI 검사를 받고, 그 결과를 들으러 갔어요. 별일 있겠냐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이었죠. 그런데 의사가 그러더라고요. “결혼은 하셨어요?”

“애가 셋인데, 그게 검사 결과랑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물었죠. 한참 뜸을 들이던 의사는 췌장암 말기(이후 담도암으로 재판정)로 보인다고 했어요. 그 뒤로는 무슨 말을 나눴는지 잘 기억나지 않아요. “얼마나 살 수 있나요?”라고 물은 것만 기억해요.

얼마나 살 수 있다고 말하던가요?  
통상 6개월. 그것도 항암제가 잘 작용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6개월도 못 살 수 있다고요. 당시 제가 43세였는데, 창창한 나이잖아요. ‘내가 죽는 건가, 그러면 일은 어쩌지’ 이런 생각만 했어요. 실감이 안 났죠.

충격이 컸을 텐데요.  
멍한 상태로 병원 건물 밖으로 나갔어요. 한여름이라 습하고 더웠거든요. 그런데 열기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벤치가 보이길래 일단 주저앉았죠. 그리고 옆에 앉은 아저씨를 붙잡고 다짜고짜 하소연했어요. “아저씨, 저 오늘 췌장암 말기 판정 받았어요.”

그 말을 뱉고 나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분도 어쩔 줄 몰라 하며 “아이고, 우짜노”라고만 하셨어요. 평소에 낯선 사람에게 먼저 말을 안 거는데,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누구에게라도 위로받고 싶었나봐요.

🍀담도암 발견 전 이 증상 있었다
암을 발견하기 전 특별한 증상이 있었나요?
암 진단 받기 3개월 전에 건강검진을 했어요. 간암·담도암·췌장암 검사 빼고 다 했는데, 딱 거기서 문제가 발생한 거죠. 췌장암이나 담도암은 ‘침묵의 살인자’라고도 하잖아요. 그때만 해도 통증이 전혀 없었어요. 어느 날부턴가 점점 소화가 안 되더라고요. 오른쪽으로 누우면 괜찮은데, 왼쪽으로 누우면 꾸르륵 소리가 심하게 났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암 덩어리가 7.5㎝ 이상 커지면서, 십이지장을 누르고 있었던 거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최초의 증상 같아요.

아프지는 않았나요?
암 진단받기 한 달 전부터는 배가 심각하게 아팠거든요. 뒤틀리는 느낌이었고, 나중엔 등까지 뻐근했으니까요. 통증이 2~3주 이어지니 이상했죠. 처음 간 병원에선 배 통증 정도로는 CT를 못 찍는다고 했어요. 근데 제가 너무 아파서 뭐라도 찍겠다고 우겼어요.

그때 암을 발견한 거군요.  
사실 좀 억울해요. 췌장암이나 담도암 특징 중 하나가 살이 급격하게 빠지는 건데, 전 전혀 체중 변화가 없었어요. 암도 제 몸무게는 못 줄인 거죠. 또 혈액에서 암의 존재를 판별할 수 있는 암지수(CEA)도 정상이었고요. 그러니 상상도 못 했죠.

조직검사 후에, 췌장암 권위자인 신촌 세브란스병원 강창무 교수님께 진료받고 싶어서 발품 팔아 예약했어요. 그 뒤로는 울산에서 서울까지 열심히 왔다 갔다 했죠. 항암 치료를 위해 몇 가지 검사를 더 해보니, 췌장암보다 담도암에 가깝다고 했어요.

🍀“나 시한부래” 가족에게 어렵게 꺼낸 말

박씨는 "암 환자라고 암 환자처럼 지내지 말라"고 강조한다. 미래의 죽는 순간을 신경 쓰다 보면 정작 지금에 소홀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송봉근 기자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요?  
시한부 판정을 받은 날, 남편에게 제일 먼저 전화했어요. 택시를 타고 한걸음에 달려온 남편을 본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남편은 조용히 절 안아줬어요. 서로 눈도 못 마주쳤죠. 마주 보면 눈물 날 것 같아서. 그렇게 꾹 참다가 돌아가는 차 안에서 둘이 목놓아 울었어요. 그제야 터진 거예요.

아이들에겐 어떻게 이야기를 꺼냈어요?  
당시 고등학교 2학년,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아이들에게 말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제 병을 숨기고 싶지 않았어요. 솔직하게 말했죠. “엄마는 암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렸는데, 다른 암보다 더 힘들 수도 있어. 머리도 빠지고, 잘 먹지도 못할 거야. 그래도 엄마는 버텨낼 거니까 너무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함께 응원해 주면 좋겠어.”

아이들은 어떤 반응이었나요?  
눈물바다였죠. 특히 막내는 꺼이꺼이 울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꼭 살아야 한다’ 다짐했어요. 솔직하게 말한 덕분에, 항암 치료 기간에도 우리 가족은 웃으면서 지낼 수 있었어요. 가끔 보면 아이들에게 거짓말하는 분이 있어요. 그런데 아이들은 다 알아요. 오히려 얼마나 큰 병이길래 나에게 말 안 할까 불안해하고, 심하면 우울증까지 옵니다. 만약 부모가 죽기라도 하면,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아이들은 얼마나 자책할까요. 엄마와 더 시간을 보낼 걸, 더 잘해줄 걸 내가 철이 없었다며 후회하겠죠. 큰 짐을 아이들에게 지우지 마세요.

🍀항암 치료를 견딜 수 있었던 건  
항암 치료, 겁나지는 않았나요?  
JTBC 드라마 ‘서른, 아홉’에서 주인공인 정찬영(전미도)이 췌장암이었어요. 항암 치료를 받지 않고, 결국 죽거든요. 얼마나 힘들기에 항암을 받지 않을까, 보면서 두려움이 컸어요. 그런데 다르게 생각하면 무서운 암을 이겨내려면 이 정도 아픔은 당연하지 않나 싶더라고요. 차라리 세게 확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내가 고통스러운 만큼 암세포도 죽을 테니까요.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한데, 항암 치료를 견디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됐어요.

힘들지는 않았나요?  
왜 안 힘들었겠어요. 처음 항암 치료를 하고 일주일 만에 체중 7㎏이 빠졌어요. 속이 울렁거리고 메스꺼워서 물도 못 삼켰어요. 그나마 남편이 끓여준 숭늉을 한두 숟가락 먹고 버텼어요.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데, 이게 낫고 있는 과정이구나 생각했어요. 제가 좀 긍정적이거든요. 당장 6개월 후에 죽을 수도 있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딱 여기에만 집중했죠.

모든 건 순리대로 간다고 생각해요. 암 투병은 당연히 아픈 거고, 또 아주 천천히 낫는 거라고요. 그 과정에서 ‘나는 버틸 수 있는 사람이야, 나으려면 더 아파야 돼, 아프지 않고 낫는 건 꼼수일 뿐이야’라고 스스로 말했어요. 그래서인지 막상 참을 만하더라고요. 너무 섣부르게 판단해 고통에 지지 마세요. 고통에 내 한계를 맞출 필요는 없잖아요. 말하고 보니 좀 멋진 말 같네요.(웃음)


박씨는 삶의 태도에 대해 강조했다. "운이 있다면,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에게 오지 않겠나"고 말했다. 송봉근 기자



🍀 항암 부작용도 유쾌하게 깔깔깔 
음식을 잘 못 드셨는데, 따로 식단 관리는 하지 않았나요?  
항암 치료 초기엔 그랬는데, 나중엔 잘 먹었어요. 몸무게도 금방 돌아왔고요. 암 환자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여리여리하고, 하얗고 가느다란 이미지요. 근데 전 아니더라고요. 유튜브 보면 ‘암 환자는 이것 먹지 말아라, 저것 먹지 말아라’는 영상 정말 많은데, 안 찾아봤어요.

이미 암 환자에게 필요한 내용은 병원에서 다 얘기해 줘요. 신선한 채소를 더 먹고, 고기 양을 줄이는 식으로 했을 뿐이지 먹고 싶은 건 다 먹었어요.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라면도 먹고 초콜릿, 치킨도 먹었는걸요. 스트레스 받지 않고 행복하게 먹는 게 더 중요합니다. 암 환자라고 암 환자같이 살 필요는 없어요.

그래도 독한 항암 치료 때문에 부작용도 있었을 텐데.  
머리 감을 때마다 머리카락이 한줌씩 빠졌죠. 미용실 의자에 앉자마자 머리를 빡빡 밀어달라고 했어요. 어물쩍 뜸 들이고 망설였다가는 곧장 울음바다가 될 것 같았거든요. 언니들이 가발을 맞춰 줬어요. 문제는 아이들이었어요. 머리카락이 없는 걸 슬퍼하거나, 수치스러워하지 않을까 걱정했거든요.

아이들이 놀라지는 않았어요?  
집에 돌아와 “엄마 머리 기대하라”며 가발을 벗었죠. 그러고는 영화 ‘반지의 제왕’의 골룸 흉내를 내니, 아이들이 자지러지게 웃더라고요. 이제는 아이들이 스티커를 제 머리에 붙이고는, 사진 찍고 재밌다고 난리예요. 아이들이 슬픔에 잠식되지 않고 즐겁고 유쾌하게 받아줘서 참 고마워요. 그 모습을 보고 또 힘을 내게 되고요.

🍀10개월 만에 완전 관해, 기적을 만든 비결
투병 10개월 만에 ‘완전 관해’ 판정을 받았죠?  
네. 전 항암 치료를 총 20회 받았는데요. 다른 분들에 비해선 짧게 끝난 거예요. 췌장·담도암은 쓸 수 있는 항암제가 세 가지 정도밖에 없어요. 치료를 시작하기 전까진 어떤 게 맞을 지 전혀 알 수 없고, 세 가지 다 안 맞으면 죽을 수밖에 없어요. 그마저도 몸이 버텨서 세 가지 항암제를 다 썼을 때 이야기고요.

항암제는 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최혜진 교수님이 담당해 주셨는데, 적합한 항암제 처방을 잘 해주셨던 것 같아요. 처음엔 췌장암이라고 판단해 췌장과 관련한 항암제를 썼는데, 조심스럽게 담도 쪽 종양 항암제를 쓰는 게 효과가 더 있을 것 같다고 말해줬죠. 그리고 2개월 만에 암 크기가 엄청 준 거예요.

덕분에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군요.
맞아요. 4기 암은 크기가 커서 수술할 수 없었거든요. 딱 맞는 항암제를 처방해준 덕에 수술 가능할 정도로 암세포가 줄었어요. 수술을 담당한 강창무 교수님은 “열어보니 원발암 근처에 퍼진 암세포가 다 죽어있었고, 암이 자리 잡고 있던 췌장 머리와 십이지장을 잘 제거했다”고 하셨죠. 수술해도 자잘하게 퍼진 암세포가 다른 곳에 자리 잡는 경우도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 몸속에선 싹 죽은 거 있죠.

모든 암세포가 사멸했다고 판단될 때 ‘완전 관해’라고 하는데, 수술 후 진료실에서 상담하며 완전 관해 됐다는 걸 알았어요. 의사 선생님도 제 상태를 설명해 주면서 선항암(수술 전에 항암제를 먼저 투여하는 치료 방식) 중 이렇게 완전 관해되는 확률은 엄청 희박하다고 했어요. 1기나 2기 환자 중에선 100명 중 한 명꼴로 나오는데, 4기 환자가 완전 관해된 경우는 처음 본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기적 같은 일이네요.  
그럼요. 의사 선생님도 이게 굉장히 드문 상황이고, 정말 감사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저도 되게 얼떨떨했죠. 담도암 생존율은 2.5% 정도 되거든요. 수술한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완치라고 부를 수 있는 상황까지 맞이한 거잖아요. 눈물이 막 쏟아졌어요. 이제 저에게도 ‘나중에’ ‘다음에’라는 말이 허락된 거 같았거든요.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 줄 몰랐어요. 세상에 기적이 있다고 하지만, 내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 머리맡에도 기적이 오더라고요.

지금은 어떻게 지내세요?  
사실 지금도 완치는 아니에요. 완전 관해인 상태에서 5년 동안 재발하지 않아야 진짜 완치 판정을 받아요. 그날을 위해 3개월에 한 번씩 CT를 찍으며 주기적으로 검사하고 있죠. 아직도 진료를 보러 가면 긴장되고 떨려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이젠 어떤 상황을 마주하더라고 담대하게 그 상황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살았는데, 제가 오만했더라고요. 신이 있다면, 삶을 겸손하게 대하는 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이런 시간을 준 것 같아요.

기적을 만든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모든 기준은 내 마음 상태예요. 비관적으로 ‘난 죽을 거야’라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기적은 오지 않아요. 살겠다는 의지를 갖고, 희망을 꿈꿨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난 것 아닐까요.

암 환자들은 두려운 시간 속에서 얼마나 걸리지도 모르는 길을 외롭게 가야 하죠. 그럼에도 아주 작은 빛이라도 찾아보세요. 희망이란 작은 빛을 따라가다 보면 작은 기적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작은 기적들이 쌓여, 완치라는 종착역에 닿도록 만들어줄 거고요. 그러니 희망을 잃지 마세요. 이것보다 더 큰 기적의 열쇠는 없으니까요.

[인터뷰] 세브란스병원 간담췌외과 강창무 교수


박주혜씨의 치료를 담당한 강창무 교수. 사진 세브란스병원 홈페이지



박주혜씨가 처음 찾아왔을 당시, 어떤 상태였나요?  
과거 박씨는 십이지장 벽 외부에 담관과 췌관의 합류가 발생하는 선천성 기형 때문에 담관낭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상태에서 해당 주위에 팽대부주위암이 생겨 우리 병원에 내원하셨죠. 나중에 조직검사에서 담도암으로 최종 확정했습니다. 보통 이 부분에 암이 생기면 황달이 생기는데, 박씨는 과거 담관낭 수술을 받은 터라 황달뿐 아니라 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종양이 커지게 된 거죠.

담도암은 어떤 병이고, 어떤 증상을 동반하나요?
담도암은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이 십이지장으로 배출되는 통로인 담도(담관)에서 발생하는 악성 종양입니다. 조기 발견이 쉽지 않기 때문에 발견하게 되면 종양이 커져 주변을 침범해 있거나, 다른 장기로 전이돼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증상은 종양에 의해 담즙 배출이 막히게 되면서 황달이 오거나, 피부 가려움증, 회색변, 콜라처럼 진한 색의 소변이 나오게 됩니다. 그 외 담도에 염증이 동반돼 열과 오한이 올 수 있으며, 통증이 생기고, 몸무게가 줄기도 합니다.

박씨는 어떻게 완전관해 판정을 받을 수 있었나요?  
보통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전이성 담도암의 항암 치료는 젬시타빈+시스플라틴이라는 세포독성항암제를 병용했으나, 최근에는 여기에 면역항암제를 함께 사용하는 요법이 표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박씨 역시 기존치료제에 면역치료제를 병용해 2024년 7월부터 2025년 3월까지 항암치료를 했습니다.

항암 치료 후 영상의학적 검사상 종양이 확연히 줄어든 것을 발견했습니다. 복막이나 임파선 쪽에 암이 전이돼 있던 것들도 모두 없어졌고요. 수술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해 올해 4월, 복강경 로봇을 이용한 췌·십이지장 절제술을 시행했습니다. 수술 당시 주변에 전이를 일으켰던 흔적만 있을 뿐 조직 검사상 암이 다 죽어 있었고요. 잘라낸 검체에서도 암이 사멸된 거로 확인돼 완전관해 판정을 내리게 됐죠. 이런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담도암 환자들이 일상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을까요?  
보통 외래에서 환자들을 보면 “교수님, 뭘 하면 안 되나요? 무엇을 먹으면 안 돼요?”라며 스스로 제한된 삶의 범위 안에 가두려는 분들이 많으세요. 워낙 담도암 위중도가 높다 보니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과한 건 어떨 땐 모자란 것만 못하기도 합니다. 일상의 행복을 만끽하며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의료진의 수고와 가족의 뜨거운 기도 속에서 하루하루 기쁘고 활력 넘치는 매일을 산다면 더 건강한 삶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씨가 말하는 기적은 "안온한 일상"이라고 했다. 독자들을 향해 "매일 기적을 맛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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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선희연     중앙일보 기자   발행 일시2025.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