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여행 취재를 다니며 새조개를 맛볼 기회가 몇 차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여수에서 먹은 새조개 샤브샤브 맛을 잊을 수 없다. 참고로 우리가 먹는 새조개의 80%가 여수산이다.
전남 여수 문수동 '세자리'
12월부터 이듬해 4·5월까지만 영업
메뉴는 새조개 샤브샤브 한 가지 뿐
갯것으로 만든 반찬, 매생이라면 일품
영취산(436m)이 분홍빛 진달래로 뒤덮인 2015년 3월이었다. 산행을 마친 일행과 함께 여수 문수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외지인이 많이 찾는 유명 관광지 주변도, 싱싱한 해산물이 직송되는 어시장 주변도 아닌 아파트 단지였다. 문수동을 찾은 건 맛난 새조개 샤브샤브 전문식당 ‘세자리(061-652-4828)’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였다.
조인숙 사장이 24년 전 가게를 열었을 때는 테이블이 단 세 개 뿐이었다. 그래서 이름이 세자리다. 지금은 테이블이 7개 정도로 늘었지만 이름은 그대로다. 처음엔 쇠고기 샤브샤브를 전문으로 했다는데 언젠가부터 새조개 샤브샤브 한 가지 메뉴만 팔기 시작했단다.
세 명이서 새조개 샤브샤브 한 접시를 주문했다. 먼저 에피타이저가 나왔다. 테이블 가스레인지에 작은 프라이팬을 얹고 매생이전을 데웠다. 고소하고 쌉싸래한 바다향이 입속에 번졌다. 이어 갯것들로 만든 밑반찬과 푸릇푸릇한 채소가 잔뜩 상에 올랐다. 피조개조림, 톳무침, 푹 익힌 갓김치까지. 세상에나. 이렇게 귀한 반찬을 내준다면 새조개는 어찌 먹으란 말인지 싶었다.
곧이어 샤브샤브 국물과 접시 가득 담긴 새조개가 나왔다. 사실 이 때 난생 처음 새조개 샤브샤브를 먹어봤는데 이후 충남 서산이나 홍성에서 먹어봤던 국물은 전혀 결이 달랐다. 여수 세자리에서는 된장을 풀어서 뽀얀 국물 가운데 두툼한 생무 한 도막이 있었다. 반면 충청도에서 먹었던 국물은 바지락과 대파, 배추 등을 넣은 맑은 국물이 주를 이뤘다.
새 부리처럼 생긴 조갯살을 집어 국물에 넣고 약 10초간 담갔다 꺼냈다. 물컹하던 조갯살이 살짝 익자 새 한 마리가 잠들었다가 깨어나 목에 힘을 잔뜩 준 것 같았다. 거무스레한 모양이 두루미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소스에 찍지 않고 그냥 먹어봤다. 처음엔 고소하다가 씹을수록 달콤한 맛이 강하게 퍼졌다. 수심 5~10m 모래바닥에 사는 녀석인데도 전혀 뻘맛이 나지 않았다. 맛도 인상적이었지만 질감이 여느 조갯살과 달리 탱글탱글했다. 식감이 닭다리살과 비슷하다는 이유를 알 만했다.
조
갯살과 함께 적셔 먹는 채소 맛도 궁합이 훌륭했다. 시금치, 미나리 등 푸릇한 것들이 된장국물을 머금어 달큼한 맛이 더 배가 됐다. 뜨거운 국물에 새조개와 채소를 담갔다 뺄 때마다, 밑반찬을 집을 때마다 호들갑을 참기가 어려웠다.
새조개 접시가 깨끗해졌을 무렵 매생이라면을 주문했다. 조 사장이 직접 개발한 입가심 메뉴인데 남은 국물에 매생이 한 줌과 라면, 약간의 라면 스프를 넣고 자글자글 끓였다. 직접 담근 된장 맛과 새조개에서 나온 시원하고 단맛, 매생이의 향긋한 바다향이 놀라운 합을 이뤘다.
세자리는 새조개가 나는 계절에만 영업을 한다. 보통은 11월 말부터 이듬해 5월 초까지 장사를 하는데 올해는 새조개 어획량이 많지 않아 12월22일에서야 문을 열었다. 영업을 하지 않는 여름·가을에는 무얼 하시는지 물었더니 조 사장은 “반찬 준비하지요”라고 웃으며 답했다. 상에 오른 음식 하나하나가 비범한 맛을 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새조개 잡는 시기만 늦어진 게 아니라 가격도 비싸졌다. 예년에는 샤브샤브용 새조개 한 접시에 8만원(대)을 받았는데 올해는 가격을 더 올릴 수밖에 없단다. 새조개는 살이 잔뜩 오르는 2·3월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글·사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7.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