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상식

노화는 순리, '노쇠'는 질병…'5개의 기둥'으로 노쇠 물리쳤다

해암도 2025. 12. 16. 06:28

[장일영의 '내 몸속 시계' 되돌리는 법]

 
 
 

사진=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지난 2일, 조선일보 지면에 필자가 주도한 연구 결과가 보도됐다.

100만원 들여 6개월 노인 운동, 병원비 900만원 덜 들더라”

 

기사 초점은 ‘운동’과 ‘병원비 절감’에 맞춰졌지만, 그것은 결과의 일부일 뿐이다. 단순히 6개월간 운동을 시켰다고 이런 성과가 나왔을까. 아니다. 이 연구의 본질은 운동 프로그램이 아니라, 노쇠를 다루는 의학적 설계의 전환에 있다.

 

노년내과 전문의 장일영 교수가 '노쇠'와 싸우는 법을 소개합니다. 노력하면 내 다리로 걷고, 내 손으로 밥을 먹는 '존엄한 삶'을 늘릴 수 있습니다. 조선멤버십에 가입하시면 더 많은 콘텐츠와 혜택이 있습니다
 
강원도 평창군 보건의료원은 평균 연령 77세, 이미 신체 기능이 평균 이하로 떨어진 고령자를 대상으로 6개월간 집중 개입을 시행했다. 그 결과 요양 병원에 입소하지 않고 집에서 자립적으로 살아가는 기간이 평균 6.5개월 늘어났다. 신체 장애도 2년 늦게 찾아왔다. 단순한 수명 연장이 아니라, ‘내 다리로 걷고 내 손으로 밥을 먹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경제적 효과도 분명했다. 건강 개선으로 향후 5년간 1인당 약 900만원 의료비가 절감됐다. 투입 대비 8.8배 비용 절감 효과다. 이 모델을 노인 인구의 10%에만 적용해도 약 9조원의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이 연구의 진짜 의미는 숫자에 있지 않다. 이는 노화를 ‘관리 대상’이 아니라 ‘치료 대상’으로 다룰 수 있음을 보여준 첫 임상적 증거에 가깝다.

 

노쇠는 ‘운명’ 아니라 치료 가능한 ‘질환’

우리는 나이가 들면 약해지는 걸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혈압과 혈당 수치만 관리되면 의학적 역할은 끝났다고 여긴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만나는 노인들 현실은 다르다. 수치는 안정돼 있어도, 환자는 자꾸 앉아 쉬려 하고 움직이길 꺼린다.

 

이는 질병(Disease)은 조절했지만, 기능(Function)을 놓쳤기 때문이다. 노년의 건강을 무너뜨리는 진짜 적은 특정 질환이 아니라 근육, 영양, 인지, 정서가 연쇄적으로 붕괴되는 ‘노쇠(Frailty)’다.

 

2014년 시작된 평창군 노쇠 예방 사업은 이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병을 고치는 데서 멈추지 말고, 기능 자체를 치료하자.” 우리는 이를 ‘내재역량(Intrinsic Capacity) 강화’라고 정의했다. 신체·정신·사회적 기능을 포함한 개인의 총체적 능력을 회복시키는 접근이다.

 

이 원리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하는 ‘초과회복’ 원리와 동일하다. 충분한 자극 뒤에 적절한 휴식과 영양이 제공되면, 몸은 이전보다 더 강해진다. 평창 연구는 이 원리가 70~80대 노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노화를 붙잡아두는 방어적 예방이 아니라, 시스템을 다시 가동해 생물학적 나이를 되돌리는 ‘치료적 역노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평창 노쇠 치료 5가지 의학적 기둥

평창 프로그램은 단순한 생활 수칙이 아니라, 신체 시스템을 다시 작동시키는 5개의 치료 메커니즘으로 설계됐다.

  1. 근력 운동: 근육을 깨우는 ‘신호’ 걷기 운동은 중요하지만, 노쇠를 막고 역노화를 일으키기엔 부족하다. 초과 회복을 위해서는 근육 합성 신호를 켜는 저항성 운동이 필수다. 평창에선 주 2회 전문 강사 지도 아래 근력·균형·유산소·스트레칭을 결합한 운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했다. 근육뿐 아니라 뇌와 대사 시스템 전체에 강력한 생존 신호를 보냈다. 그 결과, 보행 속도가 빨라지고, 통증은 줄었으며, 일상 자립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2. 단백 영양: 회복을 완성하는 ‘재료’ 운동으로 신호를 보내도 재료가 없으면 회복은 일어나지 않는다. 노쇠 치료에서 영양, 특히 단백질은 단순한 보조 식품이 아니라 필수 영양소이자 치료의 핵심 ‘재료’다. 노인은 단백질 필요량이 늘지만, 섭취는 오히려 줄어드는 ‘역설적 결핍’ 상태에 놓여 있다. 평창 노인들에겐 매일 단백질 보충 음료 2팩을 제공해 ‘단백 공복’을 최소화하고 상대적 단백질 결핍을 해소했다. 운동 직후 공급된 단백질은 근육 합성을 가속했고, 호르몬·면역 안정에도 기여했다.
  3. 우울 관리: 회복을 가로막는 ‘브레이크’ 해제 노년기 우울은 단순한 기분 문제가 아니라 회복 시스템을 멈추게 하는 생리적 장애다. 우울하면 의욕이 떨어지고 움직임이 줄어든다. 입맛이 사라지고 쉽게 포만감이 온다. 이는 곧 단백질 섭취 부족으로 이어지고, 근육 감소와 기력 저하를 불러온다. 기력이 없으니 다시 우울해지는 악순환의 늪에 빠진다. 평창 팀은 고위험군 우울 노인을 찾아내 적극 개입했다. 심리적 지지와 상담, 필요하면 의사 진찰을 통해 마음의 빗장을 열자, 식사량이 늘기 시작했다. 운동 참여도와 수행 능력도 함께 개선됐다. 마음의 회복은 곧 몸의 회복이었다.
  4. 약물 조정: 불필요한 ‘저항’ 제거 허약한 어르신들을 진료하다 보면 복용하는 약이 너무 많았다. 고혈압, 당뇨, 관절염, 소화제, 수면제까지. 하루에 한 움큼씩 약을 먹는 ‘다제약물(Polypharmacy)’ 복용자는 여러 부작용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노쇠를 가속하는 숨은 요인이다. 의료진은 불필요하거나 중복된 약을 정리했다. 약을 줄였는데 오히려 컨디션이 좋아졌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몸이 긍정적 자극에 온전히 반응할 수 있도록 발목 잡는 요소를 제거해 ‘여지’를 만들어준 것이다.
  5. 낙상 예방: 회복 경로 보호 낙상은 단순 사고가 아니라 회복의 경로를 붕괴시킨다. 한 번 낙상을 경험하고 나면 1년 뒤 50%는 다시 낙상을 한다. 고관절이나 척추가 부러지기 쉽고, 이 골절 치료 후엔 6개월, 아니 수년간 공들여 쌓은 근육과 건강을 단번에 무너뜨린다. 평창 프로젝트는 의료진과 사회복지사가 직접 가정을 방문해 낙상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문턱을 없애고, 안 쓰는 이불을 치우고, 어두운 조명을 교체했다. 발에 걸리는 전선을 정리하고 들뜬 장판을 보수했다. 화장실에는 미끄럼 방지 매트와 안전바를 설치했다. 동시에 운동 프로그램을 통해 넘어질 뻔한 상황에서 중심을 잡는 평형 감각을 훈련시켰다. 주거 환경 개선과 균형 훈련을 병행해 “움직여도 안전하다”는 신경학적 신뢰를 회복시키자 활동 반경이 다시 넓어졌고 두려움 없이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이 열렸다.

회복 핵심 메커니즘은 결국 ‘근육’

 

추적 분석 결과, 가장 큰 변화를 이끈 핵심 메커니즘은 근감소증 개선이었다. 특히 더 노쇠하고 건강 상태가 나빴던 집단에서 효과가 더 컸다. 이는 가속화된 노화조차도 다면적 접근으로 충분히 되돌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근육이 부족하면 운동을, 영양이 부족하면 영양 보충을, 기억력이 떨어지면 인지 재활을 떠올린다. 혈압이 생기면 고혈압 약을 먹고, 당뇨가 생기면 이를 대응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동차나 로봇과는 달리 부품 간(장기 사이) 연결이 긴밀하다. 근육 움직임이 살아나면서 뇌 자극이 늘어나 인지 기능을 개선시키고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사람도 더 만나고 우울감은 개선된다. 근육 양이 늘면서 체력도 늘고 대사적으로 더 안정되고 호르몬 분비도 더 좋아진다. 이 모든 과정은 다시 영양 섭취와 운동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효과도 극대화시키는 선순환을 이룬다.

 

질병 하나하나를 쫓아다니며 문제를 바라보고 약을 늘리는 것보다, 내재 역량 핵심인 ‘근육’을 치료하는 게 더 효율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임을 증명했다.

 

당신의 노후도 다시 설계할 수 있다

평창 77세 어르신들이 보여준 변화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노쇠는 늙어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고통이 아니다. 잘못된 설계와 방치된 관리의 결과일 뿐이다. 적절한 운동 신호를 주고, 충분한 영양 재료를 공급하며, 우울과 약물이라는 방해물을 걷어내고,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준다면, 인간의 몸은 나이와 상관없이 다시 반응하고 성장한다.

 

반대로 나이 탓이라 안 된다고 받아들이는 순간, 더 빠른 속도로 건강은 나빠진다. 나이가 많고 노쇠한 몸일수록 치료 효과가 더 좋다. 효과가 영원히 지속되는 건 아니다. 연구 결과, 6개월 프로그램 종료 후 약 2~3년이 지나면 효과가 서서히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마치 주기적으로 백신을 맞듯, 노쇠 예방 역시 2~3년 주기로 몸 상태를 점검하고 다시 집중적으로 개입하는 ‘부스터 기간’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준다. 인생이 그렇듯 포기하는 순간이 끝이다.

 

장일영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조선일보    입력 2025.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