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취중잡담]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 개발사 바이오미 윤상선 대표

미생물이라 하면 흔히 ‘보이지도 않는 하찮은 존재’, 혹은 감염과 오염의 주범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이런 편견은 미생물 세계의 단면만 지켜본 결과일지 모른다. 우리가 무심히 여긴 작은 생명체들이 사실 인류의 건강을 지켜주는 작은 거인일 수도 있다.
연세대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의 윤상선(54) 교수는 작은 거인의 잠재력에 주목해, 공생 미생물을 기반으로 한 신약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바이오미를 설립해 ‘미생물은 애물단지’라는 묵은 편견을 무너뜨리고, 착한 미생물의 가능성을 일깨우고 있다.
◇미생물의 숨겨진 가치에 주목한 스타트업

바이오미는 2020년 11월 설립된 마이크로바이옴(미생물) 기반 치료제 개발사다. 14명의 구성원 중 3분의 2가 연구인력으로, 4가지 후보물질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항생제 내성 감염 치료제(BM111)와 심혈관 질환 치료제(BM109) 두 가지에 역점을 두고 개발을 진행 중이다.
초기 스타트업이지만 내실을 다지며 탄탄하게 성장하고 있다. BM111은 셀트리온과 공동 개발 중이다. 심혈관 질환 치료제는 국가신약개발사업단 연구비를 받아 미국 식품의약국(FDA) IND(임상계획승인)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전국 35개 병원에 분변이식용 분변을 공급하는 사업을 통해 매출도 창출하고 있다. 올해 연세대 교원창업 기업을 대상으로 수여하는 연세창업대상을 받았다.
◇미생물과 함께한 16년의 연구 생활

윤 교수는 한양대 공업화학과 졸업 후 카이스트(KAIST) 생명화학공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신시내티 의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았다. 2009년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로 임용돼 16년째 연구실을 지키고 있다.
학부 4학년 때 접한 생물화학공학이 그를 미생물의 세계로 이끌었다. “화학공학이 생물과 연결될 줄 몰랐어요. 그 중에서도 미생물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미생물은 사람의 소화기에 많이 존재하는 단세포 생명체입니다. 과거에는 병원성 감염 미생물에 대한 연구가 주류였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몸에서 좋은 역할을 하는 공생 미생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미생물이 면역 시스템과 뇌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되기 시작했죠. 제 연구 인생 역시 미생물 패러다임 변화와 궤를 같이 했습니다. 커리어 초반에는 모든 종류의 미생물을 연구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공생 미생물에 집중하기 시작했죠.”
과거, 실험용 쥐를 병들게 했던 미생물이 실험용 쥐를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열쇠가 된 것을 보고 신약 개발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감염성 미생물을 연구할 때 미생물은 실험 쥐를 아프게 하는 나쁜 존재였는데요. 공생 미생물 실험을 통해 병에 걸린 쥐가 치료됐을 때 ‘이 미생물로 사람도 치료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론적으로 검증한 미생물의 효능을 현실에 적용할 차례라고 판단했죠.”
◇미생물을 적이 아닌 동료로 바라봤다가 생긴 변화

바이오미의 첫번째 후보 물질인 BM111는 항생제 내성 세균 문제에서 출발했다. 과거 항생제만 써도 쉽게 낫던 감염이 이제는 잘 치료되지 않아, 항생제 내성 세균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 미생물을 죽이는 방식이 오히려 더 강한 변종을 만들어 낸 것이다. 윤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가 선택한 해법은 장내 공생 미생물, 즉 마이크로바이옴이었다. “죽이는 대신, 좋은 미생물로 나쁜 미생물을 치료하자는 발상에서 BM111이 출발했습니다. 미생물을 적이 아닌 동료로 바라보는 전환이 감염 치료의 새로운 길을 열 수 있겠다고 본 것이죠.”

BM111은 네 가지 분변 미생물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치료제다. “우리 장 안에는 500종이 넘는 미생물이 섞여 있습니다. 그 많은 미생물 중에서 몸에 이로운 4종을 골라낸 게 핵심 기술이죠. 항생제 내성 세균에 감염된 환자를 대상으로 세브란스 병원에서 분변 이식을 진행했습니다. 동일한 기증자의 분변임에도 일부 환자에게만 치료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반응을 보인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의 분변을 심층 분석한 끝에, 치료 반응을 높이는 4종의 핵심 미생물을 선별할 수 있었습니다.”
선별한 4종의 미생물을 바탕으로 BM111 개발이 시작됐다. 이 체료제의 핵심 기전은 ‘탈집락화’다. “장 안에 있는 병원성 항생제 내성 세균은 집락을 이루고 있는데요. BM111은 이 집락을 분해하고 몸 밖으로 내보내는 탈집락화를 유도합니다. 선택된 4종의 미생물이 나쁜 세균을 제어하도록 도와주는 셈이죠. 미생물을 죽이는 기존 방식과 달리, 좋은 미생물을 활용하는 완전히 새로운 문제 해결법입니다. 현재 임상시료를 생산 중이며, 환자 투약을 앞두고 있습니다.”
◇TMAO 낮추는 착한 미생물로 심혈관 치료제 개발 도전

바이오미의 두 번째 후보 물질 BM109는 TMAO(트리메틸아민 N-옥사이드) 농도를 낮추는 치료제다. TMAO는 혈관에 동맥경화를 유발하고 혈전증을 일으켜 심혈관질환을 발생시키는 물질이다. 심혈관 질환자가 많은 미국에서는 혈액검사 항목에 TMAO 수치를 포함시키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건강한 삶을 위해 꼭 관리해야 하는 물질로 꼽힌 셈이다.
착한 미생물이 나쁜 미생물을 분해하는 BM109는 혈중 TMAO 농도를 낮추는 전례 없는 접근법이다. “혈중 TMAO 농도가 높으면 혈관 건강이 악화됩니다. 최근 TMAO가 장내에서 생성된 TMA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요. 이 연구를 보고 ‘장 안 미생물 중 TMA를 분해할 수 있는 균이 있지 않을까’생각했습니다. 실험으로 선별한 끝에, TMA를 분해해 혈중 TMAO 농도를 낮출 수 있는 균을 찾아냈습니다.”

BM109의 기전이 아직 생소한만큼, 상용화가 된다면 큰 파급력을 가질 수도 있다.”경쟁자가 아예 없으면 시장성을 인정받기 어려운데요. 미국에서 비슷한 기전의 약물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 생기면서 바이오미의 접근이 과학적·실제적 필요성을 갖는다는 걸 보여줄 수 있게 됐습니다. 장에서 만들어지는 해로운 물질을 직접 제어하는 방법은, 콜레스테롤 농도를 관리하는 것처럼 심혈관 질환 관리에 새로운 옵션이 될 겁니다.”
바이오미가 개발 중인 신약은 모두 미생물 생균 치료제(LBP)로, 최근 들어 제약 시장에서 주목 받기 시작한 모달리티(modality, 약물이 약효를 나타내는 방식)다. 그만큼 LBP에 의문을 던지는 이도 많다. “의학이 많이 발전했지만 인류는 여전히 난치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어요. 우리 몸에 공생하는 미생물은 새로운 모달리티로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기존 방식으로 해결하지 못한 일을 해낼 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LBP은 잠재력이 큽니다.”
◇셀트리온과 항생제 내성 감염 치료제 공동 개발

바이오미는 독자적인 접근법으로 업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2021년 바이오·의료 창업 혁신 플랫폼 서울바이오허브에 입주했다. 약 3년 전부터 유명 제약사 셀트리온과 BM111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으며, 이 인연을 토대로 지분투자도 받았다.
2024년에는 서울바이오허브가 셀트리온과 공동으로 주최한 오픈이노베이션 기업으로 선정됐다. “서울바이오허브가 글로벌 제약사와 연결고리를 마련해준 덕분에,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질환이나 약물이 무엇인지 파악하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셀트리온과의 협업은 BM111 개발의 디딤돌이 돼 줬죠. 큰 기업의 시각과 인사이트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된 것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당장은 BM111, BM109 두 약물의 상용화에 집중할 구상이다. “항생제 내성 감염은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2019년 한 해에만 이 문제로 500만명이 사망했어요. 코로나19로 인한 3년간의 사망자 800만명과 비교해도 심각한 수준이죠. 심혈관 질환은 주요 사망 원인으로, 기존 스타틴 계열 약물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바이오미의 접근법이 인류가 당면한 문제 해결에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윤 교수는 교수에서 대표자로 역할이 늘어나면서 시야도 확장됐다고 말했다. “교수로만 살았다면 전혀 경험하지 못했을 일들을 겪고 있습니다. 연구실에서는 제 사고가 실험실 밖으로 확장되기 어려웠을 텐데, 이제는 세계를 무대로 어렵지만 의미 있는 도전을 하고 있죠. 예전에는 제자를 교수로 키우는 데만 집중했는데요. 이제 산업 분야에도 인재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합니다. 제자들에게 다양한 회사로 진출해 여러 일을 경험하는 것도 가치 있는 길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창업하지 않았다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겠죠.”
진은혜 더비비드 기자 박유연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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