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상식

잠만 잘 자도 복권에 당첨된 듯한 기분을 매일 느낄 수 있다

해암도 2025. 12. 8. 06:36

[MOGI 호르몬을 잡아라! 몸이 달라진다]
행복과 숙면의 비밀 : 멜라토닌·세로토닌
잘 자야 행복… 불행의 고리 끊는 첫 걸음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복권에 당첨되면 얼마나 행복할까?’많은 사람이 한 번쯤 상상하는 달콤한 장면이다. 그런데 실제 연구에서는 이와 비슷한 행복감을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느끼는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잘 자는 것, 즉 양질의 수면이다.

 

영국 워릭대학교 심리학과 연구팀은 약 3만 명을 4년 동안 추적하며 수면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수면 시간과 수면 질이 개선될수록 행복도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일부 참여자는 “몇 억 원짜리 복권에 당첨된 것과 비슷한 수준의 행복감을 느꼈다”고 보고했을 정도다. 이는 단순히 ‘잠을 자니까 기분이 좋다’는 수준이 아니라, 수면이 심리적 안녕감 전반을 구조적으로 끌어올리는 핵심 요인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행복해서 잘 자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잘 자서 행복해지는 것일까? 정답은 둘 다다. 수면과 행복은 단방향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며 강하게 얽힌 순환 구조를 이룬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신체 컨디션은 물론 정서 안정성도 크게 떨어진다. 중장년층이라면 하루만 잠을 설쳐도 짜증이 늘고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경험을 익히 알고 있다. 반대로 깊이 잠을 자면 근육과 장기의 회복 속도가 빨라지고,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 수치가 낮아져 몸과 마음 모두 상쾌해진다.

 

거꾸로 행복한 사람도 대체로 잠을 잘 잔다.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미래에 대한 과도한 불안이 적은 사람은 잠들기 전에 ‘걱정의 연결고리’에 빠질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잡념이 적으면 몸은 더 쉽게 이완되고, 수면 단계로 자연스럽게 진입한다. 결국 행복이 수면을 돕고, 수면이 다시 행복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행복과 숙면을 잇는 ‘父子 호르몬’

 

수면–행복의 상호 보완성은 호르몬 체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이 세로토닌(행복 호르몬)과 멜라토닌(수면 호르몬)이다. 이 둘은 서로 독립된 호르몬이 아니라, 연결된 한 줄기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우리가 섭취하는 필수 아미노산 중 하나인 트립토판은 몸 안에서 세로토닌의 원료가 된다. 하지만 트립토판을 먹는다고 자동으로 세로토닌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여러 효소, 비타민 B군, 마그네슘 같은 조효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합성이 이루어진다. 이때 햇볕을 쬐고,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것은 세로토닌 합성에 중요한 효소를 활성화해 세로토닌 생산량을 크게 늘린다. 그래서 ‘햇빛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표현은 과학적 사실과도 합치된다.

 

낮 동안 충분히 만들어진 세로토닌은 밤이 되면 멜라토닌으로 전환된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뇌 속 송과선이 ‘지금은 휴식할 시간’이라는 신호를 보내면서 세로토닌이 멜라토닌으로 빠르게 바뀌기 시작한다.

 

따라서 낮에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밤에 멜라토닌도 낮아지고, 결과적으로 수면의 질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잠들기 전 밝은 조명을 줄이고 블루라이트를 차단하는 것이 필수다. 스마트폰 화면의 청색광은 송과선이 ‘지금은 낮’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어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멜라토닌에서 세로토닌 균형 중요

 

흔히 세로토닌이 늘어나야 멜라토닌도 많이 만들어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반대 방향도 성립한다. 멜라토닌이 안정적으로 분비되면 세로토닌 시스템 역시 균형을 찾는다.

 

양질의 수면은 뇌의 전두엽 기능을 회복시키고 이 부위는 감정 조절과 충동 억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잘 자면 감정의 파도가 잦아들고 평정심이 높아진다. 그 결과 성취감도 늘고,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체감량이 줄어든다. 즉, 숙면이 복권 당첨과 비슷한 행복감을 제공하는 이유는 우리 뇌의 감정 조절 시스템이 수면을 통해 재정비되기 때문이다.세로토닌 밸런스가 맞춰지면 멜라토닌 밸런스도 맞춰진다는 인과 관계는 반대의 경우도 성립된다. 멜라토닌 분비량이 늘어서 세로토닌이 늘어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잠과 행복의 선순환 고리 구축하기

잠을 잘 자지 못해 하루의 시작이 무겁고, 스트레스 때문에 밤마다 뒤척인다면 세로토닌–멜라토닌 시스템이 악순환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고리를 선순환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본 원칙이 도움이 된다.

 

첫째, 트립토판을 충분히 섭취한다. 트립토판은 체내에서 합성되지 않아 음식으로 섭취해야 한다. 우유·치즈 등 유제품, 닭고기, 콩류, 견과류, 바나나 등이 대표적이다. 규칙적인 식사가 세로토닌 재료를 만드는 셈이다.

 

둘째, 햇볕과 운동은 필수다.한낮에 15분만 걸어도 몸의 생체 리듬이 ‘낮-밤 신호’를 또렷하게 구분하고 세로토닌을 원활히 합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심박수가 조금 오르는 정도의 산책만으로도 신체·정신 모두의 긴장이 완화된다.

 

셋째, 수면 전 ‘빛 차단’을 생활화한다. 세로토닌이 멜라토닌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어둠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의 블루라이트는 멜라토닌 분비를 강하게 억제하는 대표적 요소이므로 잠들기 최소 2시간 전에는 사용을 줄여야 한다.

 

행복을 찾아 멀리 갈 필요는 없다. 우리 몸의 호르몬 시스템은 이미 행복으로 향하는 길을 내장하고 있다. 세로토닌과 멜라토닌의 균형만 제대로 되면 우리는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충분한 만족감과 평온함을 누리며 살 수 있다. 파랑새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밤 깊게 잠드는 그 순간 바로 곁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안철우 연세대 의과대 교수    조선일보    입력 2025.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