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고개만 갸웃해도 간식 바치니 인간 길들이기 별것 아니네

해암도 2021. 4. 17. 11:28

[아무튼, 주말] 나는 강아지로소이다

 

 

개들 세계에는 ‘일찍 일어나는 개가 뜨신 똥을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것은 증조할머니 때나 통하던 말이다. 요즘 개들에게 그런 말을 했다간 꼰대견으로 찍히기 십상이다. 대신 요즘 개들은 눈으로 모든 것을 말한다.

 

내 눈동자에는 흰자가 거의 없어서 인간들은 내가 눈으로 뭘 말하는지 잘 모른다. 그런데도 자꾸 내 눈에서 표정을 읽으려고 한다. 내가 식탁 밑에 앉아 개아범을 쳐다보면 그는 안 돼, 너 먹는 거 아냐, 하고 말한다. 그러나 엄마는 인간이 뭘 먹고 있으면 그 옆에 얌전히 앉아 하염없이 쳐다보라고 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러고 있으면 언젠가는 먹을 게 떨어진다고 말이다.

 

나의 눈은 평온할 때나 화 나고 약오를 때나 똑같다. 내 눈은 뜨고 있거나 자려고 감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물론 눈 때문에 속마음을 들키는 경우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개아범이 엎드려 있는 내 앞을 지나갈 때 나는 고개를 베개에 받친 채 그를 쳐다보는데 그는 귀신같이 내가 보고 있는 걸 안다. 내 눈동자 아래 초승달처럼 흰자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분하다. 혹시 간식을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들켜 체면을 구겼으니까 말이다.

 

 

카펫에 똥을 쌌거나 책 물어뜯은 것을 개아범이 발견했을 때 나는 여차하면 달아날 방향으로 고개를 약간 돌린 채 개아범을 곁눈질한다. 그러면 개아범은 콧김을 씩씩 뿜으면서 너 내가 어쩌고 저쩌고 했잖아 하고 다가온다. 이때 집 안에 들어가 있으면 안 된다. 사방이 트인 공간에 나와 있다가 그가 내 궁둥이라도 때릴 것 같으면 생각해 뒀던 곳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숨는다. 그건 테이블 밑이나 침대 밑처럼 쉽게 끄집어낼 수 없는 장소여야 한다.

 

그의 화가 풀린 것 같을 때 나는 뱀처럼 조용히 기어가 그 곁에 엎드리거나 발등을 부드럽게 핥는다. 자칫 발끝으로 콧잔등을 얻어맞을 수 있는 위험한 시도이지만, 개아범은 대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넘어간다. 이것이 인간을 길들이는 기본 테크닉이라고 엄마는 말했다. 잘못해도 된다. 그러나 싸움을 피하고 반드시 사과해라. 이것이 엄마의 가르침이었다.

 

기분이 좋을 때도 내 눈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대신 꼬리를 흔들며 입을 벌리고 혀를 내미는데 이빨은 드러내지 않는다. 혀를 내미는 이유는 땀샘이 없어 혀로 땀을 배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나더러 헐떡거린다고 하지만, 나쓰메 소세키 소설 속 고양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얼굴은 털도 없이 미끌미끌한 게 흡사 주전자 같”은 인간들은 온몸이 땀구멍이니 100m 달리기 했을 때 말고는 헐떡거릴 일이 없을 것이다.

 

화가 나서 싸워야 할 때도 내 눈은 똑같다. 그러나 입을 가로로 길게 벌리고 혀를 집어넣은 채 이빨을 드러낸다. 이것은 우리의 조상인 늑대나 귀여움 하나로 평생 먹고 사는 말티즈나 똑같다. 그러므로 개의 표정은 눈에 있지 않고 입에 있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항상 개의 눈을 먼저 본다. 다소곳이 앉아 쳐다보기만 해도 간식을 준다. 나는 생후 넉 달 만에 인간 길들이는 게 별것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엄마가 가르쳐 준 필살기는 따로 있다. 아무리 눈을 영롱하게 뜨고 쳐다봐도 안 통할 때, 고개를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15도쯤 기울이며 쳐다보라는 것이다. 이 기술에도 넘어가지 않는 냉혈한은 거의 없다고 했다. 오늘 개아범이 간식 하나를 던져주기에 얼른 먹은 뒤 이 기술을 써봤다. 그가 흐뭇하게 웃으며 간식을 하나 더 줬다. 우리 개아범은 영리해서, 훈련을 잘 따라오고 있다.

 

<다음 주에 계속>

토동이 말하고 한현우 기자 적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1.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