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기자, '새해 복 많이 심으십시오'라고 인사한답니다. 복을 받는 것은 은행에서 돈을 찾아 써버리는 것이고, 복을 심는 것은 복을 여투는 것(저축)이니까요."
복(福)은 삶에서 누리는 행운이다. 복을 짓지도 않고 복이 들어오기만 바랄 순 없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는 '새해에 (노력한 만큼) 행운을 빕니다'라는 뜻을 담기엔 부적절한 그릇이라는 얘기다. '새해 복 많이 심으세요'나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로 바꿔본다. 입에 착 달라붙지는 않지만 뜻은 더 잘 통한다. 행운은 노력 또는 책임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미가 실리기 때문이다.
인생은 로또가 아니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 잘 가꿔야 가을에 열매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신년 인사를 뜯어보면 뿌리기보다 거두는 데 방점이 찍힌다. '새해 복 많이 땡기세요'(금융업계), '새해 표 많이 받으세요"(정계), '새해 복 많이 잡수세요'(요식업계), '새해 복 많이 즐기세요'(소셜업계), '새해 북(book) 많이 받으세요'(출판계)….
조상들은 어떻게 덕담했을까. 조선 19대 왕 숙종은 고모의 오랜 병이 완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새해에는 숙병이 다 쾌차하셨다 하니 기뻐하옵나이다'라고 편지에 썼다. 조선시대 신년 덕담은 바라는 바를 마치 확정된 사실처럼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전통적으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표현에서 '복 많이 받으세요' 같은 명령형 인사말은 쓰지 않았다고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설명한다.
요즘 주고받는 '복 많이 받으세요' '부자 되세요' '행복하세요'는 은근한 강요처럼 들린다. 신년에는 마땅히 복을 받아야 하고, 당연히 부자가 되어야 하고, 으레 행복해져야 하나? 가진 게 충분히 많은 사람도 남과 비교하면서 '나는 왜 박복한가' '나는 왜 가난한가' '나는 왜 불행한가'라며 쓸데없이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신(神)이 사라진 현대에서 행복은 신을 대체하며 세속종교가 되었다. 이 이데올로기는 연말 연초에 훨씬 더 지배적이다. 자기계발서나 항우울제 시장이 증명하듯이 "행복은 가장 유망
한 성장산업"이라는 뼈 있는 농담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약국에서 감기약이나 소화제를 사듯이 행복을 구매할 수는 없다. 삶과 죽음처럼 행복과 불행도 한 묶음이다. 행복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
거북한 신년 인사와는 작별하자. 2020년부터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새해 복 많이 심으세요'라거나 '새해 노력한 만큼 행운을 빕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