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갈비탕만으로 1년에 9만 그릇 파는 김보균

해암도 2015. 4. 26. 11:32

동시에 두 사람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한 명은 SBS<생방송 투데이>의 ‘대박맛집’을 취재 중인 카메라 감독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외식 관련 잡지사 편집장이었다. 사람에 대한 평가가 어쩌면 이리 같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20년 넘게 취재하면서 이 친구만큼 선한 사람을 못 만났어요. 한결 같아요. 매출이 그렇게 뛰면 초심 잃기 십상인데…”

궁금했다. 이런 평가를 받는 이가 지금까지 내 레이더에 걸리지 않았다니. 2년째 출연 중인 CBS 라디오 <손숙·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 작가에게 다음 주 게스트로 모시자고 부탁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그 사이 인터넷에 올라온 평들을 하나하나 곱씹었다. 혹시 돈으로 대충 만들어낸 신화가 아닐까? 궁금한 게 생기면 못 참는 성질머리 더러운 평론가인지라 냅다 차를 몰고 문래동으로 향했다.


이런 고약한 일이 있나! 서둔다고 했건만 맹수처럼 몰려드는 단골들보다 한발 늦고 말았다. 이미 가게 앞은 장사진이다. 어림잡아 30여명은 되어 보인다. ‘이 집의 점심메뉴를 먹고야 말겠다’는 굳은 각오로 똘똘 뭉친 넥타이 부대원들이 바리케이드처럼 나를 막고 섰다.

갈비탕만으로 1년에 9만 그릇 파는 김보균①
시계를 보니 이제 11시35분. ‘에이, 도대체 뭘 먹겠다고 이 난리야. 이 양반들은 직장 상사도 없나? 어떻게 이리 빨리 식사를 하러 나올 수 있는 거야?’ 온갖 옹졸한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대기시간을 묻는 척 매장이라도 한번 둘러볼까? 10여 분이 지나도록 문을 열고 들어설 용기를 내지 못했다. 만약 주인장과 눈이라도 마주친다면 생방송 당일 얼굴이 달아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말렸다. 염탐까지 하러 왔다는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아 발걸음을 옮겼다. 골목을 빠져나오며 인근 식당들을 힐끗거렸다. 원래 고정 인구가 많은 상권인가? 궁금증은 채 서른 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맥없이 풀려버렸다. 대부분 한 두 테이블 차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손님이 적은 식당이 그러하듯 휑한 공기만이 가득했다.

스튜디오에서 만난 ‘값진식육’의 김보균 대표(사진)는 멋진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매우 선해보였다. 비즈니스는 설득이다. 설득을 위해서는 다수가 선(善)이라고 믿는 사회적 증거도 필요하고 일관성, 권위, 희귀성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는 바로 호감이다. 끌리는 사람을 따르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보균 대표는 고객을 설득하기에 충분한 조건들을 모두 가진 듯했다.

소금 하나도 허투루 내놓지 않아

며칠이 지나고 다시 그의 가게를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발끝에 뭉툭한 게 걸린다. 하얀 포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곰소염전 소금’이라는 인쇄문구와 ‘2014 석탑산업훈장 수상, 해양수산부 소금품질검사기관 품질인증’을 증명하는 표시가 동시에 적혀 있다. 소금 하나도 허투루 내놓지 않는다. 이거지! 시선을 위로 끌어올리는데 고기 손질하는 육부(肉夫)가 턱하니 버티고 있다. 장정 서넛이 들러붙어 갈비 손질에 여념이 없다. 몸이 유난히 날렵해 보이는 이가 막내인 모양이다. 상자에서 꺼낸 갈비를 잡고 전기톱이 달린 육절기에 덩어리를 밀어 넣는다. 날카롭게 생긴 가장자리의 뼈가 잘라지면서 튼실하고 온전한 갈비와 자투리 갈비로 나뉘어진다. 욕조만한 개수대에 찬물을 받고 1차로 피를 뺀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갈비를 물에서 꺼내 다시 손질에 들어가는 청년은 아까 그 총각보다 족히 서너 살은 많아보였다. 분명 선배일 게다. 그래야 마지막 손질을 할 수 있는 자격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챙이 있는 모자를 약간 삐딱하게 쓴 이 친구의 칼질을 자세히 보니 기름 제거 담당인 듯하다. 작지만 아주 살벌하게 생긴 과도만한 칼로 하얀 지방들과 뼈와 내장을 가로 막고 있는, 얇지만 질긴 막을 쭉쭉 벗겨내고는 이내 뼈와 뼈 사이에 깊게 칼집을 넣는다. 같은 칼로 같은 갈비덩어리를 손질하는데 깊이와 손목의 스냅이 달라진다.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한다면 마치 도마 위에서 칼이 춤을 추듯 리듬을 타리라.

값진 식육에서는 선도가 좋은 1등급과 2등급 한우로 집적도가 높은 풍미를 만들어야 한다. 특수 제작된 숙성고에서 습식 에이징을 한다.
값진 식육에서는 선도가 좋은 1등급과 2등급 한우로 집적도가 높은 풍미를 만들어야 한다. 특수 제작된 숙성고에서 습식 에이징을 한다.

두 사람의 동작 하나 하나를 관찰하고 있던 마지막 선수는 2차까지 가공된 갈비 속살을 진지하게 살피다가 행여 잡미(마지막에 남는 지저분한 맛)를 만들어낼지도 모르는 부위에 과감히 메스를 들이댄다. 낙관을 찍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냅다 갈비 덩어리를 차디찬 냉수에 던져 넣는다. 다시 한 번 피를 뽑아 불순물을 없애버리겠다는 굳은 의지다. 두어 시간 더 찬물 샤워를 마친 녀석들은 거짓말 약간 보태 성인 여성 한 명이 들어갈 만큼 커다란 들통에 옮겨진다. 이만한 통을 5개는 끓여야 겨우 점심 손님을 상대할 수 있다. 평균 250인분! 11시20분부터 밀어닥치는 굶주린 고객들은 뚝배기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말이 없다. 그저 예닐곱 덩어리의 갈비뼈를 뜯거나 국물을 후루룩거릴 뿐이다. 거의 모든 손님들이 계산을 마치고 나가면서 젊은 주인장과 눈을 맞추고 싶어 한다.

“잘~ 먹었습니다.”

착하고 푸짐한 갈비탕을 만들어준 데 대한 감사와 ‘다음번에도 좋은 자리 부탁합니다’라는 청탁성 의미가 동시에 담겨 있다. 그렇게 1시간 반이 흐르는 동안 200명이 훌쩍 넘는 손님들이 값진식육의 문턱을 넘나든다. 주방 직원 중 하나가 멍해 있는 나를 향해 으스대며 멘트를 던진다.

“저희 사장님이 2년간 저 많은 갈비탕을 혼자 끓이셨어요…”

갈비탕만으로 연 8억 매출

말줄임표에는 ‘당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걸!’이라는 비교가 숨은 듯하다. 바람을 좀 쐬겠다는 핑계로 가게를 나섰다. 하루에 250그릇이면 한 달에 7500, 1년이면 9만 그릇이라는 소리인데… 한 그릇에 9000원이니… 가만있자… 세상에 갈비탕만으로 1년에 8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셈이다. 싱글벙글할 만하군! 유리창 안으로 아까 그 장정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갈비 손질은 다 끝났다고 했는데… 다시 찾은 주방에서 셋은 일사불란하게 숙성고의 고깃덩어리들을 도마로 옮기고 있다. 눈을 마주친 막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친절을 베푼다.

“저녁장사 준비하는 거예요. 서두르지 않으면 낭패를 보거든요.”

비닐을 벗기고 근막에 따라 덩어리를 분할한다. 원래 소고기는 작은 근육 덩어리들이 모여 큰 부위를 형성하는데, 내 눈 앞에서 몸을 비틀고 있는 녀석은 등심이다. 분리한 덩어리에서 하얀 기름을 제거하는 작업이 한참이다. 모자이크처럼 짜여진 육고기 주방에 누군가 비집고 들어온다. 이 집 주인장이다. 주방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분위기의 사내가 장갑을 끼며 앞으로 나선다. 이내 칼의 날을 세우더니 고기를 잡는다. 괜히 평론가 앞이라고 폼 잡는 거 아닐까 의심할 틈도 없이 칼질이 시작된다. 감히 대한민국 최고의 솜씨라 평할 수는 없지만 내공이 만만치 않다. 씨익 웃더니 말을 잇는다.

“제가 이래 뵈도 해군 조리병 출신에 식육 가공업체 근무 경력 6년입니다.”

고기를 포기한 나의 시선과 귀는 그에게 집중됐다. 이야기에 빨려든다. 이야기는 이랬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다 입대해서 해군 취사병을 했단다. 칼질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던 터라 복학 전에 외식업체주방에서 아르바이트했다. 학교로 돌아간 뒤에도 어떻게 하면 외식 관련 직장을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결국 호텔 문을 두드렸다. 마약 같은 중독성 때문인지 고기를 만지는 일이 정말 행복했다. 그 뒤 육가공 회사에서 가공, 유통, 판매, 영업직을 거치며 잔뼈가 굵었다. 그랬어! 그래서 고기를 만지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던 게야. 확실히 예술적 감각을 타고난 사람은 외식업에 유리하다. 음식을 내는 플레이팅부터 매장 인테리어까지 그 재능이 영향을 끼친다. 가게 곳곳에 붙은 안내문들도 김 대표가 직접 썼다. 컴퓨터 폰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강렬함과 예술성이 진동한다. 보고난 뒤 한참을 낄낄거린 재미난 내용이 있어 지면에 옮겨본다.

식당은 맛도 있어야 하지만 재미도 있어야 한다고 강연을 다닐 때마다 그렇게 힘주어 말했는데 여기 그 주인공이 있을 줄이야? 갑자기 궁금해진다. 실패는 없었던 걸까?


두태기름으로 고기 겉면 코팅

“왜 없었겠어요. 식육 가공업체에서 저를 매니저로 내세워 대형 고깃집을 냈다가 쫄딱 망했어요. 그 때는 제가 외식업에 대해 전혀 몰랐거든요. 그리고 값진식육 하기 전에 선배랑 베트남 쌀국수 집을 열었는데 뜻이 맞지 않아 돌아섰고, 이 가게도 처음에는 처남이랑 했었는데 결국 떠나보냈지요.”

값진식육 내부에 걸려 있는 장식물.
값진식육 내부에 걸려 있는 장식물.

그는 그 흔한(?) 투플러스 등심을 사용하지 않는다. 모두가 그 부위만 찾다보니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가격이 올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선도가 좋은 1등급과 2등급 한우를 사용한다. 여기에 ‘집적도가 높은’ 풍미를 만들기 위해 특수 제작된 숙성고에서 습식 에이징을 한다.

온도와 습도 그리고 시간은 기업 비밀이란다. 불도 그 흔한 ‘참숯’ 대신 가스불 위에 돌판을 올리고 그 위에서 고기를 굽게 세팅했다. 직화구이한 고기는 건강에도 안 좋을 뿐더러 고기 맛도 떨어뜨린다고 생각해서다. 판이 뜨거워지면 두태기름으로 겉면을 코팅해준다.

고기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다 아시리라. ‘대도식당’도 ‘창고43’도 모두 두태기름을 바른 무쇠 철판에 고기를 구워준다는 사실을. 열로 인해 연기가 스멀스멀 오르기 시작하면 고기를 올린다. ‘치이이익~’ 백허그를 하듯 고기가 돌판에 척하니 들러붙는다. 앞뒷면을 익혀 소금에 찍으려는 순간 김대표가 나를 말린다. 액젓소스를 권한다. 옅은 간장 빛이 도는 묽은 소스에 고기를 반쯤 담갔다. 입으로 옮기는데 뜨끈한 녀석이 혀를 감싼다.

값진식육 내부에 걸려 있는 종업원 채용 공고. 김보균 대표의 유머를 맛 볼 수 있다.
값진식육 내부에 걸려 있는 종업원 채용 공고. 김보균 대표의 유머를 맛 볼 수 있다.
아주 조금 배릿한(?) 향이 잠시 잠깐 머물더니 휘발되고 감칠맛이 뒤를 바짝 따라온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달그락거리는 스테인리스 대접 소리가 아니었다면 한참을 그러고 있었을지 모른다. 주인장이 내민 것은 상추 샐러드. 겉절이라는 단어 대신 샐러드라 명명한 이유는 소스가 투명했기 때문이다.

고춧가루나 다진 마늘 등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말 그대로 상추를 투명 소스로 버무린 그 자체. 육고기의 잔미(殘味)가 남아 있는 입에 차가운 녀석을 크게 한 젓가락 밀어 넣는다. 경쾌한 신맛이 양볼에 침을 고이게 만든다. 반사적으로 고기로 손이 간다. 그제서야 좌우에 가득찬 손님들이 눈에 들어온다. 점심시간에 갈비탕을 먹던 손님들이 그러했듯 모두가 행복한 눈을 하고 있다.

그 순간 그의 명함에 적힌 ‘식육 아티스트 김보균’ 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그래, 요리는 종합예술이다. 아티스트는 관람객을 행복하게 해 줄 의무가 있는 거야. 주변이 온통 자동차 정비소 천지이고 메인 도로에서는 간판도 보이지 않는 집이지만 푸짐한 갈비탕과 착한 가격의 한우를 먹기 위해 오늘도 김보균 아틀리에를 찾는 이유를 이제는 알겠다.
김유진 맛컬럼니스트   입력 : 2015.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