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국수와 가자미회무침의 탁월한 만남

해암도 2015. 4. 26. 06:27

 속초 회국수


바다는 인류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래서 신성시되기도 했다. 문명의 시작과 함께 우리의 먼 조상들은 바다 속 생물들을 육지로 데려왔다. 불을 알기 전까지는 당연히 날것으로 먹었을 테고, 불을 발견한 이후에도 바다 속 생물들을 날로 종종 먹어왔다.

펄떡이는 생선을 저며서 먹는 회는 21세기에도 여전히 날것으로 소비된다. 자연 그대로의 횟감은 어떤 장소에서는 한없이 고급이 되었다가 어떤 장소에서는 편한 음식이 되기도 했다. ‘시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그 격을 달리하는 생선회가 어떻게 한 끼 식사가 될 수 있었을까’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한다.

물가자미 회 함께 무쳐낸 ‘37년짜리 국수’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날생선인 회를 도심에서 먹는다는 건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었다. 저온 냉장시설과 양식기술이 발달한 후에야 비로소 생선회를 먹을 수 있었다. 그전에는 바닷가사람들이 주로 회를 먹었을 것이다.

속초에서는 이 도시만의 방식으로 회를 먹어왔다. 이곳에는 바다근처여야 가능한 회국수가 있다. 동해를 끼고 있는 속초인 만큼 도심의 일식집과는 사뭇 다른 형태이다. <속초 회국수>를 운영하고 있는 주인장은 다른 건 몰라도 가자미회국수는 우리나라 최초일거라 자신한다.

	속초 회국수
속초 회국수
<속초 회국수>의 횟감인 가자미는 물가자미다. 참가자미만 맛있는 줄 알았는데, 주인장은 물가자미가 맛이 월등하다고 주장한다. 그 믿음은 물가자미만으로 회 무침을 해온 37년 세월에서 비롯된다.

물가자미는 살이 단단하고 뼈가 무르다. 뼈째 먹어도 식감이 좋다. 하얀 살이 졸깃하며, 간유도 많다. 주인장은 “간유가 뭔지 아냐?”며 웃는다. 아마도 도회지에서 온 사람들은 그 맛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기름 가득한 흰 살 생선의 맛을 전하고 싶어 하는 눈치다. 가자미의 제철을 물으니 사시사철 나온다한다. 언제든 구할 수 있고 언제든 무쳐낼 수 있는 가자미이다. 그래도 가장 맛있을 때가 여름이 오기 전 이맘때라고 귀띔한다.

국수는 하루 150그릇 한정 판매가 원칙

자망에 떼로 잡힌 가자미를 실은 배가 곳곳에서 들어온다. 아야진항, 속초항, 대포항, 동명항, 사천항 등 인근의 여러 항구에서 배가 들어오면 오랫동안 거래해온 중매인이 물 좋은 싱싱한 ‘놈’으로 가져온다. 미리 입찰가격을 제시하면 맞춰서 가져오는데 30년 이상 같이 해온 터라 말하지 않아도 호흡이 척척 맞다.

경매에 낙찰된 가자미들은 한 줄에 10마리씩 두 줄로 엮어 20마리씩 두름으로 들어온다. 몇 두름이나 들어오는지는 예측 불허인 것이, 한 그릇에 얹어진 가자미회의 양이 엄청나다. 매일아침 들여오는 가자미를 당일 소비하는 건 주인장의 원칙이다. 아예 150그릇 정도만 팔고 일찍 들어가 버린다.

주문이 들어오면 아침에 손질해둔 가자미를 총총 썬다. 뼈째 가늘게 썰어낸다. 가자미 뼈는 연한 편이어서 씹어도 불편하지 않다. 가자미와 함께 한편에서는 배, 오이, 자연산 생미역, 바다해초까지 같은 길이로 채쳐 준비 중이다.

<속초 회국수>의 회무침은 벌겋지만 지나치지 않고, 은은한 신맛이 개운함을 준다. 가자미회의 쫄깃함과 연달아 씹히는 채소는 아삭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회 무침을 빛나게 하는 일등공신은 바로 그 아래 포진한 국수에 있다.

‘ㅇ’ 업체 국수만을 40년 가까이 써왔다는 주인장은 그 기업 사장한테 상을 받아야한다며 가벼운 농담을 던진다. 속초의 좋은 물로 펄펄 끓는 면 솥에서 삶아내고 냉수로 깨끗하게 헹궈 나온 매끈한 국수다. 방금 무쳐낸 가자미회 다음으로 채반 가득한 국수가 양푼에 투입된다. 오랫동안 써온 양푼에는 회를 무쳐낸 양념장 여분이 남아있고 국수는 자연스레 그 여분과 뒤섞인다. <속초 회국수>의 국수가 연한 붉은 기가 있는 이유다. 양념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는 회국수의 푸짐한 한 그릇에 우리나라의 생선회 먹는 방법을 엿볼 수 있다. 언뜻 강해보이는 회무침의 붉은 기는 하얀 국수와 만나서 서서히 중화가 되고, 싱싱한 채소가 그 맛을 돋운다.

 

	속초 회국수
속초 회국수

회로 한 끼 식사 가능한 것이 우리나라 생선회를 대하는 방식?

잠시 회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섬나라인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회를 두툼하게 썰었다. 일본은 ‘사시미’라고 부르고, 우리는 ‘회(膾)’라고 한다. 물론 생선회 본연의 맛을 즐기기에는 일본인들의 방식이 나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영향을 받긴 했으나 우리만의 회 먹는 방식은 명백히 달랐다.

우리는 씹히는 맛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얇게 회를 떠서 여러 겹으로 겹쳐 먹거나 다른 음식으로 창조시켰다. 일식집에서나 먹을 수 있는 비싼 어종보다는, 그물 던지면 지천으로 잡히는 잡어들이 그 창조의 대상이었다.

우리나라 어촌에서는 생선을 두툼하게 썰어 그 자체의 맛을 느꼈을 가능성보다는 총총 뼈째 썰어 여러 식구들을 배불리 맛있게 먹을 방법에 더 골몰했을 것이다. 바닷가의 어부들이 잡아오는 물고기 중 귀한 어종은 도심으로 팔려갔을 테니 말이다.

도심보다는 해안근처에서 배부르고 좀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탄생했던 걸로 보인다. 경제 법칙상 흔하면 가격이 내려가고, 구하기 힘든 것은 그 희소가치로 가격이 올라가게 마련이다. 동해뿐 아니라 남해안까지도 시장에서 흔히 보는 물고기들로 회를 사용한 볼륨 있는 음식이 발달한 까닭이다. 동해에서는 그물만 던지면 물가자미가 걸려왔다고 했다.

시장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물고기들을 썰어 채소들과 양념장과 함께 버무려 물을 부어먹기도 하고 밥을 말아 먹기도 했다. 회를 먹으며 한 끼 식사까지도 가능한 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생선회를 대하는 방식이다.

배 위에서, 부두에서 초장으로 맛깔나게 먹었을 생선회는 회국수로 재탄생해 해안가 사람들의 한 끼 식사가 되었다. 회와 채소만으로는 여지없이 부족한 식사를 탄수화물인 국수가 메워주는 순간이다.

1980년대 초반, 도심에서 낯선 일식집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을 무렵 서민들은 그 문턱을 넘기 힘들었다. 1990년대 들어서서야 양식광어에 매운탕으로 비로소 배불리 먹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한쪽 이 바닷가 마을에서는 새콤달콤한 회무침을 얹은 회국수가 사람들을 배불려주었다.

생선본연의 고급스러움에 다가가려는, 수송체계 완벽한 도심의 비싼 회도 물론 맛있다. 하지만 채소와 가자미가 가득한, 인심한번 넉넉한 회국수도 끌린다. 매워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먹어도 남길 수가 없다. <속초 회국수>에는 우리나라사람들의 정서를 가득담은 회국수가 있다. 국수는 여러모로 참 고맙다.


<속초 회국수> 강원도 속초시 배움터길 3, 033-635-2732, 영업시간: 11시~18시


                조선   입력 : 2015.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