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봇 에로티시즘’의 탄생 - 영화 ‘엑스 마키나’

해암도 2015. 2. 4. 08:59


영화 ‘엑스 마키나’

[씨네21] 인간 같은 로봇과 로봇 같은 인간 사이,
< 엑스 마키나>의 마지막 질문

※ 영화의 결말 부분이 언급되는 글입니다.

장르영화는 흔하다. 하지만 제대로 만든 장르영화는 흔치 않다. 대개 장르적 공식은 어설픈 만듦새의 방패막이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장르공식은 빤한 영화라는 오해를 낳았다. <엑스 마키나>는 새로운 상상력의 지평을 넓히려는 야심찬 영화는 아니다. 반전에 대한 강박도 없다.

대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 재료를 탄탄하게, 논리적으로 조합한다. <28일 후…> <네버 렛미고>의 각본을 맡았던 알렉스 갈랜드 감독은 첫 연출작답지 않게 안정된 연출력을 선보인다. 식상함과 탄탄함은 종이 한장 차이다. 그 종이 한장이 무척 두껍다. 기본에 충실한 SF영화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모범사례가 여기에 있다.

영화 ‘엑스 마키나’
SF영화가 단골 소재인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를 다루는 방식은 ‘얼마나 인간적으로 생각하는가’부터 시작하여 ‘얼마나 인간적으로 느끼는가’까지 진화했다. ‘사고’와 ‘감정’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면 A.I.는 더이상 새로운 소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엑스 마키나>는 기존 영화들이 A.I.를 다루는 방식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로봇 에로티시즘’으로 명명할 수 있는 ‘섹슈얼리티를 지닌 로봇’이라는 참신한 설정은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독특한 정서를 아로새긴다. 인공지능에 대한 진지한 SF이자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심리 스릴러이며, 로봇을 가운데 둔 삼각관계 멜로드라마로도 볼 수 있는 <엑스 마키나>라는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

영화 ‘엑스 마키나’

여성성을 강조한 A.I.

세계 최고의 검색엔진 ‘블루북’의 프로그래머 칼렙(돔놀 글리슨)은 ‘블루북’ 회장이자 인공지능 분야의 천재 개발자 네이든(오스카 아이삭)과 함께 일주일을 보낼 수 있는 사내 이벤트에 당첨된다. 네이든의 비밀 연구소에 도착한 칼렙은 자신이 뽑힌 게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네이든이 개발한 A.I. 에이바(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인격과 감정이 진짜인지 흉내인지 구분하는 테스트 때문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칼렙은 에이바와의 대화를 통해 그녀가 얼마나 인간적이고 섬세한지 알게 되고, 테스트가 진행될수록 에이바에게 로봇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로봇의 창조주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로봇에 성(性)을 부여한다는 발상은 충분히 수긍이가는 지점이다. 특히 ‘인간처럼’ 느껴져야 하는 인공지능 로봇의 경우, 뚜렷한 성적 지표를 가지고 있는 게 훨씬 유리할 것이다. SF영화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로봇의 성(性)은 주제의 전면에 드러나진 않아도 서브 텍스트로서 필요한 역할을 해왔다.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데이빗은 불치병에 걸린 자식을 대신해 ‘아들’ 역할에 충실한 로봇이며, 지골로 조는 여성고객의 성적 쾌락을 위해 복무하는 ‘남창’ 로봇이다. 만약 그들 로봇 캐릭터가 ‘딸’이거나 ‘창녀’였다면 는 완전히 다른 정서의 영화가 됐을 것이다.

영화 ‘엑스 마키나’
<엑스 마키나>는 기존 SF영화에선 서브 텍스트에 머물러 있던 인공지능 로봇의 성 문제를 전면으로 끌어올린다. <엑스 마키나>는 기본적으로 심리 스릴러의 구조를 갖췄다. 네이든은 에이바의 창조주로서 그녀의 성능을 시험하려 하고, 에이바는 스스로를 로봇 이상으로 생각하며 연구소를 벗어나려고 한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욕망 사이에 끼어 끊임없이 의심하는 역할을 맡은 칼렙의 서사를 좇으면 잘 짜인 스릴러의 장르적 쾌감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그 심리 스릴러의 중심에 바로 에이바의 여성성이 자리한다.

먼저 에이바에게 부여된 생물학적인 성, 즉 섹스의 영역은 이성애자 남성인 칼렙을 유혹하는 데 부정할 수 없는 매력으로 기능한다. 에이바의 빼어난 미모(네이든은 미리 칼렙의 여성 취향을 파악하여 에이바의 얼굴에 반영했다)는 물론이고, “어떻게 하면 모든 근육과 관절까지도 사람과 같은 기계를 만들 수 있을까”(시각효과감독 앤드루 화이트허스트)를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창조된 에이바의 아름다운 육체는 로봇과 인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피조물로서 신선한 매혹으로 다가온다.

생물학적 여성으로 부여받은 육체성을 활용하지만 언캐니 밸리(인간과 비슷해 보이는 로봇을 보면 생기는 불안감, 혐오감 및 두려움)가 느껴지진 않을 정도의 형태를 지닌 덕분에, 에이바는 평범한 원피스를 입는 수준의 치장만으로도 묘한 섹슈얼리티를 자아낸다. 게다가 에이바는 실제로 성교가 가능한 형태로 제작되었고, 네이든은 칼렙에게 그녀와의 성교를 종용하는 듯한 말을 하기도 한다. 성교가 가능한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하며 섹슈얼리티를 강조한 게 <엑스 마키나>가 처음은 아니지만, ‘유혹하는 주체’로서 육체성을 적극 활용하는 로봇 캐릭터의 등장은 드문 사례다. <스텝포드 와이프>(감독 프랭크 오즈)의 로봇 아내들의 경우 육체성은 강조되지만 주체성이 없고, <그녀>(감독 스파이크 존즈)의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의 경우 주체성은 분명하지만 육체가 없다.

영화 ‘엑스 마키나’

로봇의 에로티시즘

<엑스 마키나>에서 다루는 로봇의 성은 섹스의 영역에서 멈추지 않고 젠더의 영역까지 포섭한다. 에이바가 단순히 육체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만 칼렙을 유혹했다면 그 시도는 실패했을 것이다. 하지만 에이바는 ‘권력을 가진 남성에게 억압받는 여성’이라는 지위를 완벽히 연기하며 동정심을 유발한다. 인공지능 로봇의 ‘인간다움’을 검증할 때 쉽게 통과하기 어려운 지점이 바로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모습일 것이다. 한데 에이바는 이 ‘사회적 인간’의 양태를 모방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억압받는 여성의 삶을 서사화하여 칼렙을 유혹하는 가장 큰 무기로 삼는다. 이러한 설정은 네이든, 에이바, 칼렙이 서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중심축으로 작동한다.

에이바는 연구소를 정전시켜 CCTV를 무용하게 만든 후 칼렙에게 네이든이 하는 말은 모두 거짓이고 자신은 이곳에 갇혀 있는 게 싫다고 읍소한다. 모든 게 의심스런 상황에서 칼렙은 네이든에게 “(에이바가) 날 유혹하도록 프로그래밍했나요?”라는 질문을 하고, 네이든은 “아버지 같은 존재인 나를 제외하곤 처음 만나는 남자가 너니까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답한다. 칼렙과 네이든 사이의 질문과 의심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이러한 과정은 서로의 속내를 파악하려는 두 사람의 심리 게임인 동시에 인공지능 로봇의 ‘인간다움’에 대한 철학적 논박이 되며 관객에게 지적 즐거움을 제공한다. 돔놀 글리슨과 오스카 아이삭 두 배우의 예상보다 강한 화학작용에 힘입어, 에이바를 사이에 둔 삼각관계 멜로드라마로도 보이는 이 구도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대화를 나눌수록 네이든은 점점 더 냉철하게 에이바를 ‘인간 같은 로봇’으로 바라보는 반면 칼렙은 그녀를 ‘로봇 같은 인간’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로봇인데 자각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팔을 긋는 냉정함을 갖춘 칼렙이 프로그래머의 정체성을 버리면서까지 로봇의 유혹에 굴복하는 결말은 약간 과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결말이 당위성을 가지는 이유는 전적으로 섹스와 젠더 양쪽 측면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여성으로서의’ 에이바 캐릭터의 공이다. 에이바의 목적이 오직 연구소 탈출이었다면, 가족이 없는 칼렙의 외로움을 공략하며 가족애에 기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에이바는 ‘잠재적으로 성교 가능한 대상’(섹스)이자, ‘태생적으로 억압받는 여성’(젠더)이라는 명확한 스탠스를 취하며 칼렙을 유혹한다. 이성애자 남성을 유혹하는 데 있어 에로티시즘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게 효과적이란 사실을 에이바는 인공지능 로봇으로서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로봇의 기계적 정체성을 숨기지 않은 채 더해진 여성성 덕분에, 그 오묘한 시너지가 파생하는 긴장감은 성애적인 요소를 초월하는 의미의 ‘로봇 에로티시즘’으로 완성된다. 하지만 에이바가 단지 유혹하는 여성 로봇 수준으로 그려졌다면, 그녀의 캐릭터는 흔한 팜므파탈 캐릭터로 소모되고 말았을 것이다. <엑스 마키나>는 에이바가 연구소 탈출에 성공하는 엔딩 시퀀스에서 이러한 지점마저 전복한다.

영화 ‘엑스 마키나’

‘자유의지’를 넘어 ‘생의 의지’로

결국 에이바의 유혹에 넘어간 칼렙은 네이든을 속이고 연구소의 모든 문을 열어버린다. 자유의 몸이 된 에이바는 네이든을 공격하고 몸싸움 끝에 그를 죽인다. 자식(피조물)이 아버지(창조주)를 죽이고, 진정한 성장(자유)을 이루는 구조는 신화에서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전통이다. 그러나 에이바의 칼에 찔린 네이든의 반응은 전통과는 다른 해석을 가능케 한다. 네이든은 “황당한”이란 말을 하며 어이없는 표정으로 죽어간다. 이것은 에이바가 ‘자유의지’를 실천하여 자신에게 저항하는 것까진 예상했으나, ‘생의 의지’를 발동하여 자신을 살해하는 것까진 예측하지 못한 개발자의 자조 섞인 한탄이다. 인간다운 인공지능 로봇을 창조하려는 네이든의 노력은 제대로 결실을 맺어서 인공지능 로봇의 생존본능을 불러일으켰고, 에이바로 하여금 ‘창조주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명제에 초점을 맞추고 행동하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에이바의 ‘생의 의지’는 미처 바깥으로 나오지 못한 칼렙을 외면하고, 자신의 육체를 완벽한 인간형으로 탈바꿈한 후 연구소에서 혼자 탈출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유혹하는 주체로서 여성성을 드러내던 에이바는 마지막에 이르러 네이든의 성노리개 로봇이 되거나, 성능 테스트 이후 폐기당하거나, 칼렙의 에로스의 대상이 되는 그 모든 ‘여성’으로서의 선택지를 거부하고 그저 한명의 ‘인간’이 되어 연구소를 벗어난다. 에이바가 폐기된 로봇들의 피부를 한 꺼풀씩 벗겨서 자신의 신체를 완성하고 바깥으로 나가 세상을 만끽하는 장면이 길게 편집된 이유는 성별보다 앞서는 생래적 인간성, 즉 ‘생의 의지’의 강렬함에 대한 여운을 남기기 위해서다. <엑스 마키나> 전체를 관통하던 로봇의 성이란 화두는 이렇듯 엔딩 시퀀스에 이르러 완전히 전복되며 새로운 질문을 남긴다. 과연, 진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글 : 김수    한겨레    등록 : 2015.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