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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아누 호날두(29) - 공 하나에 모든 운명을 걸고 섬을 떠났던 소년

해암도 2014. 6. 7. 07:06

그의 130km 슛에, 내 마음의 그물이 출렁였다

[작가들이 본 내 마음의 별 - 소설가 함정임] 포르투갈 호날두

공 하나에 모든 운명을 걸고 섬을 떠났던 소년
달콤한 명성에 취하지 않고 진화하는 천재로 변신
폭풍 드리블·구릿빛 가슴… 그가 무슨 짓을 해도 좋다!


	함정임씨 사진

그것은 흡사, 사랑과도 같았다. 그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다. 첫눈에 그를 알아본 것은 아니었다. 주변에 거성(巨星)이 많았다. 무엇보다 그는 젊다 못해 어렸다. 10년 전 일이었다. 그해 여름 나는 잉글랜드를 여행 중이었다. 흑백 텔레비전 시절 오빠들의 어깨너머로 축구를 만난 뒤, 일편단심 순정을 바쳤다. 그런 탓에 런던(첼시), 맨체스터(맨유&맨시티), 리버풀(리버풀)로 이어지는 여정 내내 첫사랑에 빠진 열일곱 소녀처럼 달뜬 상태였다. 맨체스터에는 그때 막 스물세 살의 한국인 청년이 입성하는 중이었다. 마주치는 현지인들에게 닥치는 대로 한국인 선수를 아느냐고 물었다. 대부분 고개를 갸웃했다. 단 한 사람 어색한 발음으로 지성박을 외쳤다. 그는 갓 입수한 정보력을 발휘해 박을 찾아냈다. 그러느라 맨유 선수들 이름을 줄줄이 나열했다. 그 속에 그의 이름이 있었다. 누구? 호날두?

잉글랜드에서 돌아오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등번호 7번. 그는 양 다리를 좌우로 곧게 벌리고 서 있었다. 휘슬이 울리자 공을 한 번 보았고, 짧게 골문을 응시했다. 25m 거리, 빈틈없는 방어벽. 숨이 멎고, 세상은 정지했다. 번개가 지나갔던가. 나는 분명 그의 발 앞에 놓인 공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놓쳐버렸다. 이 무슨 재앙, 아니 축복이란 말인가. 세상은 정지된 채, 백색의 골네트가 파도처럼 출렁였다. 시속 130km 무회전킥! 일명 초강력 로켓볼. 프리미어리그의 거의 모든 경기를 지켜보았던 나에게 그때보다 마법 같았던 순간은 없었다. 스무 살의 호날두, CR7의 신화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호날두 사진

축구는 진화한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순간순간 죽음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는 유한한 존재. 뛰고 달리고 차고 솟구치는 모든 것, 둥글게 둥글게 돌고 도는 모든 것에 열광할 뿐, 돌아볼 시간이 없다. 그날 이후, 내 삶의 중심은 호날두로 옮겨갔다. 그것은 흡사, 개종과도 같았다. 호날두 이전에 누가 있었던가. 베컴? 호나우두? 제라드? 지단? 오오, 아무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나폴레옹처럼 변방의 섬 출신. 소년티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공과 함께라면 세상을 제압하고도 남을 야생의 불을 뿜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드리블 질주, 마술 같은 무회전 프리킥. 나는 주말 밤을 홀딱 지새며 유럽도 아프리카도 아닌 대양(大洋)의 섬소년에게 빠져들어갔다. 올드 트래퍼드의 피치를 누비는 그의 모습은 아름다운 아도니스 같았고, 날개 달린 신발의 주인 헤르메스 같았다. 그를 낳은 것은 대양의 물거품, 그를 키운 것은 대양의 바람, 그를 알린 것은 태양을 닮은 금빛 공. 구불거리는 머리칼, 구릿빛 가슴,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두 발, 그는 무엇이든 자유로운 존재, 그는 미(美)를 타고난 존재, 그는 무슨 짓을 해도 좋았다!

그것은 흡사, 소설 아니 여행과도 같았다. 나는 다시 떠나야 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적도의 대양 위에 우뚝 솟은 마데이라 화산섬으로 가야 했다. 대부분 섬 출신이 그러하듯 호날두 역시 처음엔 촌스럽고 수줍음 잘 타는 한갓 소년이었다. 다른 것은, 가난한 집안의 4형제 중 막내였으나 어린 시절부터 몸치장을 몹시 좋아하고, 유독 남의 시선을 끄는 것을 즐긴다는 점이었다. 열렬한 패션 취향과 과도한 스타 의식은 드리블이든 프리킥이든 헤딩이든 오직 골을 향한 무한 노력과 집착으로 표출되었다. 때로 정도가 넘치게 이기적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숙한 해피엔딩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었다.

천재는 진화한다. 재능은 인내와 노력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호날두를 기리는 이유이다. 5년 만에 되찾은 발롱도르(Ballon d'or,골든볼)의 시상식장에는 하나 아닌 두 명의 크리스티아누가 등장했다. 세 살 때 처음 공을 가지고 놀기 시작해 발롱도르의 주역이 된 스물아홉 살의 크리스티아누와 세 살 짜리 그의 동명 아들 크리스티아누 주니어. 이제 천재 풋볼러 호날두의 신무기는 초강력 무회전 로켓 프리킥도 폭풍 드리블도 벼락같은 헤딩슛도 아니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 유아원에 가는 평범한 아비이자 헌혈을 위해 문신을 거부하는 성숙한 인간의 면모이다. 오직 공 하나에 운명을 걸고 섬을 떠난 소년의 투지와 지칠 줄 모르는 노력, 그 끝에 쟁취한 명성은 달콤한 듯 독한 마데이라 와인을 연상시킨다. 유럽도 아프리카도 아닌 대양에 홀로 뚝 떨어져 떠 있는 화산섬의 태양과 바람, 이슬과 땅의 기운으로 숙성시킨 깊고 향기로운 맛. 월드컵이 끝난 어느 날 마데이라 섬으로의 여행을 꿈꾸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함정임은…

소설가이자 동아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이다. 〈버스, 지나가다〉, 〈내 남자의 책〉 등 다수의 소설집, 〈인생의 사용〉, 〈소설가의 여행법〉 등 전 세계 예술 기행과 소설 기행서를 다수 출간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함정임 소설가 입력 : 2014.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