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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백자 외길, 陶工 권대섭]

해암도 2014. 4. 15. 07:07

귀신도 곡할 달항아리, 다음 가마엔 꼭…

두 대접 맞붙이는 세계 유일의 양식… 밀라노·사우디 등 해외 전시서 극찬
어쩌다 최고에 가까운 작품 만들면 그게 내 한계될까봐 스스로 깨부숴
백자 세계화는 작가 노력뿐 아니라 스토리텔링과 국민지원 뒷받침돼야


	문갑식 선임기자
문갑식 선임기자
지난해 이탈리아 밀라노 트리엔날레에서 '이변'이 벌어졌다. 출품된 백자달항아리 석 점이 다 팔린 것이다. 점당 가격이 3500만원이다. 해외에서 팔린 백자달항아리 가운데 최고가를 기록했다.

여세를 몰아 대만·사우디아라비아서도 초대전이 열렸다. 대만은 도자기 원조 중국만큼이나 안목이 높다. 반면 사우디는 도자기 자체에 대한 개념이 없는 곳이어서 양국의 반응이 주목됐는데 뜻밖에도 격찬이 쏟아졌다.

한국미술의 침체 속에 백자달항아리만 호황이다. 요즘 용어로 '창조산업'쯤 되는 것인데, 그 중심에 권대섭(權大燮·62)이 있다. 그는 세 차례 해외 전시에 한국 문화관광부가 내보낸 '국가대표 도공(陶工)'이다.

홍대 서양화과를 나온 권대섭은 1979년부터 백자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오로지 달항아리와 막사발만을 별 기교 부리지 않고 만들었다. 그 단순함에 처음엔 평론가가, 이제는 세계가 주목한다. 말이 35년이지 힘겨운 세월이었다.

그는 5년간 일본 규슈 나베시마요에서 도자기를 배웠다. 첫 2년은 청소만 했다. 나베시마요는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 도공의 정착지다. 여기서 만든 자기가 나가사키항(港)을 거쳐 유럽으로 퍼지며 '동양'을 알렸다.

높이 40㎝가 넘는 백자달항아리는 세계에서 유일한 양식이다. 그냥 만들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그래서 큰 대접(大壺) 두 개를 엎어 붙이는 방법에 착안했는데 자연스레 이지러지면서 일품(逸品)이 탄생한다.

이렇기에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남은 백자달항아리는 몇 안 된다. 국보·보물로 지정된 것이 국내에 7점이다. 외국엔 대영박물관과 오사카시립동양도자박물관에 한 점씩 있을 뿐이다. 일본 것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1995년 도둑이 도다이지(東大寺)에 침입해 백자달항아리를 훔쳐 달아나다 떨어뜨렸다. 일본 문화재계는 300조각으로 부서진 자기의 가루까지 샅샅이 긁어 4년 만에 복원했다. 일본의 항아리는 처음엔 젓갈 담는 용도였다고 한다.

달항아리가 주목받자 너도나도 달려들었다. 차이가 뭐냐고 물었더니 "초보 기자가 쓴 글 읽으면 제대로 취재했는지 아닌지 알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권대섭은 "나도 한 번 보면 흉내만 낸 건지 아닌지 안다"고 했다.


	권대섭은 달항아리를 닮았다. 그의 첫 개인전은 1995년, 역산하면 17년간 공부만 해온 셈이다. 그래서인지 과장을 싫어한다. 그는“달항아리가 주목받은 것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공(功)이 컸다. 고궁박물관에서 2005년 연 기획전이 기폭제였다”고 했다.
권대섭은 달항아리를 닮았다. 그의 첫 개인전은 1995년, 역산하면 17년간 공부만 해온 셈이다. 그래서인지 과장을 싫어한다. 그는“달항아리가 주목받은 것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공(功)이 컸다. 고궁박물관에서 2005년 연 기획전이 기폭제였다”고 했다. /사진작가 이서현
"생활한복 입고 머리 치렁치렁 기르고 남들 보는 데서 망치로 부수고…. 이런 퍼포먼스에 주력해서 작품이 나오겠느냐"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렇다면 명품 달항아리는? 권대섭은 "귀신이 곡(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돈 없는 사람도 보는 순간 사고 싶은 것,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동과 전율이 오는 것입니다." 그는 귀신이 곡할 정도의 작품을 몇 개나 만들었을까. "삼십 년 넘게 500~600개 만들었는데 딱 두 개가 나왔죠."

그 '명품'을 그는 스스로 깼다. "자기는 만들 때마다 다릅니다. 같은 게 없어요. 흙은 도공이 빚지만 마무리는 불이 하거든요. 정말 원형에 가까운 게 나왔는데 겁이 났어요. 스스로 한계를 느끼게 될 것만 같아서요. 그 다음 가마에서 더 나은 작품이 나오길 바라며…."

권대섭이 사는 곳은 경기도 광주시 이석리다. 팔당호가 정원 연못처럼 보인다. 그 너머 조선 500년을 이어온 도공들의 넋이 깃든 분원리(分院里)를 바라보며 그는 백자달항아리의 세계화에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작가의 노력, 스토리텔링, 국민의 지원. 말은 쉽지만 어려워요. 우리 예술가 중 세계적인 분이 백남준 선생 정도 아닌가요? 요즘 대형 박물관에서 옛 달항아리 전시회만 여는데 왜 현대작품과는 접목하지 않는지…." 이런 권대섭의 작품은 오는 18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문갑식 선임기자 조선 : 2014.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