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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
“결혼을 해도 살림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도너츠와 찐빵, 만두를 팔다가 돌아가신 아버지 고향인 풍기로 1979년 이사를 했습니다. 양계장에서 남편과 함께 일하며 모은 돈으로 1981년에 분식집을 열었어요.”
남편이 아내를 부르던 애칭을 써서 상호를 ‘정아분식’으로 정했다. 의자 살 돈이 없어서 탁자 몇 개로만 시작했고 돈이 모일 때마다 의자를 하나씩 사들이며 맛집이라는 소문도 함께 늘어갔다. 그러나 심하게 고생을 하다 보니 건강이 나빠졌다. “첫 아이는 유산을 하였고, 코피가 사흘간 멈추지 않아 약국에서 혈압을 재니 280이었어요. 반죽을 손으로 하느라 쉰 살이 되기도 전에 손가락이 죄다 휘어 버렸네요. 그렇게 억척스레 살아오면서 일을 거들며 자란 아이들인지라 큰아들(41·황보준)에게 사업을 물려줘도 망가뜨리지는 않을 것 같아요.”
장사는 안정을 찾았고 빚도 다 갚게 된다. 그러면서 주인공으로 자리 잡은 것이 바로 찹쌀도너츠다.
“태백에서 배운 것에다 제 아이디어를 보태서 생강의 맛과 향이 물씬한 도너츠를 만들게 되었어요.”
생강의 독특한 맛에다 지역 특산인 인삼이 더해진 이 집만의 찹쌀도너츠가 전국적인 인기를 끌게 되는 계기가 찾아온다. 지상파 지역방송에 소개되고 블로거가 인터넷에 올리면서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300개씩 만들어 9시에 문을 열면 오후 네다섯 시에 다 팔리더니 점차 빨라져서 점심 때면 떨어져버리고 주말에는 곧장 매진이 되어 버릴 지경이었어요.”
그래서 분식 메뉴를 빼 버리고 찹쌀도너츠만 팔기 시작하면서 2007년에 지금의 ‘정 도너츠’로 이름을 바꿨다. “당일 소비가 원칙이다 보니 택배 판매를 안 해서 각 지역별 분점의 필요성이 느껴졌죠. 마침 프랜차이즈 사업화 제의를 해 온 분이 있어서 시작했다가 어려움도 많이 겪었는데 이제는 안정이 되었어요. 재료와 반죽은 본사에서 보내주고 튀겨서 고명을 묻히는 것만 가맹점에서 하기 때문에 맛은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당일 판매 원칙을 꼭 지켜달라 약속받고 합니다.”
좋은 재료와 맛 외에 무엇이 더 있을까 찾아보면 위생이다. “음식업을 시작한 후로는 매니큐어를 비롯해 반지, 귀걸이, 팔찌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카페에서 만난 그녀의 장식품은 가는 줄의 작은 목걸이뿐이었고 봉숭아물이 살짝 들어 있는 손가락들은 확연히 한쪽으로 휘어져 있었다.
‘사업을 하며 얻은 기쁨과 보람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의 답변은 이랬다. “직원들을 가족처럼 대하고 그런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다들 저를 엄마라 부르죠. 직원을 뽑을 때마다 가족 하나가 더 늘어나는 기쁨으로 여깁니다. 영주시에 장학금과 이웃돕기성금을 꾸준히 낼 수 있다는 것도 큰 보람이죠. 돈이 없어서 올리지 못한 결혼식을 분식집 2층에서 목사님을 모시고 22년 만에 조촐히 치른 게 큰 기쁨이었고 아이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잘 자라준 것이 보람이자 고마움입니다.”
12가지로 종류가 많이 늘어났지만 역시나 주인공은 생강도너츠다. 운영은 장남(황보준 대표)에게 맡기고 도너츠 만들기에만 전념하고 있는 홍정순 조리장의 소망은 중단된 메뉴인 만두를 다시 시작해 보는 것이다.
지금껏 도너츠를 만들어 온 정성으로 만두를 만들어낸다면 꼭 먼저 맛을 보고 싶다. 음식은 재료의 성분과 조리법만으로 맛이 결정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드는 이의 걸어온 인생과 생각이 녹아들어 있는 음식은 그렇지 않은 것들과 분명히 다르다고 믿는다.

정 도너츠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산법리 341-2 (054)636-0067
박태순 음식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