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로 서울대 교수 "이세돌, 판을 흩트리면 낙승, 끝내기로 가면 패"
“100년 내 인간을 이기는 바둑 알고리즘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해 왔지만, 알파고 등장 이후 제 주장을 접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인공지능)의 추격을 따돌리려면, 평소 이 9단 스타일 대로 판을 확정짓지 않고 수를 여기저기 흩트려 놓은 후 각각의 관계를 이용한 승부를 걸어야 할 것입니다.”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사진)는 컴퓨터 알고리즘 분야의 권위자로 컴퓨터 알고리즘을 활용한 투자전문회사인 옵투스투자자문 대표로도 활동 중이다. 2015년 컴퓨터 알고리즘을 활용한 투자 입문서 ‘문병로의 메트릭스튜디오’를 출간하기도 했다.
다음은 바둑 애호가인 문 교수와의 1문1답.
― 알파고는 우주의 원자수보다 많은 바둑의 수를 어떻게 계산하나.
“직관을 가진 인간은 척 보면 둬야 할 수와 두지 말아야 할 수를 안다. 반면 컴퓨터는 쓸데없는 수까지 계산한다. 알파고는 계산할 필요 없는 수를 최대한 버려 탐색의 범위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기계학습법의 일종인 딥러닝(deep learning,여러개의 인공신경망을 활용한 기계학습법)과 GPGPU(일반 목적으로 쓰이는 그래픽칩)의 발전 덕분이다. 수십 층에 달하는 인공신경망을 훈련하는 데는 엄청난 계산량이 필요한데, GPGPU 덕분에 가능해졌다.”
― GPGPU를 쓰면 왜 빨라지나.
“슈퍼컴이 기상데이터를 처리할 때 작업 방식을 살펴보자. 하나의 명령으로 여러 개의 데이터를 처리한다. 명령을 통해 실시하는 작업 내용은 같고 데이터만 다르다. 이걸 단일명령다중데이터처리(SIMD)라고 한다. 그런데, 그래픽칩이 슈퍼컴과 비슷하게 그래픽을 처리해왔다. 서로 다른 화면 정보를 동시에 여기저기서 처리해 한번에 보여준다. 그래픽카드 원리가 조그마한 GPU(Graphics Processing Unit)를 여러 개 써서 계산하는 것이다. 이걸 일반 목적의 계산에 사용하면 GPCPU가 되는 데, 계산 속도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 연구실에서도 그래픽 보드 4개를 이용해 컴퓨터를 조립하니, 일반 PC보다 속도가 최대 300배까지 빨라졌다. 300일 기다려야 끝나는 작업이 하루만에 끝나더라. 옛날 같으면 100억원 주고 사야 할 슈퍼컴퓨터를 천만원으로 만들 수 있게 됐다. 알파고도 CPU뿐만 아니라 GPU를 쓴다. 딥러닝을 개발한 제프리 힌튼 토론대 교수팀도 GPGPU를 썼다.”
― 이번 대국에서 알파고가 유리한 점은.
“끝내기로 가면, 알파고가 어떤 프로보다 유리하다. 끝내기는 경우의 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좁은 영역의 전투에서는 알파고가 유리하다는 뜻이다. 인간은 잠깐 딴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멀쩡하게 한집 반 이기는 바둑을 끝내기에서 잘못 둬서 반집으로 지기도 한다. 컴퓨터는 좀처럼 그런 실수를 안한다. 이세돌이 만약 정석으로 플레이해서 각 구역의 판세를 확정시킨다면, 이 역시 판이 단순해지는 것이므로 알파고가 유리하다.”
― 그렇다면 이세돌 9단이 이번 대국에서 유리한 점은.
“원래 이세돌 9단은 여기저기 판을 벌여놓고 각 영역을 완결시키지 않는 상태에서 마지막에 각각의 관계를 이용해 승부를 뒤집는 스타일이다. 이런 스타일로 두면, 알파고가 여기를 계속 둬야 할 지 저쪽으로 가야할 지 판단의 문제가 생긴다. 직관에 바탕을 둔 추상화한 사고가 이번 대국에서 중요하다. 이세돌이 어지러운 중반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어야 한다.
패도 알파고가 따라오기 힘든 영역이다. 패를 해소하는 것이 이득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것은 전체 형세를 볼 줄 알아야 가능하기 때문에 컴퓨터한테는 쉬운 판단은 아니다. 특히 초중반 패의 경우 컴퓨터가 판단하기 어렵다.”
― 차츰 이세돌의 스타일을 익힌 알파고가 후반부를 갈수록 유리해지지 않을까.
“이세돌 9단의 한두판을 보고 이세돌의 특성을 알파고가 배울 수 없다. 같은 판이 나오지도 않고 앞서 뒀던 승부수가 다음 판에서 유효하지 않기 때문이다. 알파고는 한두판으로 배울 수 없다. 알파고를 훈련시켜려면 수 만건에서 수 십만건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오히려 이세돌 9단이 알파고가 두는 것을 보고 판이 거듭될 수록 알파고의 특성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 2015년 10월 진행된 유럽 챔피언 판후이와 알파고의 대국은 어떻게 평가하나.
“직접 봤는데, 판후이가 너무 엉성하게 뒀다. 그 다음 대결자(이세돌)한테 크게 도움이 안되는 대국이었다. 판후이는 전혀 판을 흔들지 못했다. 후반 1~2판은 거의 판후이의 자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 이번 대국의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컴퓨터가 할 수 있는 추상적 사고의 크기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는 인간의 추상적 사고는 컴퓨터 계산의 영역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크기라고 봤다. 2009년 바둑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컴퓨터가 100년 내에는 나오기 어렵다고 호언장담했던 이유이다. 그런데 이 생각이 바뀌고 있다. 알파고가 인간의 추상적 사고를 흉내내고 있다. 인간이 하는 방법으로는 계산하지 않지만, 자기만의 방법으로 인간의 추상적 사고를 따라가고 있다. 이번 대국 결과의 승부를 떠나 더 많은 영역에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ChosunBiz.com 류현정 기자 입력 : 2016.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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