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알파고 대결 일주일 앞으로… 급속히 발전 중인 인공지능]
- 1997년 세계 체스챔피언 이겨
IBM 수퍼컴 디퍼블루 매초 2억개 수 분석, 20수 내다봐
- 2011년 퀴즈대결서도 완승
사람의 질문을 인식한 뒤 동사·목적어·핵심 단어로 분류… DB 검색 3초 내에 정답 유추
- 바둑까지 이길까…
알파고 하루 3만번 대국 '자가학습', 176개 그래픽 장치로 형세 판단… 대국 중반 후엔 모든 수 계산 가능
오는 9일 서울에서 11억원이 걸린 인간과 기계의 승부가 시작된다. 인간 대표는 세계 정상의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 기계 대표는 구글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이다. 인간과 기계의 대결은 이전에도 있었다. 1997년엔 체스, 2011년 퀴즈 대결에서 인간은 인공지능에 무릎을 꿇었다. 기계가 인간을 이기는 데 체스는 30년, 퀴즈는 7년이 걸렸다. 체스보다 훨씬 복잡한 바둑은 향후 50년간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길 수 없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알파고는 이를 비웃듯 지난해 10월 프로 바둑기사 판후이 2단을 5대0으로 꺾고, 이세돌 9단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반도체와 쇳덩어리로 만들어진 인공지능은 어떻게 200만년간 진화해 온 인간의 두뇌를 넘보게 된 것일까.
◇체스·퀴즈 차례로 정복
인공지능과 인간의 첫 대결은 1967년 열렸다. 체스 프로그램 '맥핵'과 철학자 드레퓌스의 대결에서 맥핵이 이겼다. 하지만 드레퓌스가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던 데다, 맥핵이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패배해, 맥핵이 인간을 이겼다고 볼 수는 없다.
-
- ▲ /그래픽=양인성 기자
체스는 '말을 움직여 상대의 왕을 잡으면 승리한다'는 명확한 규칙이 있다. 64개의 칸 위에서 6종류의 말을 움직이는 경우의 수는 10의 120제곱이다. 이 경우의 수를 모두 계산할 수 있으면 이길 수 있다.
IBM은 1989년 인공지능 체스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6년 IBM의 수퍼컴퓨터 '딥블루'가 당시 세계 챔피언 개리 카스파로프에게 도전했지만 패했다. 다음 해 딥블루를 업그레이드한 '디퍼블루'가 다시 카스파로프에게 도전해 승리를 거뒀다. 디퍼블루는 매초 2억개의 수를 분석했고 20수 앞을 내다볼 수 있었다. 인간의 계산 속도보다 7000만배 이상 빠르다. '맥핵'으로부터 따지면 체스에서 기계가 인간을 이기는 데 30년이 걸렸다.
2011년 IBM의 수퍼컴퓨터 '왓슨'은 퀴즈로 인간에게 도전했다. 미국의 인기 퀴즈쇼 '제퍼디'에 출연했다. 왓슨은 사람의 질문을 인식한 뒤 동사, 목적어, 핵심 단어로 분류한다. 이어 핵심 단어를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한다. 예를 들어 "펨브로크 칼리지와 에마뉘엘 칼리지의 성전을 설계한 건축가는?"이라는 질문이 나오면 왓슨은 우선 '펨브로크 칼리지' '에마뉘엘 칼리지' '건축가'를 검색한다. 검색 결과는 정답 대신 이 단어들이 포함된 문서들만 보여준다. 왓슨은 이 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건축가 5명을 추린 뒤, 이 건축가들을 다시 검색한다. 정답인 '크리스토퍼 렌'은 다른 건축가에 비해 검색 결과 안에 '펨브로크 칼리지'와 '에마뉘엘 칼리지'가 포함될 확률이 높다. 이런 방식으로 왓슨은 3초 내에 답을 유추해낸다.
제퍼디에서 왓슨은 7만7147달러를 획득, 인간 챔피언인 켄 제닝스(2만4000달러)와 브래드 루터(2만1600달러)를 압도했다. 사람이 문제를 듣고 생각하는 속도보다, 왓슨이 검색을 마치고 버저를 누르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다만 왓슨은 66문제를 맞혔지만, 9문제는 오답을 말했다.
이식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왓슨은 핵심 단어를 골라 검색하고 확률을 평가할 뿐,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항상 정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왓슨 개발은 2004년 시작됐으므로, 퀴즈에서 기계가 인간을 이기는 데는 7년 걸렸다.
◇판세까지 읽는 알파고
인공지능이 바둑에서 인간을 이기려면 새로운 능력이 필요하다. 돌을 놓는 착점(着點)이 361개인 바둑은 첫 수를 주고받는 경우의 수만 12만9960가지가 된다. 361개 점을 모두 채워가는 경우의 수는 10의 170제곱 가지나 된다.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려면 수퍼컴퓨터로 수십억년이 걸린다. 여기에다 누가 우세한지 형세 판단도 필요하고, 죽은 돌을 들어낸 자리에 다시 둘 수도 있는 등 규칙도 복잡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구글은 알파고가 스스로 학습해 경험을 쌓도록 훈련시켰다. 바둑 기보(棋譜) 3000만개를 입력해 규칙을 가르친 뒤, 하루에 3만번씩 대국을 진행하도록 했다. 수마다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모두 저장한다. 또 알파고는 176개의 그래픽 처리장치로 형세를 인식하고 공격적인 바둑을 둘 것인지, 수비적인 바둑을 둘 것인지도 결정할 수 있다.
알파고는 대국이 진행될수록 강해진다. 후반으로 갈수록 계산해야 할 경우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김석원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실장은 "초반에는 10수 정도 내에서 벌어질 수 있는 경우의 수만 계산하고, 10수 이후는 무작위로 돌을 놓아 바둑판을 다 채우는 시뮬레이션 결과만 본다"면서 "그 시뮬레이션으로 10만 가지 결과를 살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알파고는 10만 가지 결과 중 이긴 경우가 많은 쪽으로 다음 수를 결정한다. 특히 중반 이후에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할 수 있다. 이세돌 9단이 초반에 승기를 잡지 못하거나, 중반 이후에 실수하면 패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알파고는 판후이 2단과의 승부 이후 400만번 이상의 대국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9단과의 대결 방식이 판후이 2단 때보다 제한시간이 2배라는 점도 알파고에 유리하다.
김석원 실장은 "시간이 늘어날수록 알파고가 계산하고 검토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늘어난다"면서 "이번에는 몰라도 알파고가 인간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 Chosun.com 박건형 기자 입력 : 2016.03.02
'38급'으로 시작한 컴퓨터바둑, 이젠 프로 실력
1969년 美 과학자가 첫 개발… 2001년엔 9급 정도로 실력 향상
서봉수九단이 대국 때 일부러 첫수 엉뚱한 곳에 두며 싸우자 컴퓨터가 당황, 몰살당하기도
韓·佛프로그램, 프로에 4점 접바둑… 알파고는 프로 기사와 맞바둑
세계 최초의 바둑 대국 컴퓨터 프로그램은 1969년 미국 앨버트 린지 박사가 만들었다. 그들이 이 프로그램을 스스로 '38급'으로 매긴 것은 형편 없는 실력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었다.
세계 컴퓨터 학자들에게 바둑 프로그램 개발 열기를 불어넣은 사람은 대만 재벌 고 잉창치(應昌期)였다. 그는 잉씨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를 개최하기 3년 전인 1985년 제1회 세계컴퓨터바둑대회를 창설하고, 프로기사를 이기는 프로그램 개발자에게 150만달러의 상금을 걸었다. 하지만 그가 시한으로 정한 2000년까지 수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1990년대 최고의 컴퓨터 바둑 대국 프로그래머는 중국인 천즈싱(陳志行)씨였다. 컴퓨터학과 교수였던 그는 1995년 제11회 잉씨배 대회서 우승한 '핸드토크', 2001년 한국 가로수닷컴배 컴퓨터바둑대회에서 우승한 '고메이트'를 개발, 세계 대회에서 아홉 차례나 우승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들도 10급에 못 미치는 실력이었다. 천즈싱 교수는 "한 급(級)을 올리는 데 2년 이상 걸린다"며 "컴퓨터의 인간 정복은 불가능할 것 같다"고 토로했었다.
한국에선 서봉수 9단이 2001년 가로수닷컴배 우승 프로그램인 '고메이트'와 9점 접바둑을 둔 적이 있다. 장난기가 발동한 서 9단이 첫수를 '2의 二'에 둔 뒤 난전을 유도하자 고메이트가 갈팡질팡하다 몰살당했다. 서 9단은 '고메이트'의 실력을 9급으로 사정(査定)했다.
2008년 마침내 9점의 벽이 깨졌다. 제24회 전미 바둑콩그레스서 프랑스인 레미 쿨롱이 개발한 'MOGO'가 한국 출신 김명완 9단에게 9점으로 도전, 1승1패로 한 판을 이긴 것이다. 'MOGO'는 1년 뒤 대만서 열린 세계컴퓨터바둑선수권대회 기념행사에선 대만의 저우쥔쉰(周俊勳)을 7점을 놓고 꺾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저우쥔쉰은 2007년 제11회 LG배서 우승하는 등 전성기를 누리던 중이었다.
레미 쿨룽이 'MOGO' 이후 개발한 '크레이지 스톤'은 인간과의 격차를 4점으로 좁혔다. 일본이 창설한 전성전(電聖戰)에서 2013년과 2014년 연속 이시다(石田芳夫) 9단과 요다(依田紀基) 9단에게 4점을 놓고 3집승을 거뒀다. 한국제 프로그램인 '돌바람'도 2015년 조치훈 9단에게 4점으로
불계승했다.
인간 대 컴퓨터의 간격은 이렇게 4점으로 굳어지는 듯했으나 작년 10월 '알파고'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중국 프로 출신 판후이에게 호선(互先)으로 5연승, 순식간에 맞바둑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알파고는 이어 '크레이지 스톤' 'Zen' '푸에고(Fuego)' 등 당대 최강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상대로 494승1패라는 경이적 성적을 작성했다.
인공지능, 조만간 ‘바둑의 神’ 등극?
무한대 학습능력, 지침없는 체력, 기복없는 컨디션…
진보하는 속도 생각보다 빨라… ‘반전무인’ 상대 의식 않는점도 강점
“머잖아 인간이 두 세점 접게 될수도” 최근 서울과 영국 런던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가진 이세돌 9단(오른쪽)과 알파고 개발책임자인 데미스 허사비스. 알파고가 ‘바둑의 신’과 같은 위치를 차지할지 관심을 끌고 있다. 동아일보DB
“‘바둑의 신(神)’과 둔다면 몇 점을 놓아야 할 것 같습니까?” “석 점은 놔야 하지 않을까요.” “만약 목숨을 건 내기라면?” “그럼 넉 점까지 놔야겠죠.” 한때 세계 바둑계를 풍미했던 대만 린하이펑(林海峰) 9단은 1970년대 전성기 시절 ‘바둑 신과의 치수’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보통 세계 정상급 프로기사들의 답은 석 점 정도였다. 물론 패기 넘치는 서봉수 9단은 “요즘 중앙을 제외한 귀와 변의 변화는 거의 규명됐기 때문에 두 점이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바둑 신과의 치수’는 반상의 무수한 변화를 다 읽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의미한다. 그런데 9일부터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맞바둑으로 세기의 대결을 펼치게 되면서 종국에는 인공지능이 바둑의 신의 위치를 차지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알파고는 우선 하루 24시간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무한대의 학습 능력을 갖는다는 점이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이세돌 9단은 최근 “지난해 10월 판후이 2단에게 이긴 알파고의 실력은 아마 정상급이지만 나와 승부를 논할 수준은 아니다”라며 “아무리 빨리 실력이 는다 해도 나를 이길 정도까지 올라오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특히 하급자에서 상급자까지는 실력이 금방 올라가지만 아마 정상급 실력에서 프로기사가 되고 이어 정상급 프로기사로 발돋움하는 단계가 가장 어렵다는 것. 프로기사들도 그 단계에서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알파고는 스스로 학습하는 첫 번째 프로그램으로 그 진보 속도를 가늠하기 어렵다. 최근 알파고 개발 책임자인 데미스 허사비스는 인터뷰할 때마다 “승부는 50 대 50”이라고 말했다. 구글 딥마인드 측이 비공식적으로 중국 프로기사들과 겨뤄 좋은 승률을 냈기 때문에 자신감을 피력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설사 알파고가 지더라도 이를 통해 얻는 데이터베이스는 앞으로 실력을 늘리는 데 밑바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실력뿐 아니라 컨디션에 따른 기복도 없다. 초일류 기사들도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간단한 단수조차 깨닫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는데 알파고는 그럴 일이 없다.
여기에 바둑 격언 중 상대를 의식하지 말라는 ‘반전무인(盤前無人)’의 자세도 알파고는 가능하다. 강한 상대, 뜻밖의 상대 혹은 징크스가 있는 상대를 만나도 인간처럼 주눅 들거나 과잉 투지를 보이다 자멸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명지대 바둑학과 정수현 교수는 “인공지능이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수년 내 초일류 기사와 대등한 실력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며 “바둑프로그램이 인간과 비슷한 사고 체계를 갖추게 된다면 바둑의 신처럼 초일류 프로기사를 두세 점 접는 시기가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입력 2016-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