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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홀연 귀농을 결심, 경기도 파주 감악산 자락에서 산머루 농사를 시작한 지 36년이 지났다. 연매출 20억원이 넘는 부자 농부가 된 산머루농원의 서우석 대표를 만나 인생 2막의 기술을 들어봤다.
첫인사와 함께 악수를 나눈 농부의 손은 묵직했고, 곳곳에 흙이 묻어 있었다. 연매출 20억원의 산머루농원 대표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고무신에 흙 묻은 작업복 차림의 전형적인 농부였다. 산머루와 함께 흙 속에서 농부로 살아온 평생의 시간이 두 손에서 먼저 느껴졌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객현리에 위치한 3만3058㎡(1만 평) 규모의 산머루농원은 서우석 대표의 두 손이 평생 갈고닦아 만든 결실이다. 산머루 밭에 머루즙 공장과 와인 공장, 70m짜리 와인 숙성 터널, 농장체험관, 오토캠핑장까지 제대로 갖추고 있다. 성공한 귀농 1세대에 이름을 올린 주인공이 된 그는 덕분에 지난 2009년에는 은탑산업훈장도 받았다. 농업관련 단체나 농업학교 사람들,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이 와서 그가 일군 결실과 비결을 알고 싶어 한다.
산머루에 끌리다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서우석 대표 역시 처음부터 농부가 아니었다. 젊은 시절에는 서울에서 택시 운전을 했다. 이후 인생 2막을 꿈꾸면서 1970년대 후반 경기도 장호원을 거쳐 파주 객현리 감악산에 터를 잡았다.
처음에는 ‘돌 반 흙 반’인 고약한 땅이었다. 당시 그의 손에는 망치와 정밖에 없었는데 깨고 또 깨고 돌멩이를 치우면서 땅을 만들었다. 미쳤다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고약하던 땅은 점점 밭이 되어갔다.
“사실 제가 산머루를 재배하기 전에 돈을 잘 벌었어요. 흑염소를 키웠는데, 12마리에서 시작해서 5백 마리까지 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염소를 끌고 농장 뒷산에 오르다가 알알이 열매가 영글어 있는 산머루 나무를 만났어요. 포도알보다 작은 열매가 탐스러워 손바닥에 올려두고 따먹어 보았어요. 다음 날 새벽에 잠에서 깼는데 그 맛이 생각났어요. 이후로도 문득문득 그때 일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아무런 계획도 없이 산머루를 심어보리라 생각했지요.”
그렇게 12그루를 심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1년이 지나도 열매가 단 한 알도 달리지 않았다. 허탈했다. 농촌지도소에 조언을 들으러 갔다가 남양주의 개량머루를 심는 사람을 소개받았다.
“그길로 오토바이를 몰고 찾아갔어요. 제 이야기를 듣더니, 그가 웃으면서 말을 해요. 당연히 열매가 안 열린다고요. 알고 보니, 제가 암나무만 12그루를 심었더라고요. 세상만물에 음과 양의 이치가 있는데, 수나무를 안 심었던 거예요. 그길로 1천5백 그루를 사왔어요.”
3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 시작했는데, 1천5백 그루 중에서 살아남은 것은 고작 5그루였다. 금전적인 손해가 컸지만 생명력이 강한 5그루의 나무가 남았다. 산머루로 첫 즙을 짜기까지 8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산머루가 만든 새로운 시도
머루는 이제 인근 50여 농가로 확대됐다. 지역의 큰 소득사업이다. 경기도 파주 객현리 50여 농가의 참여로 확대됐다. 파주시청의 지원으로 70m짜리 와인 숙성 터널도 뚫었다. 와인 만들기, 머루즙 짜기를 할 수 있는 체험관도 설립되어 연간 1만2천 명이 다녀간다. 주말마다 도시인을 맞이하는 오토캠핑장도 열고 있다. 그가 농부이면서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혼자 하던 산머루 재배가 다섯 농가에서 서른 농가로 퍼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산머루를 재배하는 것이 낯설었고, 더욱이 산머루즙 같은 가공품은 찾아볼 수 없었어요.”
농부가 된 뒤 그는 끊임없이 공부했다. 제일 처음 시도한 산머루즙을 만들 때는 포도 가공법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원심 분리 착즙기와 저온 살균기를 구입해서 산머루 제품을 만들었고, 시장에서는 인기 상품이 됐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에요. 곡절이 참 많았어요. 이후에 대기업의 음료 출시, 불량식품 고발, 공장 화재 등 위기가 많이 있었어요. 그렇게 답을 찾지 못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차라리 내가 정식으로 가공공장을 짓자고 했죠.”
여기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머루즙 가공공장을 등록하기 위해서 정부기관에 신고를 하는데, 직원의 착오로 머루주 가공공장이 된 것이다. 다시 서류를 작성하고 처음으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지체된 상황. 그는 머루주를 만들기로 했고, 그것을 시작으로 머루주와 와인까지 출시하게 됐다.
산머루 재배에서 시작한 농사일이지만, 서우석 대표는 단순한 재배가 아닌 다양한 시도를 통해서 농업을 산업으로 만들었다. 후계자 양성은 물론 농업 발전을 위해 1세대 귀농인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귀농을 꿈꾸는 많은 사람이 흙에서 사는 기쁨과 부자가 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라는 그의 농장 문은 늘 열려 있다.
서우석 대표가 알려준 귀농 부자 비결
1 경쟁이 치열하지 않을 때 뛰어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산머루의 대량생산 매뉴얼이 많이 생겼지만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산머루 농장을 운영하는 곳이 손에 꼽힐 정도로 드물었다. 그만큼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지만 경쟁력이 있다.
2 농림축산식품부와 경기도를 비롯한 정부의 여러 지원정책이 없었다면 산머루농원의 발전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각종 농업 지원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고 잘 알아두었다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3 농업은 미래산업이다. 1·2·3차 산업을 연계해 융복합함으로써 농업소득을 높이고 새로운 일자리 및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6차 산업이 농업의 미래다. 산머루농원은 와이너리 투어 상품을 개발해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산머루 와이너리 투어는 해외에까지 관광상품으로 소개될 정도다. 주말에는 캠핑하려는 손님들이, 주중에는 해외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외국 여행사를 통해 한국의 산머루 와이너리가 소개되면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