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발상으로 업계 꼴찌에서 1위에 오른 기업이 있다. 메리츠자산운용은 2013년 연말 국내 자산운용사에서 최하위권 수준이었다. 회사는 문 닫기 직전이었다. 이 때 구원투수가 등장한다. 존 리(John Lee·57·한국명 이정복)였다.
리 대표는 1991년부터 미국 자산운용사인 스커더에서 15년간 코리아펀드를 맡아 SK텔레콤과 삼성전자에 투자해 수 십배의 수익을 냈다.
리 대표는 연세대를 다니다 중퇴하고 도미(渡美)했다. 뉴욕대를 졸업하고 도이치인베스트먼트와 라자드인베스트먼트를 거쳐 2014년부터 메리츠자산운용에 대표로 취임했다.
리 대표는 1991년부터 미국 자산운용사인 스커더에서 15년간 코리아펀드를 맡아 SK텔레콤과 삼성전자에 투자해 수 십배의 수익을 냈다.
리 대표는 연세대를 다니다 중퇴하고 도미(渡美)했다. 뉴욕대를 졸업하고 도이치인베스트먼트와 라자드인베스트먼트를 거쳐 2014년부터 메리츠자산운용에 대표로 취임했다.
-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한국 중산층은 반드시 주식 투자를 해서 노후 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호진 기자
리 대표는 직원들을 지옥 훈련으로 내몰기는커녕 5시면 ‘칼퇴근’을 시켰다. 그렇다고 출근 시간을 당긴 것도 아니다. 출근 시간은 9시다. 심지어 출퇴근시간마저 직원들이 재량껏 사용하도록 권장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월가에서 건너온 구원투수치곤 너무 유유자적이다.
리 대표는 "일이 없는데 왜 야근을 하냐"며 "(한국 직장인들은) 야근이 체질화하면 어차피 집에 못가니까, 낮에 사우나 가곤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필요도 없는 일을 만들어서 한다"며 "우리는 애널리스트건 누구건 간에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고 필요하면 이메일로 회람한다"고 말했다.
보고서만 없애도 업무량이 대폭 준다는 것이다. 리 대표는 취임 후에 회사의 보고 체계를 CEO 아래 팀장과 팀원으로 단순화했다. 팀원은 이메일을 보내면서 인지를 해야 할 팀장과 CEO에게만 보내면 된다. 부장, 상무, 전무 등으로 상징되는 중간 관리자와 임원 직급을 없앴다.
리 대표는 "체계가 복잡하면 의사 결정이 늦고, 나중에 책임질 일이 생기면 서로 미루는 부작용이 생긴다"며 "회의도 일주일 한 번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리 대표는 회사가 보유한 승용차와 골프 회원권에도 놀랐다. "골프 치면서 영업 한다는 데 근거 없는 소리다. CEO가 회사 출퇴근하는데 승용차와 기사가 왜 필요하냐. 다 회삿돈을 함부로 써서 생긴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표가 택시 타고 다니니까) 주위에서 어색하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골프 치고 술 마셔야 영업을 한다고 하는데, (미국에서) 비즈니스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리 대표는 서울 여의도 메리츠화재보험 사옥에 입주한 메리츠자산운용 사무실을 삼청동 인근 북촌으로 옮겼다. 그는 "자산운용의 핵심은 독자성(independence)인데, 우리보다 몇 배나 큰 메리츠화재보험과 한 건물에 있으면 아무래도 (독자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의심을 받는다"고 말했다.
리 대표는 장기 투자, 워런 버핏 같은 가치 투자를 지향한다. 수익률에 초점을 맞춘 주식이 아니라, 회사의 소유주로서 주식을 보유한다는 관점이다. 시류에 휩쓸려 사고 팔고를 반복하면 증권사만 좋은 일 시킨다는 것이다.
리 대표는 취임 후 메리츠자산운용이 판매하는 수 십개의 펀드를 정리하고 하나의 펀드만 남겼다. 독특한 경영 방식 때문인지, 과거 스커더에서 올린 화려한 성과 때문인지 리 대표 취임 이후 메리츠자산운용의 자산 규모가 717억원에서 올 6월말 기준 2조8642억원으로 업계 1위에 올랐다. 이달 9일 기준으로 수익률은 53.4%에 달한다.
취임 1년 반만에 놀라운 수치의 비결을 물었다. 그는 "운이 좋았다"고 맥빠지는 대답만 들려줬다. 다른 숨겨진 정보를 따로 받는지 궁금했다. 그리스 디폴트와 중국 증시의 폭락으로 어수선하다. 두 나라를 비롯한 경제 동향이 펀드 운용이 끼치는 영향을 물었다.
"국제 경제 전망에 관심이 없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가 중요하지 국제 동향을 안 들 우리가 영향을 줄 수도 없다. 언론으로 노출된 정보 외에 별다른 정보에도 큰 관심도, 정보 수집도 하지 않는다."
국내 기업 전망에 대해 물었다.
"향후 중국 기업이랑 경쟁을 해야 하는 IT 기업은 어둡다. 대신 중국으로 인해 혜택을 입는 뷰티, 여행 사업 등이 유망하다."
리 대표는 일본은 신랄하게 비판했다.
"일본은 죽은 문화다. 단체로 지옥에 간다." 우리가 높이 평가하는 일본의 가업 승계와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물건 만들기), 장인정신도 비판했다.
"아버지가 밥 집을 하면 아들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꿔 말하면 아버지가 해 놓은 걸로 아들이 먹고사는 문화이다. 파괴가 없으니 창조가 없다. 일본에서 구글 같은 IT 기업이 그래서 없다."
“소프트 뱅크 같은 혁신 기업도 있지 않느냐”고 기자가 묻자 리 대표는 “손정의는 재일 교포 아니냐”고 반문했다. CEO의 DNA가 전통적인 일본 기업과는 다르다는 뜻이다.
한국 경제에 대해서 리 대표는 "재벌 중심의 수출 주도형 경제로는 (더 이상 성장이) 어렵다"며 "벤처기업과 창의성이 발휘되도록 해야 하는데, 인적 자원이 자연스럽에 배치되는 ‘모빌리티(mobility)’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고용과 해고가 자연스러운 미국식 노동 시장을 선호했다.
리 대표는 "내 임기는 원래 없다"며 "임기 같은 것도 어색하다. 회사가 쫓아내고 싶으면 해고하고, 나도 나가고 싶으면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 있다가 귀국한 이유에 대해, 리 대표는 "주식 투자로 중산층을 많이 만들고 싶다. (국민들은) 월급의 일부를 매달 투자해서 노후 자금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