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21세에 메이저 2연승… '기록 파괴자' 스피스

해암도 2015. 6. 23. 06:56

마스터스 이어 US오픈 정복…

                           우즈·매킬로이보다 2년 빨리 메이저 2승

- 92년만에 최연소 US오픈 우승
한 시즌에 두 대회 모두 석권… 역대 5명밖에 못이룬 대기록
그랜드슬램 달성할지 주목

115회 US오픈의 마지막 순간은 골프가 어떤 승부인지를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보여줬다.

나흘간의 드라마를 어떤 방향으로 끝낼지는 더스틴 존슨(31·미국)이 쥐고 있었다. 그에게는 3.8m의 이글 퍼트가 남아 있었다. 한 번에 넣으면 챔피언이 되고, 두 번에 넣으면 18홀 연장 승부였다. 결과는 3퍼트. 1.2m의 버디 퍼트마저 빗나가는 순간 18번홀을 에워싼 1만여명 갤러리와 전 세계 TV 시청자들은 혀를 차고 말았다. 나흘간 약 280차례 안팎의 샷을 날리는 골프 대회가 결국에는 승부의 압박감을 이겨낸 골퍼에게 우승컵이란 훈장이 돌아간다는 사실이 또 한 번 입증된 것이다.

22일 US오픈에서 우승한 조던 스피스가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22일 US오픈에서 우승한 조던 스피스가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만 21세인 스피스는 '황제' 타이거 우즈, 로리 매킬로이보다 더 어린 나이에 메이저 2승을 달성했다. /AP 뉴시스
22일(한국 시각) 미국 워싱턴주 유니버시티 플레이스의 체임버스베이 골프장(파70·7384야드)에서 막을 내린 시즌 두 번째 메이저 대회인 US오픈. 올해 마스터스 챔피언인 조던 스피스(21)는 16번홀(파4)에서 8m 버디퍼트를 성공하며 3타 차 선두가 됐다. 그러나 17번홀(파3)에서 티샷을 그린 오른쪽 러프로 보낸 뒤 더블 보기를 기록해 4언더파로 내려갔다.

그 사이 앞 조에서 플레이 하던 루이 우스트히즌(남아공)이 18번홀(파5)에서 버디를 잡아내 동타가 됐다. 올해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 우승으로 '미국 골프의 희망'으로 떠오른 스피스는 18번홀에서 챔피언의 자질을 보였다. 더블보기로 흔들렸던 스피스는 18번홀에서 드라이버와 우드로 2타 만에 공을 그린에 올린 뒤 2퍼트로 버디를 잡아냈다.

그가 기록한 5언더파 275타는 2015년 US오픈의 챔피언 스코어가 됐다. 가장 마지막 조에서 플레이 한 존슨은 스피스가 더블보기를 기록했던 까다로운 17번홀(파3)에서 버디를 잡으며 4언더파를 기록해 역전 기회를 잡았지만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공동 선두로 4라운드를 출발했던 스피스는 이날 버디 4개, 보기 1개, 더블보기 1개로 1타를 줄이며 존슨과 우스트히즌을 1타 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라 우승 상금 180만달러(약 19억8000만원)를 받았다. 스피스는 "이번 대회 코스와 그린 상태에 대해서 많은 선수가 불평했지만 나는 오히려 빨리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이제 골프의 발상지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리는 브리티시오픈 우승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스피스가 US오픈에서 세운 기록.
스피스는 메이저 대회 2연승으로 골프의 새로운 주연으로 떠올랐다. 한 시즌에 마스터스와 US오픈을 연이어 우승한 선수는 크레이그 우드(1941년), 벤 호건(1951·1953년), 아널드 파머(1960년), 잭 니클라우스(1972년), 타이거 우즈(2002년)에 이어 6번째다.

이날 21세 10개월 25일을 맞은 스피스는 1923년 보비 존스 이후 최연소 US오픈 우승자가 됐고, 1922년 진 사라젠 이후 두 개의 메이저 대회 우승을 거머쥔 최연소 골퍼 자리에 올랐다. 우즈와 로리 매킬로이(26·북아일랜드)는 23세에 메이저 2승을 달성했다.

스피스가 브리티시오픈과 PGA챔피언십까지 우승해 한 해에 4개의 메이저 대회를 동시에 석권하는 그랜드슬램을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골프 사상 그랜드슬램은 1930년 보비 존스가 단 한 차례 달성했다. 당시 US아마추어챔피언십, US오픈, 브리티시 오픈, 브리티시 아마추어챔피언십을 우승했다. 우즈는 2000년 US오픈과 브리티시오픈,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2001년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며 '타이거슬램'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스피스는 이날 인터뷰에서 "내가 아닌 우리가 팀으로서 노력한 결과였다"고 말했다. 그는 캐디인 마이클 그렐러에게 특별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스피스는 "나는 최상의 상태가 아니었지만, 우리는 해냈다. 마이클이 그 누구보다 이 코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렐러는 2011년까지 이 지역에서 초등학교 수학 선생님으로 일했다. 골프를 좋아하던 그는 여름방학이면 유니버시티 플레이스의 체임버스베이 골프장에서 파트 타임 캐디로 일했고, 2년 전에는 스피스가 참석한 가운데 이 골프장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스피스는 2011년 주니어 대회 때 처음 그렐러와 인연을 맺은 뒤 2012년 프로로 전향하면서 정식 캐디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스피스는 우승이 확정되자 그렐러에게 "당신에게 줄 것이 있다"며 18번홀에서 버디를 잡았던 '챔피언 볼'을 선물했다. 자폐 여동생을 위하는 마음으로 재단까지 설립한 스피스는 '사람이 됐다'는 평을 들으며 더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민학수 기자 |          입력 : 2015.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