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사진기자 이장욱씨가 촬영해 퓰리처상을 탔던 뉴욕 세계무역센터 붕괴 모습(왼쪽 사진)과 전란 중인 아프가니스탄의
브즈카쉬 경기 장면. [중앙포토]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사진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것도. 지난 20년간 단 한 번도 다른 걸 해보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퓰리처상을 받은 뒤로 주위에서 ‘에디터를 해봐라, 사업을 해봐라’ 유혹도 많이 있었어요. 근데 딴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아직도 사진만큼 저에게 ‘살아있다’는 기분을 갖게 하는 일은 없는 것 같아요.”
기다린 자에게만 열린다는 ‘마법의 순간(magical moment)’을 통해 원하는 사진을 건졌을 때의 환희를 다른 직업에서 찾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슈의 중심에 있는 현장에 직접 가서 보고, 느끼고, 찍고,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이 제 피 안에 흐르고 있는 거죠.”
그는 “돈을 좇았으면 벌써 큰 부자가 됐을 테지만 퓰리처상은 못 받았을 것”이라며 웃었다. 이씨는 부산 동래 출신으로 중앙대 건축공학과 1학년이던 1986년 뉴저지에 살던 이모의 초청으로 도미,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버겐커뮤니티칼리지에서 컴퓨터과학을 공부했다. 고교 때 취미였던 사진을 공부하기 위해 뉴욕대에 편입하게 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뉴욕대를 졸업하고 뉴욕타임스에서 인턴 4개월 만에 최연소 정식 사진기자가 된 그의 인생 철학은 “나 자신을 속이지 않았다”였다. “2001년 12월이었어요. 런던과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을 거쳐 9일 만에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는데 뭘 잘못 먹었는지 계속 토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했어요. 완전 탈진 상태로 도착했는데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더라고요. 그때 그날 밤의 기억이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해요.”
이씨는 아프간 전장을 4개월간 누비며 취재 송고한 기획물로 이듬해 동료 3명과 함께 퓰리처상 기획보도사진상을 받았다.
고난의 현장에서 발견하는 아름답고 인간적인 장면들은 늘 그의 가슴을 뛰게 했다. 북한의 실상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네 번이나 비자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는 그는 “북한 정권 하에서 사는 사람들의 실상을 취재하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꼭 한번 생생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재난·재해 현장에서만 좋은 사진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요즘은 사진 취재를 갈 때 자연재해 지역이든 전쟁 지역이든, 어디를 가든지 아이들을 눈여겨보게 된다고 했다. 그의 아들 지오가 이런 상황에 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단다.
뉴욕중앙일보 황주영 기자 [중앙일보] 2014.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