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2 제작진이 한국에 와서 겪은 일’ 첫째 날 : 마포대교에서 시체 발견
둘째 날 : 북한에서 미사일 대량 발사
셋째 날 : 지진
최근 스마트폰에서 화제가 된 유머다. 영화 ‘어벤져스2’ 촬영 즈음에 일어났던 사건·사고를 모은 것이다. 실제로 촬영 첫날인 지난달 30일 마포대교 아래에서는 20대 남자의 시체가 발견됐고, 그 다음날 북한은 서해로 포탄 100발을 쐈다. 우리 군은 300발로 대응했다. 1일 새벽엔 충남 태안에서 규모 5.1의 지진이 일어났다.
‘한국을 정말 어마무시한(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나라로 알겠네요’ ‘더 놀라운 건 한국 사람들 별 반응이 없다는 거’ ‘그냥 찍으면 재난·전쟁영화’ ‘어벤져스팀 고생 많네요. 평생 겪을 일을 3일 만에’ 등의 댓글이 달렸다.
“1500만원을 주웠어요. 비싸 보이는 갈색 가죽지갑에 들어 있었죠. 지갑을 열어 신분증을 보니 머리카락이 없더군요. 좀 무섭게 생겼다 싶어 파출소에 갖다줬어요. 그 지갑에는 100만원짜리 수표 15장, 그러니까 1500만원이 들어 있었죠. 그때 분실 신고 없었느냐고 전화가 걸려왔고, 좀 있다가 스님이 들어오셨어요. 스님은 고맙다며 150만원을 제 계좌로 보내주셨는데, 너무 큰돈이라 받을 수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스님은 제 얼굴에 힘든 일이 많은 것 같아 보이니 잘 쓰라고 하시더군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고로 스님이 계신 절 이름은… … … … 만우절이었습니다.”
만우절이던 지난 1일엔 평소보다 많은 유머가 스마트폰을 달궜다. ‘만우절’이라는 제목으로 소 만 마리가 절하는 그림이 스마트폰에서 인기를 끌었고,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의 만우절 카톡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 회장은 1일 아침 홍보실장에게 “어떻게 그딴 신문에 그런 기사가 나지?”라는 카톡을 보냈다. 깜짝 놀란 홍보실장이 “어떤 기사인지 찾지 못하겠다”고 하자 “1면에 났잖아! 만우일보. ㅍㅎㅎㅎㅎㅎㅎㅎㅎ”라고 회신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날 지인이 보낸 카톡 ‘○○○ 동영상 유출! 짤리기 전에 얼른 보세요’에 혹해 링크를 누른 이들은 ‘만우절이란…’으로 시작되는 용어사전 화면에 허를 찔렸다.
SNS에 어울리는 짧은 시를 발표해온 하상욱 시인은 이날 ‘만우절 가장 흔한 거짓말’이라는 제목의 시를 올렸다. 내용은 ‘당근 뻥이지! 내가 널 왜 좋아하냐’ 딱 두 줄이었다. 하 시인은 이에 대해 “알아두면 좋은 만우절 상식. 오늘 하는 고백은 대부분 진심이다”라는 설명을 붙였다.
‘웃으면 복이 온다’ 하지만 과거 유머는 그리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웃는 사람은 실없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었고, 유머 자체를 저속한 것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유머의 위상은 좀 다르다.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유머는 생활의 필수 구성요소, 나아가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카카오톡이나 밴드 같은 스마트폰 SNS 이용자라면 누구나 적어도 하루 한두 개 이상의 유머를 보게 된다. 젊은 층이 스마트폰 때문에 대면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지만 이들은 스마트폰 유머를 공유하며 서먹한 친구들과도 금세 웃음꽃을 피운다. 재미있다 싶은 유머는 링크를 통해 ‘빛의 속도’로 확산된다. 유머의 형태도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 적합하도록 한눈에 들어오게 만들어진 게 많다.
요즘 유머의 가장 큰 특징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소재가 된다는 점이다. 과거에 통용되던 유머들은 해외 유머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유통되는 경로도 제한돼 있었다. 임문영 IT 컨설턴트는 “유명했던 ‘참새 시리즈’처럼 옛 유머들은 실생활과 별 관계가 없는 내용이 많았다. 하지만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누구나 쉽게 유머 콘텐트를 만들어 올리고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일반인의 생활과 밀접한 유머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저 집에 있는데요…. 구라치기 있기 없기.”
“어.. 없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저씨 사랑함.”
하루에 수백 건의 택배를 배달해야 하는 택배 기사들이 확인작업 없이 물건을 그냥 경비실에 맡기고 가버리는 걸 포착한 유머다. 누구나 경험했던 상황이기에 공감할 수 있다.
최근 학생들 사이에 공감을 얻고 있는 카톡 유머로는 ‘센스 작렬 엄마 시리즈’가 있다.
엄마 “냉장고에 토마토 재워놨다. 먹어.”
딸 “깨우면 돼?”
엄마 “뭘.”
딸 “개그를 못 받네.”
엄마 “…자는 거 먹어. 눈치 못 채게.”
이슈가 되는 사회적·정치적 문제들도 유머 소재로 쓰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 덕분에 다시 주목을 받은 유머로 한 초등학생의 반공 포스터가 있다. 북쪽은 빨간색, 남쪽은 파란색으로 칠한 한반도 그림을 들고 “포스터 그리기 지겹다. 통일해라”라고 말하는 모습을 그린 포스터다. 스마트폰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면서 많은 이들이 공유했다. 이 포스터 유머는 2012년 한 차례 유행했다가 통일 대박론에 힘입어 다시 한번 유명세를 치렀다.
가장 흔하고 쉽게 유머로 사용되는 건 TV나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일상 생활에서 일어났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재로 꾸미는 SBS 라디오 프로그램 ‘2시 탈출, 컬투쇼’ 이야기는 스마트폰에서 자주 회자되는 유머다.
‘빵집에 망토 입고 갔는데 빵집 주인이 팔 없는 애인 줄 알고 빵봉지를 줄에 묶어서 목에 걸어줬어요. 아니라고 말하기도 좀 그래서 그냥 빵집 문을 어깨로 밀고 나왔죠.’
‘친구 아버지가 친구에게 찌질이가 뭐냐고 물어보셔서 “촌스럽고 덜 떨어진 사람을 말한다”고 말씀드렸대요. 근데 어느 날 그 친구가 아버지 휴대전화를 우연히 봤는데 자기랑 형이 ‘찌질이1’ ‘찌질이2’로 저장돼 있더래요.’
‘어떤 분이 빨간 코트에 까만 어그부츠 신고 나가니까 남친이 “너 영의정 같다” 하더래요.’
‘어떤 남녀가 술을 마셨는데 여자가 취해서 “오빠 해 뜨는 거 보고 싶어” 했대요. 여자가 졸다 깨 보니 바다 냄새가 물씬 나서 감동했는데… 뜨악, 수산물시장! 남친이 혀 꼬인 여친 말을 “회 뜨는 거 보고 싶어”로 들었대요.’
‘공대 시험시간에 공학용 계산기가 없던 친구가 매점에서 일반계산기를 빌려와 시험을 봤는데…. 어디선가 지잉~지잉~ 소리가 들려 다들 쳐다보니 친구가 빌려온 계산기에서 영수증이 출력되고 있었대요. 시험시간 내내 2~3분마다 영수증이 발급됐다지 뭐예요.’
유머가 늘어난 데는 정보가 빠르게 흘러가고 이용자들이 한 화면에서 머무는 시간이 짧은 스마트폰의 특징도 한몫한다. 유머는 이용자들을 잡아둘 수 있는 강력한 콘텐트다. 또 짧은 시간에 쉽게 즐길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네이버가 모바일용 화면에 FUN 카테고리를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FUN은 PC용 화면에는 없는 카테고리다. 네이버 관계자는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 중에도 간단한 유머를 쉽게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중·고생을 위한 수험정보 사이트 ‘오르비 옵티무스’가 2012년 유머 애플리케이션 ‘개9’를 만든 건 “중·고등학생일 때 가입한 회원들이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이 사이트를 떠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 앱은 국내 주요 유머 사이트 10여 개에 게재되는 유머 가운데 인기 있는 콘텐트만을 골라 보여준다. 덕분에 중·고생뿐 아니라 유머를 즐기는 성인 사이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다.
부산지방경찰청은 유머 콘텐트로 8만여 명의 페이스북 회원을 모았다. 단 한 장의 사진 덕분이었다. 슈퍼맨이 지하철역에 노숙을 하는 모습을 연출해 그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 후 그 밑에 ‘부산에는 부산 경찰이 있어 저는 할 일이 없습니다’라는 글을 달았다. 부산 경찰은 이 사진으로 모은 8만여 명의 페이스북 회원을 범인 검거와 미아 찾기에도 활용하고 있다. 지난 1월엔 여성을 성폭행하려다 도망친 피의자 사진을 페이스북에 공개해 사흘 만에 검거했다. 장재이(27) 부산경찰청 순경은 “사람 한 명이 수배 전단을 하루 종일 뿌려도 1000장을 뿌리기 어렵지만 페이스북에 올리면 부산 경찰에 호감을 가진 사람 8만 명이 동시에 보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시도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을 패러디한 1분34초짜리 홍보 영상 ‘진격의 고양시’를 만들어 조회 수 15만여 건을 기록했다. 고양시 채우석 공보담당관은 “지난해 53만 명이 방문해 300억원대 해외 수출 계약까지 일궈낸 국제꽃박람회 흥행의 비결은 바로 유머러스한 페이스북 콘텐트로 호감도를 높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남이 강한 논리로 설득을 하면 저항하는 특성이 있다”며 “신장을 이식하면 거부반응 일으키는 것과 똑같은 원리로, 우리에겐 독립성을 지키려는 욕구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머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현대인은 통제에 지쳐 있다. 그런데 웃기면 설득에 더 유리하다. 상대방 마음이 열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금 우리 사회에 유머가 유행하는 이유는 사회문화적인 성숙함과 심리적인 여유로움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봤다. 성숙한 인간이 유머도 할 줄 안다는 것이다. 성숙하다는 건 여유가 있다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유머를 문화 성숙도를 재는 척도로 삼기도 한다.
곽 교수는 우리나라 영화 시상식에선 눈물을 흘리지만 할리우드 시상식에서는 유머가 나오는 것을 예로 들었다. 지난달 오스카 시상식에서도 사회자 엘런 드제너러스는 “배고프신 분? 피자 시킬까요?”라고 외쳤다. 그러자 시상식장에 실제로 피자가 배달됐다. 유명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가 자리에서 일어나 몸소 피자 서빙을 하기도 했다. 수많은 할리우드 스타가 웃는 얼굴로 피자를 나눠먹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유머가 나올 수 없다. 나의 약점도 좀 드러내고 좀 우스꽝스러워져야 유머가 생긴다.
하상욱 시인은 자신이 시에 유머를 사용하는 이유를 “사람들에게 제일 쉽게 다가가고 편안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 웃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유머관은 “좋은 유머란 아픔을 이해할 때 나온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