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김헌 교수는 “아이들에게 왜 신화를 읽혀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신화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신화는 세상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철학적 노력”이라며 “그래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그리스·로마 신화 전문가인 김헌 서울대 교수는 "누구보다 아이들이 신화를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김헌 교수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주제로 서울대에서 18년 동안 강의를 진행해온 전문가다. 강의 경험을 집대성해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그리스 문학의 신화적 상상력』 등을 쓰기도 했다.
세상을 이해하려는 철학적 노력의 결과물이 신화라고요? 신화가 철학이라는 얘긴가요?
인문학은 문학과 역사, 철학으로 나뉩니다. 문·사·철이라고 불리죠. 문학은 ‘특정 상황이나 조건에서 사람은 어떻게 살까?’ 하는 상상의 결과물입니다. 삶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상상하는 거죠. 역사는 실제 벌어진 일을 통해 인간을 탐구하는 거고요. 둘 다 개별적입니다. 특정 상황, 인물 등에 대한 이해니까요. 이런 걸 모아서 보편화하고 일반화하는 게 철학이에요. 철학의 시작점은 실제 일어나거나 혹은 상상한 이야기인 거죠. 신화가 철학이라고 말하는 건 그래서입니다.
교수님의 설명도 철학적이네요. (웃음) 좀 더 쉽게 설명해주실 순 없을까요?
신화는 왜 만들어졌을까요? 고대엔 자연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었어요. 번개가 쳐서, 사람이 죽었어요. 바다에 폭풍이 쳐서 배가 뒤집히고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사람들은 궁금합니다. 이해할 수 없으니 더 무섭고요. 원리를 모르니, 대응 방법도 없죠. 그래서 만들어진 게 신화에요. 번개의 신 제우스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화가 나서 번개가 치고 폭풍이 인다고 이해한 거죠. 이제 대응할 수 있어요. 신에게 제사를 지내면 됩니다.
신화는 사실이 아닌 셈인데요, 그래도 여전히 유효한가요?
지금 보면 사실이 아니죠. 하지만 당시엔 그렇게 믿었어요. 그러니 힘을 발휘합니다. 신화를 통해 공동체가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결속하고, 힘을 모아 대응하니까요. 제사라는 행위를 통해서 공동체는 하나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옛날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신화라는 말씀이 이제 이해가 가요. 그런데 그 신화가 철학이라는 건 좀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해석하는 과정에서 철학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제우스는 바람둥이로 유명하죠. 제우스는 왜 그렇게 바람둥이였을까요? 사실 그건 인간의 본성이자 욕망이에요. 2022년에도 많은 사람이 불륜을 저지르잖아요. 그걸 제우스라는 인물을 통해 담은 거죠.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어요. 제우스가 바람을 피우는 건 자신이 통치하는 데 필요한 인재를 얻기 위해서예요. 제우스는 신들의 왕이고, 세상을 통치하는데 그러자면 협력자가 필요하잖아요. 가장 믿을만한 협력자는 누굴까요? 혈연으로 엮이는 거죠. 그래서 바람을 피우는 겁니다. 통치를 위해서 윤리는 저버리는 거죠. 그게 바로 통치자의 윤리입니다.
신화가 철학이라는 게 이제 이해가 가네요.
인간의 본성, 그러니까 이기적 유전자가 DNA를 널리 퍼지게 하려는 힘을 이해시키는 게 쉬울까요? 통치자의 윤리는 설명하는 게 쉬울까요? 지금처럼 문자가 있는 시대라면 그게 가능해요. 개념을 설명하고, 논리를 풀어내서 책으로 남겨 놓으면 다른 사람이 그걸 보고 공부하고 이해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인류 역사에서 문자가 있는 시기보다 그렇지 못한 시기가 더 길어요. 문자가 발명되기 전에는 어떻게 인류의 경험과 정보, 지식이 전달됐을까요? 구전이죠. 입에서 입으로 전달하는 겁니다. 오롯이 기억력에 의존해서요. 구전으로 전해지면 유실되는 정보가 많습니다. 인간의 기억력엔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식을 기억하기 가장 좋은 형태로 축적해야 했어요. 그게 바로 이야기에요. 이야기에 음률을 붙여 노래로 만들기도 하고요.
신에 대한 개념, 철학이 아니라 신에 대한 이야기, ‘신화’가 발달한 이유군요.
태초에 이야기가 있었죠. (웃음)
김헌 교수는 "이야기의 힘은 강렬하고 직관적인 것에 있다"며 "이야기가 교육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플라톤도 말했다, 이야기가 교육의 출발점이라고
김헌 교수는 어린이 책에 애정을 가지고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학습만화인 『그리스 로마 신화』를 감수했고, 그리스·로마 신화를 기반으로 쓴 동화 『신통한 책방 필로뮈토』 기획에 참여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신화를 읽어야 하는 사람이 바로 아이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이야기야말로 교육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이야기로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는 건가요?
이야기는 재밌고, 강렬하니까요. 이야기를 들으면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어요. 이미지만큼 강력한 게 없죠. 그럼 진짜 이미지, 그림이 더 좋은 거잖아요? 그런데 그림에는 담을 수 있는 정보량이 적어요. 반면 이야기는 그렇지 않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야기, 신화를 읽혀야 해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이야기나 신화를 충분히 읽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워요. 요즘 아이들은 공부하느라 바쁘잖아요. 하지만 저는 이야기야말로 진짜 공부라고 믿습니다.
이야기를 읽는 게 진짜 공부라는 말씀이 인상적이네요. 교수님 말씀대로 요즘 아이들은 정말 바쁘잖아요. 그래서 이야기를 읽을 시간이 충분하지 못한 것 같거든요. 그래서 교수님 말씀이 좀 한가하게 들리기도 해요.
제 주장이 아닙니다.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사상가였던 플라톤이 주장한 게 바로 ‘이야기 교육론’이에요. 플라톤의 저서 『국가』는 고전으로 꼽히는 책인데요, ‘이상적인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질까’가 그의 고민이었어요. 이상적인 국가는 결국 훌륭한 사람이 만드는 거잖아요. 그의 고민은 자연스럽게 교육으로 확장됩니다. 어떻게 교육해야 좋은 사람을 길러낼 수 있을까, 플라톤은 그 출발점이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어린이 교육의 핵심이라고 생각했죠.
플라톤 같은 대사상가도 아이를 가르치는 일은 어려웠던 모양이네요. (웃음) 그러니 재밌는 이야기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겠죠?
누구나 처음 살아보잖아요. 어린아이는 경험의 폭도 좁고, 삶의 영역도 좁아요. 경험의 폭, 삶의 폭을 넓혀주는 게 세상을 이해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게 어른이 되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과정이죠. 그런데 경험해보지 않은 세상을 이해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그러니 재미있고, 강렬한 이야기를 통해 아이에게 간접 경험을 하게 하는 거죠. 이야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리스·로마 신화는 도덕적이지만은 않잖아요. 앞서 제우스가 바람둥이였다고 하신 것만 봐도 그렇고요. 누굴 죽이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나고요.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읽히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어른이 읽으면 모를까요.
인간의 본성을 그리스·로마 신화만큼 잘 보여주는 신화는 찾기 어려워요. 신인데도 불쾌한 일이 생기면 분노하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용서도 잘 안 해주죠. 다른 신화 같으면 신은 완벽하고 무결한 존재인데 말이에요. 그런데도 저는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인간을 위로하니까요. 아이들도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느낍니다. 그걸 부끄러워하고 자책하기보다 받아들이는 게 건강해요. 그렇다고 해도 된다는 건 아닙니다. 그리스·로마 신화 역시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나쁜 선택을 한 신이나 영웅들은 결국 파멸하고 불행을 겪게 되죠. 그런 이야기를 통해 부정적인 감정이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잘 다스려야 한다는 걸 배울 수 있어요.
김헌 교수는 서울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0년간 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며 석사 학위를 따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힘들면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올까 봐 휴직이 아니라 사직까지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교사로 일한 10년간의 경험 때문에 그는 교육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신 경험이 있으시잖아요. 실제로 이야기를 많이 읽은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하나요?
이야기 교육으로 기초가 다져진 아이들은 개념화, 추상화 작업도 잘합니다. 더 나아가선 보편적인 진리를 찾는 데까지 이르죠. 인류가 문학(이야기)에서 시작해 철학에 이르렀듯 아이들도 그 과정을 겪는 겁니다. 이야기를 좋아하고, 이야기를 읽으려고 하고, 이야기를 찾아가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지혜를 사랑하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더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탐구합니다.
이야기를 읽는 게 중요하다는 데 공감이 가는데요, 좋은 이야기와 나쁜 이야기가 따로 있나요? 그 둘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면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재미만 있으면 되는 건가요?
재미가 없다는 건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주인공에게 몰입이 안 되는 것도 그래서죠.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는다는 건 고단하고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한다는 겁니다. 여행하는 것과 같죠.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고 나면 뭔가 다른 세상에 갔다 온 것 같은 기분이 든 적 있으시죠? 그리고 나면 다시 삶을 살아낼 활력을 얻잖아요. 아이도 마찬가지예요. 이야기를 통해 일상에서 떨어져 쉬는 경험은 아이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겁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는 걸 독려하세요. 공부해야지 하면서 책을 빼앗지 마시고요.
김헌 교수는 네 아이를 키워낸 양육자이기도 한 그는 "넷 중 공부를 잘 하는 아이는 없지만, 다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찾고 시도하는 주도적인 아이"라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김헌 교수는 “인문학의 효용을 찾기 어려운 시대”라고 말했다. 기술이 발달하고 분화되면서 전문성을 갖추는 게 중요한 시대에 문학과 역사, 철학의 직접적인 효용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문학을 전공한 학생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그는 “같은 기술을 가진 전문가라도 인간에 대한 이해 수준이 높은 사람이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든다”고 말했다. 경영자들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일 것이다.
인문학의 직접적 효용을 찾긴 어렵다지만, 여전히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인문학의 효용은 뭘까요?
인문학은 질문하는 학문이에요. 답은 틀릴 수 있지만, 질문은 그렇지 않아요. 답은 달라질 수 있지만, 질문은 그렇지 않고요. 언제나 질문은 유효합니다. 예를 들어, 누구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합니다. 어렸을 땐 이런 질문을 하면 공부나 하라는 답을 하죠.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그게 그 시절의 답인 거에요. 하지만 공부를 해도 잘 모르겠어요. 그러면 또다시 질문하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뭘 해야 행복할까’ 하고 말입니다. 질문은 영원합니다.
인문학은 질문할 줄 아는 사람을 만드는 건가요?
문학도, 역사도, 철학도 ‘왜’와 ‘어떻게’란 질문의 총합이죠. 인문학은 답을 찾는 학문이 맞아요. 그런데 답을 찾는다는 건 질문을 한다는 겁니다. 답보다 중요한 건 질문입니다.
어떤 질문이 좋은 질문인가요?
질문이 다 좋은 건 아닙니다. 유효하고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해요. 그럼 어떤 질문이 유효하고 중요한 질문이냐, 계속해서 떠오르는 질문이요. 근원적인 질문이죠. 누구나 그런 질문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죠. 어떤 사람에겐 ‘뭘 먹어야 맛있을까?’가 근원적인 질문이에요. 이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엄청난 미식가가 되거나 요리사가 되겠죠. 자신만의 질문을 끝까지 가지고 가면 누구나 분야의 톱이 되는 겁니다.
이야기를, 신화를 읽으면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되나요?
이야기를 읽는다는 건 의문을 가지고 이야기를 따라간다는 겁니다. 왜 그렇지? 어떻게 될까 하면서요. 다 읽고 나면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고 또 질문하게 되겠죠. 이야기, 신화가 인문학에 이르는, 그러니까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 단 하나의 길은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앞서 강조했듯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 아주 강력한 방법이죠.
1992년생, 1994년생, 2000년생, 2001년생 네 아이를 키운 양육자이기도 한 그는 인터뷰 말미에 두 가지를 당부했다. 아이가 평생 두고 읽을 책을 옆에 둘 수 있게 하라는 것과 독서를 통해 삶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하라는 것이었다.
“인생이 외로운 건 평생 가져갈 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게 맞는 책은 따로 있고요. 그걸 찾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그 책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해요. 제 인생의 책 중 하나가 『햄릿』인데, 20대의 『햄릿』과 50대의 『햄릿』은 다릅니다. 그걸 이야기할 수 있다면, 삶이 더 풍성하고 단단해질 수 있어요.”
①신화는 고대 인간이 세상을 설명하고 이해하기 한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졌다. 신화를 읽는다는 것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의 방식, 그러니까 고대의 지식을 읽는 것이다. 2022년에도 신화는 읽어야 할 가치가 있다.
②교육의 출발점은 이야기다. 이야기만큼 강력하고 직관적인 게 없기 때문이다. 경험이 적고 이해의 수준이 높지 않은 아이에게 이기기만큼 강한 교육은 없다. 그리스의 대사상가 플라톤 역시 이야기 교육론을 주창했다.
③인문학은 질문을 하고 답을 찾는 학문이다. 답보다 중요한 건 질문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끝까지 하면 누구나 자신만의 분야에서 톱이 될 수 있다.
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22.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