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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와 고추냉이는 같지 않다

해암도 2017. 9. 21. 04:51

영화나 TV 드라마 등에서 주연 이상으로 주목을 받는 조연 배우를 '신 스틸러(Scene Stealer)'라고 부른다.
음식에서도 주재료의 맛을 더 풍요롭게 해주며 입맛을 끄는 '맛 스틸러'가 있다. 바로 조미료다.
우리의 식욕을 돋우는 수십 수백 가지의 조미료들. 그 역사와 그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찾아봤다. 

혀에 닿는 순간 눈물이 핑~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게 있다. 바로 와사비다. 일본의 대표 식재료이지만, 요즘은 한국에서도 라면, 과자 등의 식품에 다양하게 활용돼 새로운 매운맛의 유행을 이끌고 있다. 개성있게 매운 와사비. 그 역사와 효능을 알아봤다.

정의

이미지 출처= 시즈오카 현 공식홈페이지, Flickr(Alpha)

와사비(和佐比, 山葵, わさび)는 녹색을 띠고 매운맛을 내는 일본의 대표적인 향신료이다. 일본이 원산지인 십자화과에 속하는 식물로 일년 내내 수확이 가능하다. 와사비에는 10가지 이상의 향미 성분이 포함돼 있는데, 이 성분이 생선 요리의 비린 맛을 없애고 음식의 풍미를 돋아주는 역할을 한다.

■종류
와사비는 크게 혼와사비(본와사비, 本わさび)와 세이요우 와사비(서양 와사비, 西洋わさび)로 나눌 수 있다. 본와사비는 일본이 원산지인 와사비를 말하며, 세이요우 와사비는 유럽이 원산지인 와사비를 가리킨다. 본 와사비는 재배 상의 차이에 따라 사와 와사비(沢わさび)와 하타케 와사비(畑わさび)로 나뉜다.

사와 와사비는 맑게 흐르는 물을 이용해 재배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와사비라고 하면 이 '사와 와사비'를 말한다. 사와 와사비는 시즈오카 현의 이즈 시, 나가노 현의 아즈미노 시에서 많이 재배된다. 하타케 와사비는 습도가 높은 비닐하우스나 밭에서 키운다. 품질은 사와 와사비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에 가격은 저렴한 편이며 재배도 용이하다.

한편 세이요우 와사비는 영어로는 호스래디쉬(horseradish)로 불린다. 유럽 북부지역에서 재배되던 것이 메이지시대 이후 미국을 통해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다. 유럽 북부와 기후가 비슷한 훗카이도, 나가노현, 후쿠시마현 등의 고지에서 재배되고 있다. 혼와사비가 코가 찌릿하면서도 은은한 향을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세이요우 와사비는 매운맛을 주로 갖고 있다. 매운 정도는 혼와사비의 1.5배라고 한다.

어원

와사비의 어원은 매운맛에서 유래하였다는 설과 매운맛과는 관련이 없다는 설로 나뉜다. 전자는 '와루사와리 히비쿠(悪障疼)'가 변해 약어로 와사비가 됐다는 설이다. 와루사와리 히비쿠는 '와루시타히비키(悪障響/나쁜 혀 울림)'의 뜻을 가진다. 

비슷한 맥락에서 매운맛을 표현한 '하나 세메(鼻迫め: 코를 자극)'가 변해 와사비가 됐다는 어원도 있다. 둘 다 와사비의 특징인 '코가 찡한 매움'을 어원으로 하고 있지만 억지스러운 느낌이 강하다.

후자는 와사비가 '접시꽃()'과 비슷하게 생긴 까닭에 '와사아루히()'라고 부르다가 와사비가 되었다는 설이다.

꽃과 잎에서 차이를 보이는 참고추냉이와 고추냉이.(왼쪽부터) /출처=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 Flickr(yshima96)

■ 와사비와 고추냉이는 같은 종(種)?
우리나라에서는 와사비와 고추냉이가 같은 말로 쓴다. 와사비의 순화어가 고추냉이인 것. 하지만 실제로는 와사비와 고추냉이는 다른 식물이다. 현재 고추냉이의 학명은 'Cardamine *pseudowasabi'이고, 와사비는'Eutrema japonicum'이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는 와사비(E. japonicum)는 '고추냉이'로, 고추냉이(C. pseudowasabi)는 '참고추냉이'라고 국명을 제시하고 있다. (*pseudowasabi의 뜻은 가짜 와사비이다.)

그렇다면, 국어학계는 왜 와사비를 대체할 한국어 명칭으로 고추냉이를 제시했었을까. 그 이유는 옛날 학명에 있다. 1930년대에는 와사비를 'Wasabia japonica Matsum'으로, 고추냉이를 'Wasabia koreana Nakai'로 부여했다. 같은 속에 속하는 매운 가까운 식물로 분류했기 때문에, 그 시절 국어학계에서 와사비를 대체할 말로 고추냉이를 제시했던 것이다.

역사

일본인들이 와사비를 처음 먹기 시작한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혹자는 조몬시대(약 1만2000년~기원전 3세기)부터 약용으로 먹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와사비에 대한 내용이 처음 발견된 것은 아스카시대(6세기말~701년) 유적에서다. 2001년 나라현 아스카촌(明日香村)의 옛 궁정 정원이었던 아스카 쿄아토엔치에서 '와사비 *산초(わさび さんしょ)'라고 적인 나뭇조각이 발견됐다. 와사비를 약용으로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초: 운향과의 초피나무 또는 동속 식물의 과피로서 씨를 최대한 제거해 만든 약재)

이어진 나라시대(710년~794년)의 <부역령(세법 시행령, 718년)>에서도 '山葵(와사비)'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와사비가 명산품으로 이미 납부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헤이안시대(794년~1185년) 때는 <혼조 와묘(本草和名, 918년)>라는 식물 의학 사전에 '와사비'라는 단어가 나오고, 율령 세칙을 적은 <엔기시키(延喜式)>에는 중앙 정부가 부과한 세금을 납부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품목에 와사비가 언급돼 있다. 10세기경에는 와사비가 약용과 세금용으로 쓰이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와사비를 식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가마쿠라시대(1185년~1333년)에 들어서다. <고금저문집(古今著聞集, 1254년)>에서는 야생의 와사비를 채취했던 기록이 있다. 또, 이 시기에는 쇼진 요리(, 고기를 사용하지 않는 채소 요리)가 발달했는데 여기에 와사비가 함께 나왔다고 한다. 불교 선종의 절을 중심으로 자생 와사비를 채취해 요리에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마쿠라시대(1185~1333)에는 와사비를 잘게 썰어 넣은 차가운 스프 요리가 대중에게까지 퍼졌으며, 무로마치시대(1336년~1573년)에는 와사비 식초를 넣은 잉어 사시미에 대한 기록이 있다. 와사비가 여러 요리의 양념으로까지 쓰이게 됐음을 알 수 있다.

와사비는 아즈치모모야마시대(1573년~1603년)가 끝나갈 무렵, 지금의 시즈오카가 있는 아베강 상류의 우토기 지역에서 처음 재배를 시작했다. 이어진 에도시대(1603년~1868년)에는 본격적으로 와사비를 먹게 됐다.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図会,1712년)>에는 소바에 와사비, 무 등의 향미 채소를 곁들여 먹은 기록이 남아 있다. <수정만고(守貞漫稿,1853년)>에는 참치와 전어로 만든 스시에 와사비가 많이 사용됐다고 기록돼 있다.

다이쇼시대(1912년~1926년)부터는 와사비를 건조해 분말로 만들었고, 1971년부터 와사비 페이스트를 만들어 출시했다. 1973년에는 강판에 간 와사비가 제품으로 선보였다.

효능과 부작용

출처=Flickr(Sarah_Ackerman)

향균·살균효과 와사비의 시니그린(sinigrin) 성분이 산소와 티오글루코시다아제 효소를 만나 화학반응을 하면 이소티오시안산 알릴(Ally isothiocyanate) 성분의 증기가 나온다. 와사비의 매운맛과 향의 주성분인 이소티오시안산 알릴에는 향균·살균의 효과가 있다. 대장균, 살모넬라균, O-157균, 비브리오균, 포도상구균 등의 식중독 원인균의 증식을 억제한다.

항산화 효과 (노화방지) 와사비에는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효소인 수퍼옥시드 디스무타아제(SOD,Superoxide dismutase)가 들어있다. 수퍼옥시드 디스무타아제는 산소에 노출되는 거의 모든 세포에서 항산화방어기작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욕 증진 및 소화에 도움 와사비는 위벽을 자극해 중추신경을 각성시키고, 소화액의 분비를 촉진시키는 작용을 해 소화불량 등의 증상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 와사비에 함유된 베타 아밀라아제라는 효소가 식욕 증진에 영향을 미친다. 한 연구에 의하면 식욕이 부진한 환자에게 하루 1g의 와사비를 첨가해 식사를 하게 했더니 식용이 증대돼 식사량이 늘어난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충치예방 2000년 태평양 연안 국제화학회의에서 와사비의 독특한 풍미를 유발하는 혼합물이 충치 유발 박테리아가 치아에 붙어있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또, 일본의 한 조미료 생산업체의 연구소도 와사비가 치아의 에나멜을 부식시키는 산을 형성하는 구강세균을 억제하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비타민C 풍부 와사비에는 100g당 41.9mg의 비타민C가 들어있다. 이는 사과(4.6mg/100g)의 약 10배에 해당한다. 비타민C 하면 떠오르는 레몬(53mg/100g)과 견주어도 크게 차이가 없다.

한편, 와사비와 같이 매운 맛과 향이 강한 식품은 과잉섭취 시 속쓰림, 복통 등의 위장 장애가 일어날 수 있다.

와사비 O,X 퀴즈

와사비의 매운맛 성분은 휘발성이기 때문에 갈아 놓고 오랫동안 방치하면 풍미와 매운맛이 없어진다. 하지만 와사비는 갈아놓은 직후에는 매운맛이 최고조에 달하므로 약 10분 정도 지난 뒤에 먹는 것이 좋다.

와사비는 세포가 파괴될 때 매운맛과 향이 나온다. 도자기나 스테인리스보다는 상어껍질에 갈 때 세포가 더 잘게 마찰돼 와사비의 맛과 향이 더 좋아진다고 한다.

와사비는 뿌리를 갈아서 만들어 먹는다. 하지만 잎, 줄기, 꽃도 밀폐 용기에 잠시 보관해두면 와사비의 매운 맛을 볼 수 있다. 잎이나 줄기는 간장과 함께 절여 먹을 수도 있다. 꽃과 잎은 튀김으로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그래픽=이은경, 최수영

■출처
세계 음식명 백과
어원유래사전(http://gogen-allguide.com/)
와사비밭 이미지- Flickr(wakanmuri)


 조선일보     구성=뉴스큐레이션팀 정진이    입력 : 2017.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