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나라 때 왕통(王通·580~617)은 '지학(止學)'에서 인간의 승패와 영욕에서 평범과 비범의 엇갈림이 '지(止)'란 한 글자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무엇을 멈추고, 어디서 그칠까가 늘 문제다. 멈춰야 할 때 내닫고, 그쳐야 할 때 뻗대면 삶은 그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다. 책 속의 몇 구절을 읽어본다.
"군자는 먼저 가리고 나서 사귀고, 소인은 우선 사귄 뒤에 택한다. 그래서 군자는 허물이 적고, 소인은 원망이 많다(君子先擇而後交, 小人先交而後擇. 故君子寡尤, 小人多怨)." 내가 저에게 어떻게 해줬는데 나한테 이럴 수가 있나? 사귀는 순서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재주가 높은 것은 지혜가 아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드러나지 않는다. 지위가 높으면 실로 위험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리로 나아가지 않는다. 큰 지혜는 멈춤을 알지만, 작은 지혜는 꾀하기만 한다(才高非智, 智者弗顯也. 位尊實危, 智者不就也. 大智知止, 小智惟謀)." 큰 지혜는 난관에 처했을 때 멈출 줄 알아 파멸로 내닫는 법이 없다. 스스로 똑똑하다 믿는 소지(小智)는 문제 앞에서 끊임없이 잔머리를 굴리고 일을 꾸미다 제풀에 엎어진다. "지혜가 미치지 못하면서 큰일을 도모하는 자는 무너진다. 지혜를 멈춤 없이 아득한 것만 꾀하는 자는 엎어진다(智不及而謀大者毁, 智無歇而謀遠者逆)." 멈춤을 모르고 기세를 돋워 벼랑 끝을 향해 돌진한다.
"권세는 무상한지라 어진 이는 믿지 않는다. 권세에는 흉함이 깃들어 있어 지혜로운 자는 뽐내지 않는다(勢無常也, 仁者勿恃. 勢伏凶也, 智者不矜)." 얼마 못 갈 권세를 믿고 멋대로 굴면 파멸이 코앞에 있다. "왕 노릇 하는 사람은 쟁변(爭辯)하지 않는다. 말로 다투면 위엄이 줄어든다. 지혜로운 자는 말이 어눌하다. 어눌
하면 적을 미혹시킨다. 용감한 사람은 말이 없다. 말을 하면 행함에 멈칫대게 된다(王者不辯, 辯則少威焉. 智者訥言, 訥則惑敵焉. 勇者無語, 語則怯行焉)." 말로 싸워 이기고, 달변으로 상대를 꺾는 것은 잠깐은 통쾌해도 제 위엄을 깎고, 상대가 나를 만만히 보게 만든다. 어눌한 듯 말을 아예 말을 멈출 때 가늠할 수 없는 깊이와 힘이 생긴다. 그침의 미학!
조선일보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 2017.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