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대통령이 될 사람이 갖추어야 할 자질 한 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입니까?" "자기집필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설문의 대강은 자기가 쓸 수 있어야 대통령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 총리를 지낸 분과 점심 식사를 하다가 나눈 이야기인데, 굉장히 공감이 되는 지적이었다. 자기가 할 말의 연설문 정도는 자신이 집필할 수 있어야 한다. 세부적인 부분까지는 참모가 다듬는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대국민 메시지의 골격 정도는 자기가 짤 수 있는 지성이 있어야지, 그것도 못 하면 그게 무슨 지도자란 말인가!
'자기집필능력'을 갖추려면 어떤 전제조건이 필요할까? 먼저 독서가 이루어져야 한다. 유교 문명권의 특징은 '독서인(讀書人)'을 양성하는 데에 있었다. 유교의 도 닦는 방법은 기도나 명상, 단전호흡이 아니라 바로 매일 새벽부터 경상(經床)에다가 경전과 책을 놓고 소리 내어 읽는 방법이었다. 책을 읽는 행위야말로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필자는 '책상물림' 팔자를 타고나서인지는 몰라도 동굴에 가서 기도도 해보았고, 나름대로 명상도 해 보았지만 결정적인 효과를 못 보았다. 결국은 책 읽는 것이 기도요, 도 닦는 것이요, 종교적 수행이라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다.
독서를 하다 보면 어휘 구사력, 논리의 전개, 사안을 보는 시야의 확대가 이루어진다. 독서는 과거 역사에서 가장 지성적이었던 인물들과의 대화이다. 수평적 대화가 식사 자리, 차(茶) 자리에서 이루어진다면 수직적 대화는 독서이다. 골동품 중에서도 최고의 썩지 않는 골동이 바로 이들이 남긴 고전이다.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의 과거(科擧) 제도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기집필능력을 테스트하는 일이었다. 조선조의 왕들이 신하들과 고전의 내용을 놓고 토론하는 경연(經筵)도 그렇다. 왕 노릇 하느라고 매일
업무가 바쁘니까 아예 공식 스케줄에다 신하들과의 독서 토론 과목을 집어넣어서 의무적으로 하도록 한 것이 조선의 정치제도였다.
고대 로마제국의 초석을 닦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꼽는 사가(史家)가 많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피 튀기는 전쟁터에도 '갈리아 전쟁기'와 같은 명문장을 남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이런 지도자를 만날까?
조선일보 조용헌 입력 : 2017.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