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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종자 (讀書種子)

해암도 2017. 2. 23. 06:58

  

정민 한양대 교수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1629~1689)이 기사환국으로 남인의 탄핵을 받아 유배지에서 사사되기 전 자식들에게 '유계(遺戒)'를 남겼다.

"옛사람은 독서하는 종자(種子)가 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너희는 자식들을 부지런히 가르쳐서 끝내 충효와 문헌의 전함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古人云不可使讀書種子斷絶, 汝輩果能勤誨諸兒, 終不失忠孝文獻之傳)"

맏아들 김창집(金昌集·1648~1722) 또한 왕세제의 대리청정 문제로 소론과 대립 끝에 신임사화 때 사약을 받았다. 세상을 뜨기 직전 자손에게 마지막 당부를 남겼다. "오직 바라기는 너희가 화변(禍變)으로 제풀에 기운이 꺾이지 말고, 학업에 더욱 부지런히 힘써 독서종자가 끊어지는 근심이 없게 해야만 할 것이다.(惟望汝等勿以禍變而自沮, 益勤學業, 俾無讀書種子仍絶之患, 至可至可)"

부자의 유언 속에 독서종자(讀書種子)란 말이 똑같이 들어 있다. 나는 부끄럼 없이 죽는다. 너희가 독서종자가 되어 가문의 명예를 지켜다오. 할아버지의 유언을 아버지의 입을 통해 다시 듣는 손자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비원(悲願)처럼 죽음 앞에서 되뇐 독서종자의 의미가 감동스럽다.

다산도 귀양지 강진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절대로 과거시험을 보지 못함으로 기죽지 말고 마음으로 경전 공부에 힘을 쏟아 독서종자가 끊어지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고 썼다. 폐족의 처지를 비관해 자식들이 자포자기할까 봐 마음 졸이는 아버지의 마음을 담았다.

독서종자가 끊어지면 어찌 되는가? 정조(正祖)는 '일득록(日得錄)'에서 "근래 뼈대 있고 훌륭한 집안에 독서종자가 있단 말을 못 들었다. 이러니 명예와 검속이 날로 천해지고, 세상의 도리가 날로 무너져, 의리를 우습게 알고 권세와 이익만을 좋아한다(近日故家華閥, 未聞有讀書種子, 於是乎名檢日賤而世道日壞, 弁髦義理, 芻豢勢利)"고 통탄했다.

독서종자는 책 읽는 종자다. 종자는 씨앗이다. 독서의 씨앗마저 끊어지면 그 집안도 나라도 그것으로 끝이다. 공부만이 나를 지켜주고 내 집안, 내 나라를 지켜준다. 독서의 씨앗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조선일보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 2017.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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