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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지읍시다

해암도 2017. 1. 20. 09:14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밥값 내놔라!"

생전의 성철(性徹·1912~1993) 스님은 툭하면 이렇게 일갈했다. 선방(禪房)에서 참선하다 조는 선승에게 장군 죽비를 쩍 내리치며 그랬고, 질질 끌어다 계곡의 얼음물에 메다꽂으며 외쳤고, 멀쩡히 참선 수행하는 도반(道伴)도 '밥값'으로 기습했다. 최근 출간된 '성철 평전'(모과나무)엔 이런 일화가 즐비하다.

특히 동갑내기 '절친 도반' 향곡(香谷· 1912~1979) 스님과는 멱살잡이가 일상이었다. 봉암사 결사 때의 일화는 유명하다. 1947년 시작돼 6·25전쟁 발발 전까지 이어진 봉암사 결사는 '부처님 법대로 살자'를 모토로 당대의 선승들이 모여 '날마다 두 시간 이상 노동한다' '아침은 죽, 오후엔 불식(不食)' 등 생활규칙을 정하고 추상같이 정진한 전설적인 결사였다.

이런 자리에서 두 사람은 툭하면 서로 멱살을 잡았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서로 절 마당에 메다꽂고 씨름을 했다. 겉으론 몸싸움이었지만 실은 두 선승은 '법(法) 거량' 즉 '깨달음의 싸움'을 벌이는 것이었고, 이 광경을 지켜보는 수행자들을 위한 최고의 '퍼포먼스'였다.

1993년 11월4일 열반한 조계종 종정 성철 큰 스님. 평생 누더기 한벌, 지팡이 하나만으로 생활한 검소함은 불교계뿐만 아니라 사회전체의 존경을 받았다. /조선일보 DB
1960년대 후반 이후 성철 스님은 해인사, 향곡 스님은 부산 기장군 묘관음사에 머물렀다. 향곡 스님은 이런 혼잣말을 되뇌곤 했다. "보고 지바라(싶어라), 보고 지바라. 성철이가 보고 지바라. 가고 지바라, 가고 지바라. 해인사로 가고 지바라." 당시 시봉하던 법념 스님이 "해인사에 한번 가시죠" 권하면 "가고 싶어도 내가 참지. 자꾸 가면 대중한테 미안해서 자주 못 가"라 했단다.

그래서 두 선사는 1년에 겨우 한두 번 만났다.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방 안에서 두 분이 말씀을 나누시는데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아요. 그래서 향곡 스님 가신 후에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셨느냐'고 여쭈면 '벽암록' 펴놓고 화두를 하나씩 점검하며 '(뜻을) 일러보라'고 이야기했다고 하셨습니다."(원택 스님) 웬만큼 수행한 선승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의 화두(話頭)를 놓고 보통 사람들 수다 떨듯이 이야기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법 싸움'은 깨달은 스님들 사이에서의 일이었다. 팔만대장경을 거꾸로 왼다는 전설의 성철 스님이었지만 조계종 종정에 취임한 후 내린 법어에선 철저히 한글 세대에 눈높이를 맞췄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남을 위해 기도합시다" "남모르게 남을 도웁시다"…. 한문투성이 어려운 말씀이 아니라 당장 생활에서 실천하기에 쉽고도 어려운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설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양력 1월 1일과는 또 달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와 덕담이 오갈 것이다. 성철 스님이 지금 생존해 설 세배를 받는다면 일반인들에겐 어떤 덕담을 할까 생각해봤다. 아마도 "새해 복 많 이 지으라"라며 "자기를 바로 보고, 남을 위해 기도하며, 남모르게 남을 돕는 것이 복 짓는 일이다. 복을 많이 지어야 받을 복도 많지 않겠나…"라고 했을 것 같다.

올해 설엔 인사말과 덕담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에서 "새해 복 많이 지읍시다(지으시게)"라고 조금만 바꿔보면 어떨까. 덕담하는 이나 받는 사람의 새해 첫 마음가짐이 조금은 달라질 것 같다.


                                 조선일보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입력 : 2017.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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