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통념을 뒤집는 남자 - 벤처 투자가 피터 틸

해암도 2016. 11. 19. 08:35

모두가 "노!" 할 때 혼자서 "예스!"…  

페이팔 공동 창업자·페이스북 사외이사… 벤처 투자가 피터 틸
실리콘밸리서 혼자 트럼프 지지… IT업계서 유일하게 인수위 포함

피터 틸
피터 틸 / 블룸버그

미국이 대선 열기로 뜨겁던 지난 7월 14일(현지 시각), 미국 실리콘밸리의 주요 기업인 145명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여기에는 애플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 더스틴 모스코비츠를 비롯해, 트위터·이베이·퀄컴 창업자 등 실리콘밸리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들은 "트럼프는 미국의 혁신과 성장을 방해하는 재앙이 될 것"이라며 트럼프를 지지하지 말 것을 호소했다.

그러자 같은 날 오후, 실리콘밸리의 다른 유명 인사가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온라인 결제회사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이자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벤처투자자로 꼽히는 피터 틸(Thiel·49·사진)이었다. 틸은 "대부분 미국인은 나라가 잘못됐다고 보고 있다"면서,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 지지 연설을 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실리콘밸리의 동료들이 한목소리로 '트럼프 반대'를 외칠 때, 틸은 혼자 '트럼프 찬성'을 밝히며 미국 재계와 정치권의 주목을 한몸에 받은 것이다. 틸은 트럼프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실리콘밸리에서 '공공의 적'이 됐다. 틸이 파트너로 있는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창업 기업 육성 기관) 와이콤비네이터는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틸의 직책을 박탈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트럼프가 당선됐고, 틸은 실리콘밸리 기업가 중엔 유일하게 트럼프 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이 됐다. 영국 잡지 더위크는 "틸이 트럼프를 지지한 진짜 이유가 무엇이든, 그는 권력을 얻게 됐다"며 "그의 베팅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틸은 페이팔 창업부터 페이스북·옐프·링크드인·야머 등 스타트업 투자, 그리고 이번 미 대선까지 상황 판단과 투자 결정에서 실패한 적이 없다. 오늘날 경영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장기적 안목을 바탕으로 한 정확한 판단력과 빠른 결단력이다. 틸이 왜 트럼프를 지지했는지 보면 리더들이 가져야 할 상황 인식과 판단, 결정 방식을 알 수 있다.

1. 통념을 그대로 믿지 마라

이미 알려진 것을 관행처럼 따르거나 믿는 습관은 경영진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다. 이번 미 대선에서 주요 언론은 유권자들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줄곧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트럼프 후보를 앞선 것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틸은 보도된 수치를 그대로 믿지 않았다. 그는 대선 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언론사의 전망이나 여론조사를 보면서, 트럼프가 심하게 저평가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면서 “트럼프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틸의 이런 생각 뒤에는 “통념을 믿지 말고 다르게 생각하라”는 원칙이 있다. 그는 채용 면접을 볼 때 항상 “통념과 반대되지만 당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현상이나 상황을 의심 없이 믿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각으로 볼 줄 아는지 보기 위한 질문이다. 통념을 거부하는 성향 때문에 틸은 투자 업계에서도 우월한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벤처투자자 나발 라비칸트는 “피터 틸은 인기투표에서 이겨 성공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2. 경쟁하지 말고 독점하라

틸의 창업 지론은 “경쟁하지 말고 독점하라”는 것이다. 그는 요즘처럼 총수요가 크게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경쟁을 하면 이윤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독점해야 한다고 말한다. 틸은 “비즈니스 관행 중 과거에 발생한 실수 때문에 생겨난 왜곡된 의견이 많다”며 “실리콘밸리에서 회사를 시작할 때 절대적인 원칙처럼 여겨져 왔던 말들이 실제로는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틸은 ‘스타트업은 몸집이 가벼워야 한다’ ‘경쟁자보다 더 잘해라’ 등 당연해 보이는 창업 원칙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몸집이 가볍다는 것은 결국 정해진 계획이 없다는 것인데 스타트업엔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또 “경쟁이 심한 시장은 이윤을 파괴하므로, 경쟁을 피하고 아예 새로운 시장을 찾아 독점하는 게 좋다”고도 했다. 틸이 트럼프를 지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리콘밸리 동료들이 모두 클린턴을 지지할 때 꿋꿋이 다른 길을 가면서 권력을 손에 넣었다.

3. 성공에 안주하지 말고 주변을 둘러보라

실리콘밸리는 다양성을 표방하며 성장했지만, 최근엔 이런 정신이 약해졌다는 비판을 받는다. 틸은 스스로 억만장자이면서도 끊임없이 ‘실리콘밸리’란 세계에 갇히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공화당 전당대회의 트럼프 지지 연설에서도 “내가 사는 실리콘밸리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기술 진보를 이룬 대가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 여기에 살다 보면 미국 경제가 지금 완전히 잘못됐다는 것을 체감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지만 실리콘밸리는 작은 동네에 불과하고 대다수 미국인은 임금 하락과 의료·교육비 증가로 고통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대도시 부자들이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 국가 경제가 잘못된 것을 못 보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 연설 이후, 실리콘밸리의 투자자 키스 래보이스는 “IT 업계가 너무 왼쪽으로 치우쳐 현실 감각이 떨어진 것은 맞는다”고 트위터에 남겼다. 뉴욕타임스도 “실리콘밸리가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4.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하라

틸은 기업에 투자할 때 현재 실적이 아닌, 미래의 기업 가치를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기 성장 전망이 좋은데 아직 저평가된 업체라면 투자할 만하다는 것이다. 그가 투자한 링크드인은 이달 18일 기준으로 시가총액이 260억달러다. 2015년 매출이 30억달러 미만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시장에서 기업 가치가 매우 높게 평가받고 있는 셈이다.

미국 온라인 매체 복스는 틸의 트럼프 지지를 두고 “틸은 벤처투자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며 “(규모가) 작고 장기적으로 큰 이익이 되는 것을 골라서 투자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틸이 얻게 될 이익은 적지 않다. 먼저 틸은 트럼프 당선인 인수위원회에 IT 업계에서 유일하게 집행위원으로 포함됐다. 또 틸이 공동 창업한 빅데이터 회사 팰런티어는 미 국방부가 발주한 2억600만달러 규모의 사업 입찰을 앞두고 있어, 수주에 성공하면 상당한 이익을 보게 된다.

피터틸. 약력


                조선일보   박정현 기자 입력 : 2016.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