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가보거나 살아본 사람은 많아도, 일본에서 운전을 해 본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듯하다. 수년을 직접 운전을 하고 다니며 느낀 점 몇 가지. (동경 버전 – 지방마다 조금 다를 수 있다.)
1) 깜빡이를 켜면 미친 듯이 양보해준다. 이 느낌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듯. 꽤 빠른 속도로 달려오다가도 깜빡이를 켜는 순간 속도를 확 줄여 양보해준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까지 양보할 필요 없는데...”라고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깜빡이 켜는 차들에게 양보해 준다.
2) 양보를 받고 나면 예외없이 비상 깜빡이나 목례로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거 안하면 무슨 병이라도 걸릴 것처럼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양보해 준 상대방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3) 신호없는 교차로에서 우회전(한국의 좌회전에 해당)을 하기 위해 기다릴 경우, 정면에서 마주 오는 차량이 속도를 줄이면서 상향등을 내쏘는 경우가 있다. 맨 처음에는 나보고 들어오지 말라는 의미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자기가 서줄테니 먼저 가라는 양보의 사인이었다. 반대로 한국처럼 앞차한테 비키거나 빨리 가라는 의미로 상향등을 쏘는 경우는... 기억에 없다. 상향등의 사용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반대이다. 일본인은 양보를 위해 한국인은 재촉을 위해...(사실 상향등은 passing light라고 하여 추월시에 사용하는 용도가 분명히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여간해서는 상향등을 추월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4) 일본 운전자들은 정지 싸인에 칼같이 맞춰 선다. 골목길의 경우 교차로(길이 만나는 곳)까지 꽤 거리가 있는데(심한 경우 20미터 이상 전 지점, 더 심한 경우는 아예 교차로가 보이지도 않는 지점) 도로 위에 흰색 페인트로 ‘토마레(stop)’ 싸인이 그려져 있다. 일본 운전자들은 그 싸인에 칼같이 맞춰 선다. 신기한 것은 그 싸인에 딱 맞춰 서야지 통행이 된다.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가 있으면 반대편에서 (특히 꺾어들어오는) 차와 서로 걸려 통행을 못한다. 공무원들이 그 자리에 나와 실측 해보고 시뮬레이션 해보지 않으면 그 지점을 도저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5) 반사경이 많이 있고 기가 막히게 정확하게 배치되어 있다. 4)번과 같은 맥락에서 좁은 골목길 교차로에서 시야 확보가 충분히 안될 때 반드시 반사경이 있다. 반사경도 한두개가 덩그러니 있는게 아니라, 많은 경우 대여섯개까지 있다. ‘저 부분이 찜찜하게 잘 안보이는데’ 하는 곳을 비추는 추가 반사경이다. 이것도 담당 공무원들이 직접 실사하고 시뮬레이션 해보지 않으면 그 장소, 그 각도의 반사경을 그렇게 배려있게 설치하지 못했을 것이다.
6) 5년동안 운전하면서 크락숑(사실은 klaxon) 소리는 딱 한 번 들었다. (내가 잘못 운전해서 위험할뻔한 순간에 뒤의 트럭한테 한 방 먹음) 심지어는 걸어 다니면서도 빵빵거리는 차를 본 적이 없다. 일본인들은 크락숑을 울리는 것에 죄의식을 갖고 있다고 여겨질만큼 정말로 위험하거나 주의를 주어야 할 상황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다.
7) 자로잰듯 주차한다. 주차 할 때 자로 재듯이 구역안에 좌우 간격을 정확하게 맞추고 뒷바퀴까지 돌출정지대 끝에 맞추어 한다. 그게 될 때까지 몇 번이고 후진과 전진을 반복해서 한다. 운전이 서툰 사람은 수십번을 반복해서라도 똑바로 대려 한다. 매일매일 면허시험 보는 사람들 같다.
8) 마지막이자 가장 충격적인 것. 법규위반하다 교통경찰한테 걸리면, 경찰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끝.
신상목 전 외교관 조선일보 입력 : 2016.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