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말, 좋은글

백성호의 현문우답

해암도 2021. 7. 4. 05:39

짧은 생각



하늘에는 달이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달을 진리에 비유합니다.
그 진리가 우리의 가슴에 그대로 내려와 앉기를 바랍니다.

세종 때 지은 가사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도 그런 뜻입니다.
하늘의 달이, 하늘의 진리가 천 개의 강에 비친다는 말입니다.
말그대로 하늘의 달이 강물 위에 도장을 꽝! 찍는다는 의미입니다.

해인사의 ‘해인(海印)’도 그런 뜻입니다.
하늘의 달이 바다에 도장을 꽝! 찍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되느냐고요?
맞습니다. 내 안에 달이 뜹니다.
하늘에만 있는 줄 알았던 달이,
내 안에도 뜹니다.


사람이 바로
하나 하나의 강이고,
사람이 바로
하나 하나의 바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불교에만 이런 표현이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리스도교에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 안에 거하듯,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간단하게 해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라. 그럼 구원을 받을 거다.

그런데 여기에는 더 깊은 뜻이 담겨있다고 봅니다.
저는 ‘거함’이란 단어를 묵상해 봅니다.

내가 너희에게 거하듯,
너희가 내 안에 거한다.

저는 여기서 달과 강을 봅니다.
하늘의 달이 강에 도장을 찍었으니,
강도 하늘의 달에 도장을 찍어라.

2000년 전에 살았던 빌립보를 묵상합니다.
그는 모두 알고 있었을 겁니다.
우리가 궁금해하는 의문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예수의 출생은 어땠을까,
예수에게 아내가 있었을까,
막달라 마리아는 어떤 여성이었을까,
12사도와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는 어땠을까,
예수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는 어땠을까,
예수에게 형제나 자매가 있었을까.

이 모든 물음들에 대한 아주 정확한 답을
빌립보는 알고 있었을 겁니다.
당시에는 그게 특별한 비밀은 아니었을테니까요.
예수의 다른 제자들도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빌립보가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주십시오”라고 했을 때,
예수는 “너는 나를 모른다”고 했습니다.

빌립보는 많은 걸 아는 인물입니다.
우리가 지금 궁금해하는 모든 물음의 답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는 “너는 나를 모른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라고
지적까지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빌립보는 예수의 겉모습만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 떠있는 달은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달을 가진 예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복음 14장9절)

사람들은 묻습니다.
그 달이 뭐냐고요.
예수 안에 떠있는 그 달이 뭐냐고요.

그게 바로 아버지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입니다.
예수 안의 달은 하느님 나라의 속성입니다.
저는 그걸 신의 속성이라고 부릅니다.
줄여서 말하면 ‘신성(神性)’입니다.

갈릴리 호수 주위의 옛날 모습. 예수 당시의 풍광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터이다.


산상수훈에서 설했던 예수의 메시지.
복음서에서 설했던 그 모든 예수의 말씀.

그걸 길어올린 근원의 샘물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예수 안의 달입니다.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럼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 자신을 향해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예수를 아는가.
안다면,
나는 예수의 무엇을 아는가.

내가 아는 건
예수의 겉모습인가.
아니면
예수의 속모습인가.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중앙일보 2021,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