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수행할 때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중에게 보이는 혜민 스님은 늘 같은 모습이다. 앳되고 훈훈한 외모와 그 어떤 이야기라도 잘 들어줄 것 같은 선한 눈매, 그리고 근심 걱정 하나 없을 것 같은 환한 미소. 오후 햇살이 환하게 들어오는 인사동 마음치유학교에서 4년 만에 만난 혜민 스님은 또 그렇게 한결같은 태도로 기자를 맞았다.
“전망 좋죠? 정면에 성당이 있어서 더 좋아요. 여기에는 부처님이 계시고, 고개만 돌리면 다른 종교가 있고. 굉장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웃음)
따뜻한 마룻바닥에 의자 몇 개가 놓인 소박한 공간에서 혜민 스님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뜨끈뜨끈한 인쇄본이 몇 시간 전에 손에 들어왔지만 출간의 기쁨을 음미할 시간도 없다. 오랜만에 책을 출간해서 스케줄이 속속 생기고 있고, 마음치유학교도 새롭게 정비하는 시기라서 회의와 일정이 꽉 찬 상태다.
# 두 번째 베스트셀러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우리나라 출판계에 족적을 남긴 화제의 베스트셀러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저자 혜민 스님이 4년 만에 내놓은 새 책은 출간 당일부터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터뷰를 나누던 날은 예약판매 순위 1위였다. 역시나 출간하자마자 인기다.
책이 나오기도 전에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던데요? 축하드립니다. 저도 인쇄본을 이제 받아봤는데, 벌써 반응을 보여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전작이 워낙 베스트셀러였던 데다 화제가 되어서 두 번째 책이 금방 나올 줄 알았는데, 출간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 것 같아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사랑을 받았다고 바로 책을 내기보다는, 내 안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많이 차서 그것이 자연스럽게 흘러넘칠 때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기다렸어요. 그동안 여러 군데 썼던 글들을 엮으니 세 권 분량이 되었는데, 그중 정수의 내용만 모아서 냈어요. 유명해졌다고 바로 내기보다는 퀄리티 있게 가고 싶었거든요.(웃음)
그 말은 책에 대한 애정으로 들리는데요? 맞아요. 차분하게, 글을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즐기려는 마음을 많이 느꼈어요. 저 스스로 생각했을 때, 전 즉각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내면의 깊은 의미의 말을 글로 담았을 때 더 나은 것 같더라고요. 한꺼번에 며칠 몰아 쓰는 것보다 여유를 가지고 차근차근 하나씩 쓰면 완성도도 있고, 보다 구체적으로 풀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베스트셀러 저자이니만큼 많은 출판사에서 러브콜을 받았을 것 같아요. ‘혜민 스님 백지수표설’도 잠깐 있었잖아요.(웃음) 그런 이상한 소문들이 나는데, 절대 그런 적이 없어요.(웃음) 첫 책을 함께 작업한 편집자분들과 인연이 계속 있었어요. 제가 무명의 작가였을 때 먼저 책을 내자고 제안을 해주신 데 대한 고마움이 있어요. 훌륭한 출판사들이 많이 있지만, 함께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이번 책이 나온 출판사 수오서재는 첫 책을 펴낸 쌤앤파커스 출신 편집자 3인이 독립해 만든 신생 출판사다.)
글 쓰시면서 ‘두 번째’의 긴장감은 없으셨나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책이 나오고 나서 정말 많은 분들을 만났어요. 절 보시고는 갑자기 울먹거리면서 “자살하려고 했는데 책을 읽고 마음을 바꿨다. 아직 좀 더 살아가라는 메시지 덕분이다”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제가 상상하지도 못한 치유가 일어나는 것에 놀랐어요. 사실 저는 그 책을 쓸 때만 해도 제 글에 이렇게 큰 힘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어요.
그렇게 완성한 이번 책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제목 그대로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예요.(웃음)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서는 현대인이 너무 바쁘니까, ‘한 템포 멈추고 마음을 편안하게, 휴식의 시간을 가지면서 주변을 돌아보면 내 마음도 보인다’를 이야기하고 싶었고, 이번에는 모두가 완벽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어요. 스스로 나를 봐도 완벽하지 않고, 내 가족, 부모님, 아이들, 친척, 친한 친구, 동료 등등 온 세상에 다 불완전하고 모순투성이인 모습들이 있잖아요. 다 완벽하지 않은데 조소나 비난만 하며 살기엔 내 삶이 너무 소중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 불완전함은 종교인인 스님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일 테고요. 그럼요. 책의 프롤로그에도 썼지만, 종교인이다 보니 저에게는 안으로 성찰해가는 시간이 많을 뿐이죠. 기도를 하면, 기도 안에는 부족한 부분을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부분을 따뜻하게 엄마의 눈길로 들여다보는 자비한 시선도 있어요. 그걸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시선일 수도 있고, 불교에서는 불자의 본성이나 관세음보살님의 눈길일 수 있어요. 내 안의 불완전한 것들을 따뜻하게 보살펴주는 온전함, 그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수행을 하다 보면 깨달음의 부분이 있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려고 했어요.
그게 스님 글의 매력인 것 같아요. 쉽고 편안하게 읽히는데 울림이 있는. 저는 무조건 쉽게 풀어내려고 해요. 중간에 연애 이야기도 넣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넣고요. 어떤 힘든 상황에서 우리가 늘 듣는 이야기 중에 ‘내려놓으라’라는 말 있잖아요.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내려놓는가를 말해주지는 않아요. ‘누군가가 너무 밉더라도 용서하라’는 말은 있어도 어떻게 용서하는지는 안 알려줘요. 내려놓는 법, 용서하는 법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려고 노력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안 좋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일어나는 질문이 중심이 되는 글들을 많이 넣었어요.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안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 이야기는 참 싫어요.(웃음)
스스로 스님의 인기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쉽게 이야기하고 친근하고, 그래서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흔히 스님이라고 하면 무섭고, 어렵고, 감히 만날 수 없고, 그런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만나서 이야기하면 친근한 동네 이웃의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동네 스님’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그 느낌이 좋은 것 같아요.
대중성을 가진 스님이라는 점에서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다 관계가 있잖아요. 스님들도 다 똑같아요. 책에도 썼지만, 수행을 하는 스님들도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심정적인 부딪힘은 당연히 겪어요. 발우공양 할 때, 반찬을 나눠 먹다가 마지막 순서에서 많이 못 먹으면 화가 나는 건 스님도 똑같아요.(웃음) 보통 스님이라고 하면 흔히 산 속에 있다고 생각하시는데, 물론 그런 큰 절에 들어가서 수행하는 스님도 있지만 대중 속에서 포교하는 스님도 있어요. 저 역시 특별한 게 아니라 대중 속에 있을 뿐이에요.
유명인들과도 친분이 많으시죠? 유명인이라서 친분이 있다기보다는, 저와 다른 삶을 사는 분들을 만나는 게 좋아서 만나다 보니 친분이 생겼어요. 제가 전혀 모르는 분야의 사람인데, 그들을 만나 그들의 인생을 배워보잖아요. 이해인 수녀님은 이모 수녀님이에요. 박찬호 선수와도 자주 소통해요. 같이 있으면 제가 배우는 것이 많고, 편해요. 카카오톡으로 대화도 하고 전화 통화도 자주 해요. 제가 모르는 세계에 사시는 분들을 만나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어요. 제가 어떻게 유홍준 교수님을 만나고, 김정운 교수님을 만나겠어요.(웃음) 그런 분들을 만나는 과정에 배움이 많아요. 특히 박찬호 선수는 저와 나이가 같은데, 이야기하는 내용은 거의 은퇴하신 분들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줘요. 참 좋아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피로함을 느끼거나 소비됨을 느낄 때, 스님은 어떻게 채움의 시간을 가지세요? 저도 똑같아요. 봉암사에 들어가서 수행을 하기도 하고, 플럼빌리지에도 가요. 거기에서 좋은 에너지와 기운, 지혜를 얻어서 나눠요. 저는 다행히 회복력이 빠른 편인 것 같아요. 행복의 절반 이상은 유전자적인 면이 있다고 하잖아요. 전 다행히 긍정적인 유전이 많은 것 같아요.
# 혼자 힘들어하지 마세요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
혜민 스님은 인사동에 마음치유학교(www.maumschool.org)를 운영하고 있다. 작년 3월부터 시작했는데, 그동안은 마음을 치유하고 싶은 사람들이 조용히 다녀가는 공간이었다. 최대한 소란스럽지 않게, 마음치유가 필요한 분들에게 진짜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 간판도 내걸지 않았다.
이 공간은 일부러 공개를 하지 않으신 건가요? 일부러 감춘 건 아니지만, 수업을 하고 있으면 지나가는 분들이 ‘혜민 스님 보고 싶다’고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올 때가 있어요. 공간이 크면 상관이 없는데, 보시다시피 굉장히 작잖아요. 벌컥벌컥 들어오셔서 40~50분씩 이야기를 하는데, 그러면 마음치유 수업을 진행하는 데 방해가 되죠.
이렇게 간판도 없는데, 어떻게 운영되어왔는지 궁금해요. 프로그램에 등록하시면 그분들에게 개별적으로 주소를 가르쳐드렸어요. 물론 아시는 분들은 아시지만, 무조건적인 노출은 최대한 피하자는 차원에서요. 이번에는 웹사이트를 만들게 됐는데, 많은 회의 끝에 사람들에게 공개를 하자고 해서 그렇게 마음을 먹었어요. 오시는 길 소개도 하고요.
이곳은 어떻게 만들게 되셨고, 어떤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곳인가요? 지금 우리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심리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물질적으로 힘들었지만, 지금 현대인의 가장 큰 문제는 우울증이라든가 내 삶의 의미를 못 느끼는 것, 관계에서의 스트레스 같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요. 종교를 초월해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이런 마음의 문제를 풀어줄 수 있는 프로그램.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로 어떤 분들이 찾아오시나요? 책을 읽고 메시지가 참 좋았는데, 이것을 실제로 체득하는 과정이 중요하잖아요.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고, 그걸 원하는 분들이 오세요. 삶 속에서 극하게 힘든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갑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아이가 잘못되고. 아니면 갑자기 이혼을 하게 될 수도 있고요. 쉽게 말해 인생이 나를 배신할 때.(웃음) 그럴 땐 누구나 혼자 힘들어요. 내가 힘든 걸 친한 친구에게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친구는 들어주기 힘들어하거나 좋은 말로 빨리 무마하려고 해요. 힘든 순간을 누군가와 같이 표현하고 싶고,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거든요. 그런 분들이 주로 대상입니다.
구체적인 마음치유 과정이 궁금해요.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혼자 힘들어하지 마세요”라는 거예요. 힘든 사람들이 함께 나누자는 것이죠. 예를 들어 가족과 사별을 했으면,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다 모아요. 정말 엄청난 치유가 일어나요.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을 가지면 훨씬 더 밝은 얼굴이 돼요. 그래서 프로그램을 할 때마다 뿌듯해요. 누구나가 경험하는 순간인데 잘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되었으니까요.
요즘 인생학교, 심리치료실 등 비슷한 기관들이 많아요. 마음치유학교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자살을 생각하신다면 병원에 가라고 권해요. 이곳은 내 마음을 잡을 수 없고 우울한 마음이 가시지 않을 때, 그럴 때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곳이에요.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진 않아요. 제가 모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요. 각 수업의 주제에 맞는 훌륭한 선생님들이 프로그램을 운영해주시는 곳입니다. 가벼운 감기처럼 마음에 생채기가 났을 때 편안하게 들를 수 있는 공간이에요.
마지막으로 스님이 대중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릴게요. 모든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아요. 완벽하지 않은 것들로 가득한 세상 속에 살고 있다고 해서 그들에 대한 사랑마저 포기할 수는 없어요.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조소와 미움으로만 이 생을 살기엔 우리 삶이 너무 소중하잖아요. 스스로를 조금 더 수용하고 사랑의 본성을 깨닫는 고요한 시간을 가져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