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에 취한 인류는 현재 응급실에 있다, 정신 개벽해야”
1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원불교 100주년 기념대회’가 열렸다. 한국의 근현대 100년사와 역사를 함께 하는 원불교는 “소태산 대종사의 가르침은 인류의 아픔을 보듬어 온 개벽의 소식이다. 원불교의 다음 100년도 정신개벽 실천운동”이라고 선언했다. [사진 조문규 기자]
국내 4대 종단으로 성장한 민족종교 원불교가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1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원불교 100주년 기념대회’에는 5만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기념대회의 표어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였다. 이는 1916년 원불교를 연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이기도 하다.원불교는 이날 미래 100년의 방향을 담은 ‘정신개벽 서울선언문’도 발표했다. 경산 종법사는 “인류는 현재 병원의 응급실에 있다. 우리는 물질에 취해 버렸다. 물질의 노예가 돼선 곤란하다. 정신이 물질을 이끌어야 한다. 그러려면 정신을 개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불교 100주년 기념대회가 1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 [사진 조문규 기자]
꼭 100년 전이었다. 1916년 4월 28일 새벽, 동이 터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소태산(少太山·본명 박중빈, 1891~1943) 대종사는 깨달음을 얻었다. 일곱 살 때부터 인간과 우주를 향해 강한 물음을 품었던 그는 20년 가까이 수도를 해온 터였다.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26세의 소태산은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는 대각일성(大覺一聲·깨달음의 노래)을 세상을 향해 내놓았다.
이후 ‘무시선 무처선(無時禪 無處禪·시간과 공간의 구애 없이 어디서나 선을 행함)’‘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곳곳이 부처이고 만사가 불공이다)’ 등을 주창하며 생활 속의 원불교, 대중 속의 원불교를 펼쳤다. 불과 100년의 세월 동안 민족종교인 원불교는 국내 4대 종단으로 훌쩍 성장했다. 교당 수는 600개가 넘고, 교도 수는 137만 명에 달한다. 해외 23개 국에 원불교 교당이 세워져 있다.
행사에 참석한 인사들. 왼쪽부터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이주화 한국이슬람중앙회 이맘,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 안철수·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 정세균 더민주 의원, 이수성 전 총리, 한승헌 전 감사원장, 박원순 서울시장.
1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원불교 100주년 기념대회’가 열렸다. 원불교의 원로 교무와 국내외 교역자들, 전국에서 올라온 원불교도 등 5만여 명이 월드컵경기장을 빼곡하게 채웠다. 전국에서 버스 800대가 올라왔다. 정치인들도 눈에 띄었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등이 참석했다. 4·13 총선 직후 여야 지도부가 한 자리에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민주 이재경 대변인은 “김 대표는 원불교 신도”라며 “행사장에서 원불교 관계자 등을 만나 원불교 100주년을 축하했다”고 말했다. 그외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 이수성 전 국무총리와 박원순 서울시장, 전북 익산이 지역구인 더민주 이춘석(익산갑) 의원, 국민의당 조배숙(익산을) 당선자 등도 행사장에 참석했다. 또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영주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대표회장, 김희중 천주교 대주교, 이정희 천도교 교령,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이주화 한국이슬람중앙회 이맘 등 도 참석했다.
원불교 최고지도자인 경산 장응철 종법사는 “마음은 천지(天地)를 품고/영겁(永劫)을 함께하며/선악(善惡)의 조물주이니/정신개벽(精神開闢) 선도하자’는 100주년 기념대회 법문을 내놓았다.
원불교가 처음 문을 연 1916년은 일제 식민지 시대였다. 일본 경찰의 견제와 감시는 혹독했다. 대종사가 머물던 전북 익산의 원불교 총부에는 아예 한국인 일본 순사가 파견돼 있었다. 대종사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함이었다. 그 일본 순사는 대종사를 감시하다가 감화를 받고 결국 원불교 교도가 됐다.
전임 종법사인 좌산 이광정 상사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원불교 100년’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좌산 상사는 “지난 100년 세월은 결코 수월한 시대가 아니었다. 온갖 소용돌이가 치는 격랑의 시대였다. 내우외환과 함께 수없는 어려움이 있었고 기쁨도 많았다”며 “그 세월들을 용케 넘기고 새로운 세기를 맞는 순간에 있다. 여러분이 대종사님 교법을 알아봤고, 교법에 입각해 수행생활을 해왔다. 그러한 혼으로 충만한 여러분이 있기에 세상은 희망이 있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란으로 출국하기 전 찍은 봉축영상을 통해 “100년 전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우리 민족에게 정신개벽과 참 문명세계의 건설을 가르치셨다. 생활 속에서 대중과 함께 하는 종교로서 근검절약과 허례허식 폐지, 금주와 단연으로 경제적 기초를 세웠고 국민의 바른 삶을 이끌어왔다”며 “최근 북한의 도발로 인한 안보위기 상황에서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위해 항상 기도해주는데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념대회에서는 소태산 대종사의 초기 제자 9명(9인 선진)에 대한 종사 법훈 서훈식도 열렸다. 그중에는 소태산보다 12세나 연상이면서 스승으로 깍듯이 모셨던 제자(이산 이순순)도 있고, 소태산의 외숙이면서 제자로서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칠산 유건)도 있었다.
이날 기념대회의 표어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다. 법상에 오른 경산 종법사는 “대종사님께서 그 말씀을 하셨을 때는 궁중에 처음 전화가 개통되던 시절이었다. 과학문명과 물질문명이 이렇게 발달할 줄 어떻게 아셨겠나. 그 혜안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는 말부터 시작했다. 이어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 지구촌 시대에 물질은 더 풍족해졌다. 그러나 그 그림자는 우리의 양심을 뒤덮었다. 인간성은 메말라버렸다. 인류는 현재 병원의 응급실에 있다. 우리는 물질에 취해버렸다. 물질의 노예가 되어선 곤란하다. 정신이 물질을 이끌어야 한다. 그러려면 정신을 개벽해야 한다. 그래야 정신이 물질을 부릴 수 있다”며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조화를 강조했다.
경산 종법사는 또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져버리는 ‘나팔꽃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여러분은 수행과 적공(積功)을 통해 영생을 사는 ‘무궁화꽃’을 피워야 한다. 대종사님께서 ‘어변성룡(魚變成龍·물고기가 변해 용이 됨)’을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인변성불(人變成佛·사람이 변해 부처가 됨)’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영어·프랑스어·일어 등 10개 국어로 번역한 『원불교 전서』에 대한 법어봉정식도 열렸다.
글=백성호·남궁욱 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중앙일보] 입력 2016.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