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파격적이다. 『아직도 교회에 다니십니까』(대한기독교서회). 5일 서울 서초동 대한민국학술원에서 길희성(72) 서강대 종교학과 명예교수를 만났다.
종교학자 길희성 교수의 비판
크리스천이면서도 그는 ‘도발적’ 물음을 던졌다. 길 교수는 “만약 내가 신학교 교수였다면 (이 책 때문에) 목이 날아갔을 것”이라고 운을 뗐다. ‘동정녀에 의한 예수 탄생’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성경 속 기적 신앙’ 등 한국 교회가 ‘절대 영역’으로 삼는 코드를 그는 차분한 음성으로 조목조목 짚어갔다.
- 무엇을 위한 비판인가.
“우리가 다시 ‘성경 속 예수’로 돌아가기 위함이다. 종교 생활의 핵심이 뭔가. 물음이다. 물음을 통해 우리는 진리를 찾아간다. 그런데 한국 개신교는 물음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 풍토 속에서 성경 속 기적을 통째로 삼키라고 말한다.”
기적의 한 예로 ‘동정녀(처녀)에 의한 예수 탄생’을 들었다. “남녀가 만나서 관계를 가져야 아이를 낳는 건 하나님의 섭리다. 동정녀 이야기는 신의 섭리에서 벗어나 있다. 우리가 아는 생물학적 상식에도 위배된다. 그럼 궁금하지 않나. 왜 그럴까. 그런데 교회에서 그런 걸 물으면 어찌 되나. ‘신앙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고 만다. 그냥 믿어야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길 교수는 그런 풍토가 결국 ‘묻지마 신앙’을 낳는다고 했다.
- 왜 의심을 갖고 물음을 던져야 하나.
“그래야 ‘정직한 신앙’이 되기 때문이다.”
- 물음이 없다면.
“‘비정직한 신앙’이 되기 쉽다. 한국 교회는 질문도 안 했는데 답을 먼저 줘버린다. 신학교에 들어가도 주어진 답만 외운다. 비판적 질문은 봉쇄돼 있다. 졸업하고 전도사 생활할 때는 혼자서 묻고 새겨서 자기화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러다가 목사가 된다. 그러니 신도들이 물어와도 답을 할 수가 없다. 자신이 그렇게 물어본 적이 없으니까. 결국 목사는 또다시 신도들의 물음을 봉쇄하게 된다.”
길 교수는 ‘독생자(獨生子·외아들·only son) 예수’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예수가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표현은 요한복음에 처음 등장한다. 정작 예수 자신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예수는 하늘 아버지를 자기 아버지라고 생각했을 따름이다. 그래서 ‘자기를 비우는 효자’로 살았다.”
- 예수는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외아들이 아닌가.
“그게 아니다. 예수는 자신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하늘 아버지는 모든 인류의 참아버지라고 했다. 성경에 기록돼 있지 않나. 예수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아버지의 자녀’라고 말했다.”
길 교수는 동정녀 이야기를 다시 들여다보라고 했다. “생물학적으로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고 말하는 건 정말 얕은 신앙이다. 그게 ‘묻지마 신앙’으로 이어진다. 정녕 그게 우리의 수준인가. 동정녀 일화에는 더 깊은 뜻과 울림이 담겨 있다. 그건 바로 예수의 진정한 아버지가 하늘 아버지라는 메시지다. 동정녀 이야기는 그런 영적 진리에 대한 메타포다. 거기에 담긴 의미를 깨우쳐내는 게 우리의 몫이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대표적 신학자 어거스틴(354~430, 아우구스티누스)도 성경을 알레고리(A를 은유나 비유 등을 통해 B로 표현하기)로 해석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고 했다.
길 교수는 ‘무조건 신앙’ ‘무조건 구원’을 영어로 ‘치프 그레이스(Cheap grace·값싼 은총)’라 부른다고 했다. “거기에는 십자가의 고난이 없다.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는 과정이 빠져 있다. 예수는 ‘각자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라’고 했다.” 그는 무조건 신앙이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교’를 만들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
글=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5.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