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요원 표정 어두운 이유 “우리가 아는 게 없다는 것”
일주일이 멀다고 폭탄이 터지고 크고 작은 총격전이 벌어졌는데 바그다드 유엔본부가 폭격을 당한 날 이라크 전역에서 유엔과 국제 비정부기구(NGO)를 겨냥한 총공격이 있을 거라는 경고에 우리 단체도 철수해야 했다. 몇 달 동안 힘들지만 신나게 같이 일했던 현지 직원들, 정이 듬뿍 든 어린 학생들과 막 정들기 시작한 지역 주민들에게 제대로 작별인사도 못하고 떠나면서 진심으로 그들에게 내 평화를 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 바람과는 달리 모술은 다시 전쟁에 휩쓸리고 있다. 지난해 6월 800여 명의 무장 조직 이슬람국가(IS) 전투부대가 3만여 명의 이라크 정부군을 몰아내고 이라크 전역에 물과 전기를 공급하는 댐이 있는 이 전략적 요충을 장악한 것이다. 한동안 TV에서 모술 이야기가 나오면 마음 졸이며 화면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혹시 IS 대원 중에 혹은 IS와 싸우는 사람 중에, 아니 행인 중에서라도 정든 얼굴이 나올까 해서였다.
앗 살람 알레이쿰!(당신에게 평화를), 알레이쿰 앗 살람!(당신에게도 평화를.) 이곳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 이런 평화의 인사를 주고받지만 정작 평화는 너무나 멀기만 하다. 모술만이 아니라 이 지역 전체가 그렇다. 5년째 내전 중인 시리아, 그로 인한 500여만 명의 난민, 세 나라에 걸쳐 독립투쟁 중인 쿠르드족, 그리고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IS!
지난여름 터키 남동부 시리아 난민촌에 가기 전까지는 미처 몰랐다. IS가 그사이 무서운 속도로 진화, 발전해 얼마나 강력한 세력이 되어버렸는지. 난민촌 사람들, 국제 구호요원들 그리고 IS 감옥에서 8개월간 잡혀 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온 시리아 직원에게 직접 들은 IS의 현황은 상상을 초월했다.
한마디로 IS는 더 이상 단순한 테러집단이 아니다. 2006년 빈라덴이 이끌던 알카에다의 이라크 지부로 작게 시작했으나 불과 10년 만에 이라크와 시리아 북부를 거점으로 파죽지세로 세력을 확장하며 일순간 ‘큰집’이었던 알카에다를 능가하게 되었다. 급기야는 지난해 6월 조직의 일인자 알바그다디가 IS를 칼리프 국가로 공표하고 스스로를 칼리프로 칭하며 신정일치를 천명했다. 올해 44세 이라크 출신의 이슬람학 박사가 서양으로 보면 교황과 황제를 겸하는 명실상부 최고의 권력자가 된 것이다.
IS의 규모도 생각보다 훨씬 크다. 장악 지역의 면적은 남한의 3분의 1, 주민 수는 800만여 명, 군대는 적게 잡아 30만 명이다. 그중 100여 개국에서 온 외국인 전사가 2만 명 이상인데 기막힌 홍보력으로 신입대원 수가 급증하고 있다. 또한 미국 포브스 발표에 따르면 IS의 수입은 연간 2조2000억원,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테러 조직이다. 이들은 석유 밀매, 인질 몸값, 인두세, 장기 매매 등으로 떼돈을 벌고 있다.
더욱 놀라운 건 IS가 여느 정부처럼 입법부·사법부·행정부까지 갖췄다는 점이다. 외국 NGO에 협조한 혐의로 IS 감옥에 갇혔던 시리아 직원도 죽기 직전까지 모진 고문을 당했지만 형식적으로나마 재판을 받고 판사에게 판결을 받았는데 참수를 당하는 사람도 다 이런 절차를 거친다고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핵심 지도부만 제거하면 조직이 와해됐겠지만 몇 달 전 2인자가 피살되었는데도 전혀 동요가 없을 만큼 단단한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단다. IS가 오래갈 것 같은 불길한 징조다.
내가 만난 시리아 난민들은 잔혹한 IS가 버티고 있는 고향에 어떻게 돌아가겠느냐고 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모두 유럽으로 갈 수도 없는 노릇. 터키를 떠나기 전날 모인 베테랑 구호요원들의 표정도 어두웠다.
“IS가 강해질수록 희망을 잃어가는 난민들 얼굴 보기가 괴로워요.” “IS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여야 너무 많이 죽였구나, 할까요?” “사람만이 아니라 세계문화유산에도 잔인하기 그지없죠.” “두고 보세요. 후세는 9·11 테러가 아니라 IS의 칼리프 국가 공표를 훨씬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할 테니까요.” “그래요. 적어도 앞으로 10년간은 전 세계가 매일 IS에 대해 들어야 할 거예요.” “문제는 우리가 IS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거예요. 난 그게 두려워요.”
나도 그렇다. 제대로 모르면서 다 안다고 생각하는 그게, 제일 두렵다.
[중앙일보] 입력 2015.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