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건축하는 사람들의 집, 건축가 김재관
소나무, 각 파이프, 그리고 플라스틱 골판지….
건축가 김재관씨와 김지민씨 부부가 올해 5월 입주한 12평 주택집은 디자인만큼 소재도 단순하다. 풀내음과 고향집 한옥 생활이 그리웠던 그는 집을 온통 나무로 도배했다.
서울성곽이 보이는 종로구 명륜동 언덕배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소나무 원목이 천장과 바닥에 가지런히 깔려있다. 집은 위에서 보면 길다랗다. 또 'ㅣ'자형이 아니라 '/'과 비슷한 형태로 오른쪽으로 살짝 비틀어져 있다. 집이 비틀어진 각도를 따라 원목을 세심하게 짜맞췄다.

대부분 가구는 소나무 천연원목으로 만들었다. 방부제를 쓰지 않은 원목이다. 건축가 김재관씨는 주택 수리와 건축을 오랫동안 해오며 몸에 해로운 건축 자재를 많이 써봤다. 내 집만은 방부제 없는 천연 자재를 쓰고 싶었다. 김씨가 운영하는 건축회사 무회건축의 솜씨 좋은 목수에게 일을 맡겼다.

나무는 비를 맞고 햇빛을 받으며 수축했다가 늘어나는 등, 세월과 함께 점점 형태가 바뀐다. 김씨는 “요즘 사람들은 나무 자재가 세월이 지나면서 변하면 ‘하자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래서 변형 방지를 위해 방부제 처리를 많이 하는데 몸엔 해롭다”고 했다.

거실에는 소파가 없는 대신 벌렁 드러누워 바람을 쐴 수 있는 원목 평상을 만들었다. 흰 벽에는 원목으로 창틀을 넣어 깔끔한 느낌을 줬다. 기다란 책상 겸 식탁은 거실 크기에 맞춰 짜넣었다. 필요한 곳에는 철제 각파이프를 썼다.
"우리 집 뒤에 다른 집, 다른 빌딩이 있는게 아니라 산이 있고 나무가
있는 곳에 살고 싶었다"
거실과 주방의 경계에 벽을 따로 만들지 않고 나무로 창을 냈다. 창은 유리가 아니라 플라스틱 골판지다. 플라스틱 골판지는 이삿짐 박스 같은 곳에 쓰이는 반투명한 플라스틱이다. 조명을 켜면 실제로 전구가 어디있는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디선가 빛이 흘러나와 플라스틱 골판지 너머로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집을 설계할 때부터 치열하게 고민했던 흔적이 보인다. 방은 침실과 옷방 2개. 방문과 화장실 문, 옷장과 옷장의 문도 나무와 플라스틱 골판지를 이용해 만들었다.
평소에 주택 공사를 하면서 쓰던 재료들을 집에도 이용했다. 집 옆으로는 비탈진 언덕이 있었는데 여기에 공사장에서 흔히 쓰이는 안전발판을 깔았다. 공사장에선 ‘아시바’라고 불리는 철로 된 발판이다. 조립하기도 편하고 잘 미끄러지지 않는다. 이들 부부는 3억5000만원에 3층짜리 다가구 주택을 매입했다. 각 층 면적은 41.83㎡(12.6평)이다. 1층과 2층 세입 가구는 그대로 두고 3 층만 고쳤다.
이렇게 노후 주택을 매입해 리모델링하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완전히 건물을 허물고 새 집을 짓는다. 김씨 부부는 달랐다. 남편 김씨는 “식구가 2명 밖에 없어서 큰 집을 지을 이유가 없고 전부 다 수리할 비용도 없었다”며 “아랫집(1층과 2층)에 세입자가 계속 살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 부부의 집은 ‘단독주택’은 아니다. 다만 출입하는 문은 따로 있어 독립성은 확보했다.
1개 층만 고치는 공사비는 평당 500만원이었다. 집 내부만 12평정도이니 총 6000만원이 들어간 것이다. 김씨가 직접 디자인·설계를 해 설계비는 아낄 수 있었다. 자재도 평소 운영하던 회사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설계는 3개월, 공사는 4개월이 걸렸다.

기존 벽돌 구조에도 거의 손대지 않았다. 김씨는 “원래 있던 집의 구조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대신 기존에는 버려져있던 산비탈을 마당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집을 뺀 마당 규모는 24평 정도. 토마토와 상추도 심었다. 살구나무 밑에 작은 연못도 만들었다. 집 뒤의 산으로 바로 올라갈 수 있게 사다리도 만들었다. 등산길로 올라가면 삼청공원까지 이어진다. 김씨는 “우리 집 뒤에 다른 집, 다른 빌딩이 있는게 아니라 산이 있고 나무가 있는 곳에 살고 싶었다”며 “도심 안에 숨겨진 시골에 온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