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상거래 기업 쿠팡이 3일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국내 벤처 사상 최대 규모인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지만 김범석(37) 창업자 겸 대표의 경영권과 최대 주주 지위는 그대로 유지된다. 투자 방식은 신주 발행을 통한 증자(增資)에 소프트뱅크가 참여하는 형태다. 이번 투자 결정 과정에서 소프트뱅크는 쿠팡의 기업 가치를 5조5000억원으로 평가했다. 따라서 1조1000억원 투자 유치는 소프트뱅크에 지분 20%가량을 주면서 이뤄진 셈이다. 여전히 쿠팡 대주주인 김범석 대표는 창업 6년 만에 '5조5000억원의 사나이'로 변신했다.
김 대표는 7세 때 대기업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 정치학과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부모님은 변호사가 되길 원하셨지만 학창 시절 경험한 창업이 인생을 바꿨다"고 했다.
- 쿠팡은 3일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 투자를 유치하면서 기업가치를 5조5000억원으로 평가받았다. 창업 6년 만에 5조5000억원 가치의 기업인으로 올라선 김범석 대표는 “이번 투자가 쿠팡을 글로벌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키워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김 대표는 미국에서 두 번의 창업을 경험했다. 하버드대 재학 중 미국 주요 대학의 소식을 담은 무료 잡지 '커런트(current)'를 창간해 3년 만에 뉴스위크(Newsweek)지에 매각했다. 졸업 후 미국 보스톤컨설팅그룹의 컨설턴트로 일하다 2004년 명문대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잡지 '빈티지미디어'를 창간해 4년간 운영했다. 김 대표는 "창업을 통해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데 엄청난 희열감을 느꼈다"고 했다.
2010년 한국으로 돌아와 쿠팡을 창업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기업가가 되어 세상과 사람들의 삶의 질을 바꾸고 싶었을 뿐 단시간에 빨리 돈을 버는 것은 전혀 목표가 아니었다"고 했다. 훗날 세상을 떠날 때 사람들이 '쿠팡 덕분에 우리 삶이 이렇게 바뀌었어' 하고 추모하는 즐거운 상상을 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공동구매를 하면 할인 혜택을 주는 소셜커머스 기업으로 시작했다. 창업 22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섰고, 첫해 60억원이었던 거래액은 지난해 2조원으로 300배 넘게 급증했다.
그는 "지난 6년간 정신 나간 도전을 많이 했다"고 말한다. 전자상거래 기업 쿠팡도 '유통회사'가 아닌 'IT(정보기술)기업'이라고 말한다. 소비자들은 PC나 스마트폰, 태블릿PC로 편리하고 싸게 물품을 구매하고, 최대한 빨리 친절하게 집으로 배송되는 것만을 경험하지만 이것이 실현되려면 대규모의 IT 인프라와 첨단 기술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작년 5월엔 미국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 회사 캄씨를 인수했고 현재 미국 실리콘밸리와 시애틀, 중국 상하이에 연구개발(R&D) 센터를 두고 있다. 지난해 거래액의 70% 이상이 모바일에서 발생했고, 현재 경기도 일산에서 주문 2시간 만에 물류창고에서 고객 집 앞까지 물건을 특급 배송하는 서비스를 실험 중인 것도 이 같은 기술 투자 덕분이다.
이번 소프트뱅크의 투자 결정에는 손정의 회장과 김범석 대표의 인간적인 관계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IT를 활용해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삶의 질을 바꾼다는 비전을 밝혔고, 이에 손 회장이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김 대표의 대학 시절 롤모델도 '손정의'였다. 그는 "재일교포로 좋지 않은 환경에서 성장했고 학교 성적도 썩 좋지 않았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고 그것이 모든 성공의 시작이었다"면서 "손정의 회장 책의 글귀를 한동안 벽에 붙이고 이메일에도 사인처럼 넣고 다녔다"고 했다.
쿠팡에 1조원의 투자를 단행한 소프트뱅크는 2000년 중국의 전자상거래 1위 알리바바에 2000만달러, 작년 10월 인도의 전자상거래 1위 업체 스냅딜에 6억2700만달러, 지난 3월에는 인도네시아의 토코피디아에 1억달러를 투자했다. 한국·중국·인도·인도네시아의 전자상거래 1위 업체에 모두 투자한 셈이다.
이번 투자 유치에도 쿠팡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매출은 매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지속되는 대규모 투자 때문에 아직 적자(赤字)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쿠팡은 1215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번 투자가 쿠팡에 대한 직접 투자가 아니라 미국 델라웨어주(州)에 있는 포워드벤처스LLC라는 모(母)회사에 대한 지분 투자라는 점도 지적한다. 자금이 미국 법인으로 들어갔다가 필요할 때마다 한국으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외형 성장으로 거액의 투자금은 받고 있지만 자금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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