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족집게 골프 도사' 데이비드 레드베터, 한국 찾아 주니어 레슨]

해암도 2015. 5. 28. 06:16
  • "대회 앞둔 벤에게 말했죠, 퍼팅 그립 힘빼라고"

     

-반나절 강습에 1만달러
"안병훈, 우승할 재능 갖춰… 자신감 심어주고 싶었다"

-정확도 높은 'A스윙' 개발
손·몸·클럽 일체화한 백스윙… 리디아 고도 배울만큼 효과

-그가 말하는 한국 女골프

"재능·멘털 다 뛰어나지만 훈련하느라 20代에 탈진"
"정말 완벽한 타이밍이죠. 저에게 배우는 벤 안(안병훈의 미국식 이름)이 큰 대회에서 우승하자마자 제가 한국에 왔으니까요. 메이저 챔피언이 될 재능을 고루 갖추고 있어요."

세계적인 골프 교습가인 데이비드 레드베터(63·영국)는 전날 밤 한국에 도착했는데도 활력이 넘쳤다. 그는 27일 경기도 이천의 휘닉스 스프링스골프장의 '데이비드 레드베터 골프 아카데미(DLGA)' 개관식에 참가해 한국의 주니어 골퍼들과 아카데미 원생들을 대상으로 레슨을 했다. 그는 미국에서 반나절 강습료로 1만달러 이상을 받는 고액 골프 족집게 선생이다.

 어니 엘스, 닉 팔도, 박세리의 스승으로 유명한 그는 요즘도 여자 골프 세계 랭킹 1위 리디아 고와 미셸 위 등을 지도하며 명교습가의 위치를 이어가고 있다. 17세 때 프로골퍼로 데뷔, 유럽 투어와 남아공 투어에 참가했던 그는 31세인 1983년 교습가의 길로 나섰다. 1984년부터 1998년까지 그가 가르친 닉 팔도가 메이저대회를 6차례 우승하면서 일약 스타 교습가가 됐다.

골프 교습가인 데이비드 레드베터(오른쪽)가 27일 경기도 이천의 휘닉스스프링스 골프장의‘데이비드 레드베터 골프 아카데미’에서 주니어 골퍼에게 레슨을 하고 있다.
골프 교습가인 데이비드 레드베터(오른쪽)가 27일 경기도 이천의 휘닉스스프링스 골프장의‘데이비드 레드베터 골프 아카데미’에서 주니어 골퍼에게 레슨을 하고 있다. /민학수 기자
최근 제자인 안병훈(24)이 유럽 투어 메이저 대회인 BMW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것에 고무된 듯 목소리에서 신바람이 느껴졌다. "대회를 앞두고 레드베터로부터 퍼팅 그립을 좀 더 부드럽게 쥐라는 조언을 들었는데 큰 도움이 됐다"는 안병훈의 인터뷰 내용을 전하자 레드베터는 활짝 웃으며 안병훈에게 했던 원 포인트 레슨 내용을 전해주었다.

레드베터는 "대회 당일 아침까지 사흘 동안 벤(안병훈)을 만났는데 무엇보다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다"며 "유럽 1부 투어에 올라가자마자 톱 10에 세 차례나 올랐으니 이번 대회야말로 우승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라고 해주었다"고 했다. 레드베터는 "벤이 퍼팅이나 쇼트 게임 때 그립을 꼭 쥐어 리듬감을 잃는 안 좋은 습관이 있어 그 점을 대회 전 이틀 동안 반복해서 연습했다"고 했다. 그는 "퍼팅이나 쇼트 게임 등 공을 보낼 거리가 짧을수록 클럽으로 공을 더 정확하게 맞혀야 한다"면서 "긴장해서 그립을 꼭 쥐면 맞히는 순간 힘이 들어가면서 공이 달아나게 된다"고 했다.

레드베터는 14세 때 안병훈이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있는 데이비드 레드베터 골프 아카데미에 왔을 때 처음 봤다고 한다. 안병훈이 2년 전 직접 배우고 싶다고 찾아오면서 본격적인 사제 관계를 맺었다. 그는 당시 생체역학 전문가들과 많은 토론을 거쳐 엘리트 골퍼부터 주말 골퍼까지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A 스윙(alternative swing·대안 스윙)을 개발하고 있었다.

클럽을 가볍게 치켜올리듯 백스윙해 손과 클럽, 몸통을 일체화시키며 완만하게 다운 스윙을 하는 것이다. 쉽게 배울 수 있고 반복하기 쉽기 때문에 스윙의 정확성과 일관성이 높아진다고 레드베터는 설명했다. 안병훈은 A 스윙을 하면서 드라이버샷의 방향성이 몰라보게 좋아졌다고 한다. 그는 "리디아 고도 A 스윙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레드베터에게 배운 주요 선수들.
그는 안병훈의 장점으로 꼭 좋은 골퍼가 되겠다는 굳은 의지와 장타 능력, 탁구 스타 출신인 부모(안재형과 자오즈민)로부터 물려받은 섬세한 손 감각 등을 꼽았다. 레드베터는 "유럽 투어는 매주 다른 언어와 환경을 만나는 힘든 곳인데 벤이 성공적으로 적응하고 있다"며 "또 한 명의 메이저 챔피언이 한국에서 나올 것"이라고 안병훈의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골프 여제(女帝) 자리를 놓고 1위 리디아 고(18)와 2위 박인비(27)가 벌이는 경쟁에 대해서는 "골프를 가르치는 사람 입장에서도 정말 흥미진진한 대결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리디아 고는 멘털부터 스윙까지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며 "앞으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을 능가하는 선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뉴질랜드에서 자란 리디아 고는 열심히 노력하는 한국인의 장점과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고 놀 때 놀 줄 아는 서양적인 사고방식이 환상적인 조합을 이루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박인비에 대해서는 "스윙이 좀 특이해 보이지만 내용을 따져 보면 언제나 똑같은 리듬과 템포로 치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스윙"이라며 "여기에 세계 최고의 퍼팅 실력이 받쳐주기 때문에 좀처럼 이기기 어려운 상대"라고 했다. 그는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승승장구하는 한국 여자 골프에 대해 두 가지 이야기를 했다.

그는 "운동에 재능이 있는 선수들이 어린 시절부터 집중적으로 훈련받고 정신력도 강하다는 게 한국 여자 골프의 특별한 점"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골프 전문가가 아닌 부모들의 요구로 지나친 훈련을 받으면서 한국 선수 대부분이 20대 중반이면 심신이 탈진(burned out)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이날 한국 주니어 골퍼들에게 "열심히 훈련하는 만큼 열심히 쉬라(practice hard, rest hard)"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이천=민학수 기자 |   입력 : 2015.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