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이끄는 지식인'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L.A 자택에 가다]
-한글 번역 신작 '어제까지의 세계'
현대사회는 어딜 가나 비슷한 모양, 하지만 전통사회는 수천 개의 실험
뉴기니 원주민에 그 '다양성' 있더라
-"현대인은 부적응자"
몸은 과거인데 시스템은 너무 빨라… 다이어트? 인간은 본래 배부름에 취약
컴퓨터도 타자기도 없었다. 퓰리처상을 받은 이 작가는 오로지 펜으로 글을 쓴다. 그의 책 '총, 균, 쇠'는 최근 5년간 서울대도서관 대출 1위를 기록했다. 번역본으로 나온 지 15년 된 두꺼운 인문서(751쪽)가 지난 6개월간 3만부나 팔렸으니 출판 역사에 작은 기록이다.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76)의 집은 미국 UCLA 캠퍼스에서 북쪽으로 2.4㎞ 떨어져 있다. "세상살이 고달프다"고 투덜대던 택시 운전사는 로스앤젤레스 웨스트우드 지역, 저택이 늘어선 길로 접어들자 "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 행복하다"고 뇌까렸다. 현직 UCLA 지리학과 교수인 다이아몬드가 행복한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그의 탐구욕은 한 학문에 머물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는 것이다.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 재레드 다이아몬드는“아내로부터‘재레드, 사례는 4개만 넣어도 충분한데 왜 33개나 넣었느냐’는 지청구를 듣지만 내가 발견한 사례가 33개인데 어떡하느냐”면서“내 책은 그래서 두껍다”고 했다. /블룸버그 뉴스
―신작 '어제까지의 세계(The World Until Yesterday)'에서 뉴기니를 다뤘다. '총, 균, 쇠'에서 이미 다루지 않았나.
"1964년 뉴기니 땅을 처음 밟았을 땐 새 연구가 목적이었다. 거긴 600종의 새가 산다. 뉴기니는 내게 처음부터 이국적이고 궁금하고 신비했다. 한편으론 겁도 났지. 뉴기니에는 1000개의 부족, 1000가지 언어가 있다. 그들은 상당 부분 당신과 날 닮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몹시 다르다. 전통 사회와 현대사회 사이의 닮음과 차이가 바로 이 책이다."
―책은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일 텐데, 당신 머릿속에 맴돌던 질문은?
"글쎄, 뉴기니라는 전통 사회와 거기 사는 사람들이 매력적이라서 쓴 책이지. 그곳에서 내가 느끼고 배운 것을 독자와 나누고 싶었다. 뉴기니 사람들은 한국인이나 미국인과 다르게 행동한다. 남편이 죽자마자 그 아내를 목 졸라 죽이는 풍습은 끔찍하고, 노인이 대접받는 것은 부럽고."
"만약 어떤 책이 상반된 반응을 얻지 못한다면 아무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뜻이외다. 천편일률적인 감상만 나오는 책이야말로 비극이지. 모든 독자가 내 생각에 동의한다면 그건 쓰지 말았어야 할 책인 거다."
―'전통 사회에는 몇 만년 동안 우리 조상이 살아온 방식이 간직돼 있다'고 썼다.
"현대 사회는 어딜 가나 정부(政府)가 있고 닮은꼴이다. 전통 사회는 마치 수천 개의 다른 실험을 한 모습인 거다. 심리학 연구는 대부분 서양이나 서구화된 나라의 심리학 전공생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3%를 전체로 일반화하는 오류다. 그런 현대사회를 '위어드(WEIRD·원래 뜻은 '기괴하다')'라 부른다."
―위어드?
"서양의(Western) 교양 있고(Educated) 산업화됐고(Industrialized) 부유하며(Rich) 민주적(Democratic) 사회라는 뜻이다. 현대 사회는 그렇게 비슷비슷하지만 전통 사회는 스펙트럼이 훨씬 다양하다. 뉴기니 등의 전통 사회는 아이를 우리와 다르게 양육하고 노인에 대한 대우가 사뭇 다르며 위험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 원래 인간의 문화는 지금의 '기괴한 획일화'와는 정반대로 다양성이 매우 풍부했다."
―몸은 과거에 길들여져 있는데 사회 시스템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현대인은 '부적응자'라고 썼다.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다이어트를 봐라. 우리 몸은 가끔 포식하고 긴 굶주림을 견딜 수 있게 적응해왔다. 날마다 세 끼씩 포식하는 바람에 우리는 혈관 질환, 암, 당뇨 같은 비전염성 질병에 시달리게 됐다. 나도 당신도 그것으로 사망할 확률이 95%다. 그런데 뉴기니 사람들은 그런 질병으로 죽지 않는다. 우리 몸은 현대에도 여전히 과거의 라이프 스타일에 적응돼 있는 것이다."
―한국 얘기를 해보자. '압축 현대화'를 겪은 한국은 세대 격차가 심각하다.
"60·70대는 전쟁을 겪었지만 젊은 층은 그 공포를 모른다. 전통 사회에 가까운 세대와 현대사회에서 자란 세대가 상대를 인내하며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책을 점점 덜 읽고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날까?
"(수메르 문자의 발명 이후) 5400년 동안 문명이 쌓아온 지혜를 내다버리는 것과 같다. 역사의 지혜, 문학과 예술을 걷어차는 일이다. 난 컴퓨터, 이메일, 스마트폰, 타자기도 쓰지 않는다. (펜을 들며) 이걸로 책을 쓴다. 게다가 내가 컴퓨터를 만지면 꼭 망가지더라. 하하."
―12개 언어를 하는 사람이 무슨. 누구나 컴퓨터를 배우지 않나.
"다들 그렇게 말하지만 안 배울 거다. 좌절하고 싶지 않다."
―다음 책의 주제는?
"변화(change). 한국 사회도 미국 사회도 변하고 있다. 덩달아 사람도 달라진다. 개인과 국가에서 벌어지는 변화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언제 읽을 수 있나?
"2020년. 내 책은 최소 8년 걸린다."
그는 1937년생이다. 70대 중반에 8년 잡고 책을 준비하고 있다. 그것도 펜으로.
2013.05.11 조선로스앤젤레스=박돈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