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고은 시인과 소주

해암도 2014. 12. 8. 06:49










'송호근 묻고 고은 답하다'의 직격 인터뷰.

인터뷰 예정시간보다 이르게 먼저 도착한 고은 시인, 갈색 정장에 중절모로 멋을 낸 차림에 소주 한 병을 들고 들어선다.

시인이 환한 얼굴로 악수를 청하는 데, 내 눈은 시인의 얼굴보다 손에 든 소주로 향한다.
소주를 든 인터뷰이, 이 십 여년이 넘는 기자 생활 동안, 처음 본 장면이라 적잖이 놀랐다.

“선생님! 웬 소주입니까?”
“송호근 교수에게 한 잔 따라주려고 가져왔지.”

“아! 네. 요즘도 약주 많이 하시나 보죠.”
“먹을 만큼은 먹지.”

“평생 그렇게 드시고도 여태 여전하신 비결은 뭡니까?”
“난, 이놈을 죽도록 사랑해.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진정으로 사랑해. 내가 이렇게까지 자기를 사랑해주는데, 이놈이 설마 나를 배신하겠어?”

고은 시인의 시, ‘술’이 머리를 스친다.

‘나 이 세상에 깨닫기 위해 오지 않았다.
취하기 위해 왔다.
취한 것만이 살아있다. 오, 내 이웃인 취한 은하수여.’

난생 처음 ‘음주 인터뷰’ 사진을 찍게 되는 행운(?)을 기대했다.

평상시에도 춤사위를 연상시키는 몸짓과 열정적인 표정으로 유명하니,
한 잔 곁들이면 더 할 나위 없는 표정과 몸짓이 나오리라는 기대였다.

불행히도(?) 음주인터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간간이 목을 축이는 건 소주대신 커피다.

하지만, 옆에 두고 마시지 않은 소주의 아쉬움 이내 잊었다.
격정적인 표정과 몸짓, 음주 인터뷰와 다름없다.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시인은 소주를 찾았다.
딱 한 잔 씩, 나누어 마신다.
물론 한 잔 씩 이지만 서로의 양은 다르다.

누가 적고, 누가 많은 지는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알 터.
그리고 남은 소주.

당연히 사랑하는 애인처럼 시인이 챙겨서 보듬고 간다.

역시, 디오니소스의 친구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중앙일보] 입력 2014.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