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국인들은 왜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열광하는가?

해암도 2014. 8. 17. 07:16

80년대, 음악과 모든 것이 좋았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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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돌풍이 미국에서 거세다. 총 제작비 1억 7천만 불을 들여 만든 이 영화는 개봉 15일 만에 북미지역에서 2억불의 흥행을 거둬들였다. 이미 2014년 북미 개봉 영화 중 4위의 흥행 성적이며, 1위인 '캡틴 아메리카 2'의 2억 6천만불 흥행 성적을 넘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그 뿐인가. 극 중 주인공이 가지고 다니는 80년대 음악 믹스 테이프를 그대로 가져 온 OST 는 빌보드 1위를 차지했다. OST 가 빌보드 1위를 차지한 것은 2014년 들어서는 '겨울 왕국'에 이어 두 번째이며, 기존에 있는 곡들을 단순이 모아 놓았을 뿐인 OST 가 1위를 차지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어째서 미국인들은 이렇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열광하는가? 그리고 왜 대한민국에서는 맥을 못 추고 있는가? 그것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다음과 같은 조건들.
 
미국의 80년대를 직접 몸으로 겪으며 살아봤는가
스타워즈 시리즈가 처음 나올 때부터 에피소드 1, 2, 3 말고 4, 5, 6! - 극장에서 보며 열광했던 추억이 있는가
툭 던지는 말장난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영어 리스닝 실력은 되는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 극장에 가지고 들어간 버드와이저 한 잔을 맛있게 마실 수 있는가?
 
이 모든 조건은 or 가 아니라 and . 한 두 개만 충족시켜서는 안 되며, 저 모든 것을 충족시켜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라는 영화를 100% 즐길 수 있다. 그래, 안다. 저 조건은 한국에서 자라고 태어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도저히 만족시킬 수 없다. 애초에 첫 번째 조건에서부터 아웃이다.
 
게다가 버드와이저라니! 대한민국 맥주가 맛없는 거야 주지의 사실이지만, 그 대안을 버드와이저로 하고 싶진 않다, 다른 맛있는 맥주도 많은 마당에! 하지만 미국인들은 다르다. 시장 점유율도 점점 더 떨어져 가고, 밀러의 인기가 상승하고 다른 유럽의 맥주들도 공세를 펼치고 있지만, 역시 미국의 맥주는 버드와이저다. 젊은 시절부터 마셔왔고 미디어를 통해 노출도 많이 된, 공유하는 추억도 많은 맥주다. 사소한 흠 한 두 가지는 덮어두고 마셔줄만한 것이다,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하지만 미국인이 아닌 우리는 그들의 버드와이저에 대한 기호와 애정을 이해할 수 없다.
 
 ‘하, 그 때가 좋았는데.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위에서 말한대로, 버드와이저는 점점 그 판매량이 떨어지고 있다. 버드와이저의 매출은 1988년을 기점으로 하락 일변도다. 바꿔 말하면 버드와이저의 1980년대는 가히 전성기였다는 이야기다. 버드와이저는 그 시절을 두고 이렇게 회상하며 한숨을 쉴 것만 같지 않은가? ‘, 그 때가 좋았는데.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단순히 버드와이저만 이렇게 생각할까?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경제 붕괴, 이라크 전의 수렁, 아직 미국과 어깨를 맞댈 정도는 아니지만 허리춤 까지는 도달해 심심할 때마다 툭툭 딴지를 거는 중국, 그리고 그 무엇보다 아직까지도 미국 사회에 거대한 상흔을 남겼으며 아직까지도 미국 사회에 거대한 PTSD 로 남아있는 9.11 사태.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거기에 포스트 모더니티라는 게 깝둑튀를 하더니 생각하는 방법 자체를 피곤하게바꿔 버렸다. 아니 뭐 그것까지야 괜찮은데 영화와 음악 등 별 생각 없이 기분전환을 위해 즐기던 엔터테인먼트 산업마저 나에게 피로감을 안겨주기 시작했다!
 
'커트 코베인이 나타나면서 모든 걸 망쳐버렸지.’
 
2000년대에 일어난 각종 악재들, 그리고 그로 인한 미국 대중들의 1980년대에 대한 그리움은 대런 아로노브스키 감독의 영화 더 레슬러에서 주인공 레슬러 랜디 로빈슨 역을 맡은 미키 루크와 그가 사랑하는 스트리퍼 역을 맡은 마리사 토메이가 술집에서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건즈 앤 로지즈가 80년대를 지배했던 시절이 좋았어. 그런데 커트 코베인이 나타나면서 모든 걸 망쳐버렸지.’
 
좀 즐기자는 게 뭐가 그렇게 나쁘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커트 코베인을 빼 놓고 1990년대의 대중음악을 말할 수는 없다. 구조주의와 완전한 이상향에 대한 추구를 거부하는 포스트 모더니티가 음악에서 가장 잘 구현된 예가 바로 너바나와 명반 네버 마인드. 커트 코베인은 절대로 우리에게 괜찮아 잘 될 거야.’ 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감미로운 목소리나 화려한 연주를 들려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정교하지도 않고 거친 드럼과 엉성한 기타, 늘어지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너도 루저, 나도 루저, 우리에게 행복한 미래는 없어를 외친다.
커트 코베인의 밴드 너바나의 대표곡 <smells like teen spirit> 
 
그런데 이 희한한 루저에게 대중이 반해버리더니, 아니 정확히는 이 희한한 루저가 포스트 모더니티를 향한 대중의 열광이 만들어낸 파도 정점을 타는 수혜를 누린 후 대중들은 모든 음악, 영화, 미술에 그러한 성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포스트 모더니티의 영향력은 아직도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다. 마치 도수가 낮은 맥주만을 마시던 사람들이 위스키의 높은 도수와 진한 취기에 정신을 못 차리고 맥주 캔을 냉동창고 한 구석에 처박아 둔 채 위스키만 마시는 것처럼.
 
나는 마블 코믹스의 철저하며 천재적이기까지 한, 그러면서도 도를 넘어서지 않는 장삿속에 존경심마저 든다. 그들은 시장을 정확하게 판단한다. ‘위스키가 많이 팔렸네. 그런데 너무 많이 팔렸다. 이거 손님들이 다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잖아? 아오, 홀은 또 왜 이렇게 후끈후끈해, 기분나쁘고 땀만 나게. , 그래. 지금이 딱 적기야. 야 알바야! 저기 구석에 있는 맥주 한 상자 가지고 나와라!’
 
냉동창고 구석에서 꺼내온 버드와이저와 같은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바의 냉동창고 구석에서 꺼내온 버드와이저와 같은 영화다. 미국적인 색채를 띄는 마블의 수퍼 히어로 영화들 영화 사이에서도 이 영화는 이질적이며, 미국적인 것을 넘어서서 미국을 위한 영화다. 이 영화는 미국인들의 1980년대에 대한 향수를 적극적으로 공략한다.

그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미국에서 마케팅을 시작할 때, 1980년대 풍의 포스터를 만들어 뿌린 것이다. 그리고 그 포스터 디자인 중 한 장은 노골적인 스타워즈 포스터의 패러디였다 한번 더 말해두지만 에피소드 1, 2, 3 말고 4, 5, 6! - . 스타워즈는 단순히 1980년대에 나온 영화 정도가 아니다. 아직까지 수많은 파생작품과 장난감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미국의 신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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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모든 신화는 이상향에 대한 제시를 하고, 이상향에 대한 제시를 하기 위해 이용되듯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역시 스타워즈를 이용하여 이상향에 대한 제시를 한다. 바로 우리, ‘미국1980년대가 그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스타워즈가 1980년대에 튀어나온 황당무계한 SF 영화일 뿐인 우리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감성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스타로드피터 퀼은 1980년대에서 날아온 냉동인간이다. 어린 시절 외계인에게 납치된 그는 쌔끈한 우주선을 타면서도 1980년대 음악을 듣고, 아직도 워크맨을 차고 다니며, 케빈 베이컨을 영웅으로 떠받들며 그의 1984년작 풋 루즈이야기를 누구에게나 하고 다닌다.

그는 고뇌하는 마블의 기타 영웅들 아이언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와 달리 지극히 쾌활하고 그늘이 없는 인물이다. 뭐 외계인에게 납치되고 어머니와 헤어지긴 했으나, 작 중 그 모습을 치부로 드러내며 화를 내거나 심각한 고뇌를 하는 장면은 단 한 장면도 안 나온다. 오히려 그는 가볍게 아랫도리를 휘둘러대며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도 춤을 추는, 만화에나 나올법한 인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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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는 그늘이 없다. 1990년대를 겪지 않은 그는 우울함의 극치인 포스트 모더니티의 마수를 피해 간 선택받은 쾌활한 행운아이자 우리 모두가 되길 바라마지 않던 이상적인 미국인인 것이다. 여자 밝히고 생각없지만 항상 문제는 해결하고 정의의 편에 서는 미국인. 무엇보다, 9.11 이라는 끔찍한 사태를 피해가고 심지어 끝내는 막아내기까지 한 그는 미국인들이 이상향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다.
 
현실 도피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영화의 가벼움에 대해 비판할 수도 있다. 맥이 끊기는 코미디 장면에 대해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비판에 대해 어깨를 으쓱 하다가 ‘Why so serious?’ 라고 반문한다. 이 대사를 유명하게 해 준,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의 ‘Why so serious?’ 와 달리, 그들의 반문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그 예 그대로이다. ‘진지 잡수셨냐, 왜 그렇게 진지해?’
 
미국의 대중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
 
이 영화에서 스타워즈 만큼은 아니어도 직접적으로 언급되며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영화가 풋 루즈라는 데에서도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풋 루즈는 청교도적인 마을에 춤을 좋아하는 소년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영화다.

이 가벼움과 차가움이 미국의 대중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낸 것이다악재가 끊이지 않는 날, 날은 덥고 습하기까지 하다. 이런 날 위스키를 마시라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런 날은 차갑고 톡 쏘는 맥주가 짱이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극단적으로 차가움과 톡 쏘는 탄산, 쉽게 넘어가는 목넘김에 의존하는 영화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다는 것인가? ‘Why so serious?’ 지금은 여름이지 않은가?
 
문제는 우리가 그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데에서 온다. 마시고 즐기자고 만든 맥주인데, 마냥 마시고 즐길 수가 없다는 게 문제다. 맛은 왜 이리 가벼우며 탄산은 왜 이리 강한 지. 역시 소주가 최고라는 결론이 나온 우리는 손에 손잡고 소주를 마시러 간다. 맥주는 뭐 이따가 봐서 소맥이나 만들어 먹지 뭐…….
‘7번방의 선물’, ‘해운대’, ‘명량등 우리만의 뽕끼에 대한 선호가 너무 강한 대한민국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흥행하기 어려운 요소들의 총 집합이다. 가벼운 테이스트, 미국식 유머, 무엇보다 대한민국에서 한 번도 성공해 본 적 없는 스페이스 오페라, 흔히들 SF 로 착각하곤 하는 장르.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그 맛을 처음에 잘 넘어가기만 한다면, 이보다 더 기분 전환에 제격인 오락 영화도 없다. 서두에 이 영화를 온전히즐기기 위해서는 미국인이어야 한다고 했지만, 뭐 한국인이 아니라고 양념 치킨 맛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온전히즐길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만원의 입장료가 아까운 작품은 아니다.
 
여름은 덥다. 끈적끈적하다. 이런 날 소주와 함께하는 회식은 죽을 맛이다. 느끼한 삼겹살 냄새가 올라오고 지쳐 죽어가는 사람들. 하루쯤은 조금은 어색하더라도 상쾌하고 시원하게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글 | 현문동 영화애호가

등록일
: 2014-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