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처음 만난 곳은 뉴욕 번화가 고급 레스토랑 조리실 이었다. 함께 조리실 운영을 책임진 파트너였다. 손님은 계속 밀려들었고 일손은 부족한데 서로 뜻이 맞지 않아 매일 옥신각신했다. 여자는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뉴욕에 와서 미술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남자는 20대 중반에 일본을 떠나 영국 등 세계 여러 나라 레스토랑을 주유하다가 뉴욕에 머물고 있었다. 고집불통 일본 남자와 까칠한 한국 여자의 평행선은 좁혀질 줄 몰랐다.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은 함께 서울에서 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다투기는커녕 서로 무척 아끼고 사랑한다. 심지어 집과 침대를 함께 쓴다. 푸드 아티스트 오정미(54) 씨와 요리 평론가이자 창작요리 연구가 스스무 요나구니(66) 씨다. 이들의 요리 아틀리에, <오키친>(OKitchen)을 찾아가봤다.
뉴욕을 놀라게 한 한국 출신 요리 예술가
뉴욕은 세계적인 예술의 도시이자 요리의 도시다. 1985년 뉴욕으로 건너가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 등에서 미술 공부를 했던 오정미 씨는
몇 차례의 개인전을 열면서 작가로서의 역량을 다졌다. 그런데 한 편에서는 요리에 대한 열망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은
유배지에서 예전 부잣집 도련님으로 잘 살았을 때 먹어봤던 산해진미를 떠올리며 ‘도문대작’이란 글을 남겼다. 이역만리 유학생이었던 오씨의 처지가
꼭 그랬다. 맛있는 음식을 돈 들이지 않고 먹는 방법은? 직접 요리를 하면 된다. 유학생 미술학도였던 오씨는 그래서 요리의 길로 접어들었다.
발령받고 조리실에 들어가 보니 음식 디스플레이가 엉망이었다. 조리사들은 그저 음식 조리 기술자였을 뿐 전혀 미적 감각을 고려할 줄 몰랐다. 오씨가 투입되면서 그곳 요리는 예술작품으로 변했다. 그녀의 실력을 제대로 알아본 것은 임원급인 총괄 매니저였다. 입맛 까다로운 뉴요커들이 깜짝 놀랐다. 소문은 퍼져나갔고 뉴욕타임스가 오씨의 작품(?)에 대해 보도했다. 오씨의 성가가 높아지자 ‘뉴욕의 요리 예술가’라는 제목으로 국내 일간지와 여러 매체에서 주목했다. 2000년대 초반, 그녀는 귀국 후 조선, 경향 등 일간 신문에 직접 요리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시간이 만든 인연, 시간이 만든 음식 '살루미'
오정미 씨는 우연한 기회에 스스무 씨가 도예와 설치미술 작가라는 걸 한참 후 알았다. 조리실을 벗어나면 그는 흙과 씨름하는 아티스트였던
것이다. 그때부터 서로의 작품세계에 빠지게 된 두 사람은 예술가적 동지이자 연인 사이로 관계가 반전되었다.
1999년 부부가 함께
이탈리아로 건너가 이탈리아 요리를 함께 배웠다. 그 후 2001년부터 국내에서 푸드스타일리스트와 전문 조리 인력을 양성했다. 당시 조리 실습에
필요한 공간으로 출발한 주방이 지금의 <오키친>이다. 처음에는 서울 가회동에서 시작해 이태원을 거쳐 지금은 광화문과 여의도 두 곳에
문을 열었다. 광화문점은 이탈리안 요리, 여의도점은 프랑스 요리 중심으로 운영한다.
출입구 밖 오른쪽 유리창 너머에는 날짜를 표기한 고기들이 보인다. 티본스테이크 숙성실이다. 여기서 한 달 이상 숙성시킨 티본스테이크(100g당 1만2000원)를 튀긴 감자와 함께 낸다. 생각과는 달리 곁들임 소스가 없다. 오씨에 따르면 고기 그 자체의 맛을 즐기기 위해 소스를 배제했다고 한다.
눈으로 먼저 먹는 다양한 생면 파스타
오씨는 요리의 매력에 빠져 직업 요리사가 됐지만 그의 본업인 미술가의 길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조선 후기 소반에 전통 민화를 그려 넣은
그녀의 설치 미술작품이 <오키친> 벽면과 천장을 장식하고 있다. 오씨의 창작 기법과 작품 세계는 몇 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다양한
소재로 다양한 기법을 동원해 다양하게 표현한다. 최근에는 정부 지원 하에 중견작가 자격으로 예술의 전당과 아르코미술관에서 전시회도 가졌다.
- 익힌 가지와 천엽 스튜, 뽀르케타, 살루미, 먹물스파게티, 밀푀유
그녀의 예술 본능은 요리에 그대로 적용된다. 광화문점은 이탈리아 요리 대부분을 망라했다. 이탈리아 본토의 웬만한 음식은 여기 다 있다. 소의 내장은 한국인만 먹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릴에 구운 가지와 천엽 스튜(1만6000원)도 나왔다.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천엽인 줄도 모르고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이탈리아에선 남자들이 좋아하는데 술안주로 주로 먹는다. 별별 음식이 다 있지만 이 집의 음식들은 이탈리아의 그것과는 조금 차이가 난다. 이탈리아 음식에 오씨만의 예술적 감각을 입혔기 때문이다.
오씨 부부의 수준 높은 요리와 명성에 비해 그들의 삶은 소박했다. 버스를 타고, 시장을 보고, 시간이 나면 작품을 구상한다. 큰돈 벌 욕심도 없다. 다만 오랜 화두였던 우주의 시작과 끝, 인간의 존재를 작품과 음식에 제대로 녹여내고 싶다는 열망이 있을 뿐이다. 식탁 위 둥근 접시와 사각의 목기는 하늘과 땅. 오정미 씨 부부는 오늘도 거기에 사람과 우주를 정갈하게 차려낸다.
<오키친> 서울시 종로구 종로1길 50 더케이트윈타워 B1 02-722-6420
기고= 글 이정훈, 사진 변귀섭 입력 : 2014.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