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붓 대신 손으로… 빛을 그리는 남자 -개인전 여는 화가 오치균

해암도 2014. 6. 9. 04:56

작년 공황장애로 다리에 마비 와… 절망 속 한 줄기 빛 화폭에 담아
어릴 때부터 가난에 시달렸지만 작품 값 가장 비싼 국내 작가 중 하나

"어서 들어오시죠." 작업실 출입문을 여는 작가의 왼손등에 호랑이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질 상체엔 속이 비치는 녹색 티셔츠가 착 달라붙어 있었다.

작품 밖 '인간' 오치균(58)은 그림으로 먼저 만난 '작가' 오치균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맞닥뜨린 부조화에 피식 웃음부터 났다. 전위예술가라면 모를까 오치균은 '점잖게' 작업하는 리얼리스트다. 손가락으로 물감을 짓뭉개 거친 질감으로 캔버스 위에 묵직한 감정을 표현한다. 진중하고 근엄한 그를 예상했다. 그런데 웬걸, 까딱하면 주먹 세계 '형님'으로 오해받을 상이다. 스스로도 "'21세기형 조폭 스타일' '동두천에 노래방 3개 운영하는 업주 스타일'이라고들 한다"고 자인했다.

11일부터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앞두고 마무리 작업 중인 작가를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실제 이미지가 작품에 누가 될까 봐 인터뷰는 꺼려왔다"는 그다. "(자신을 가리키며) 이런 인간 오치균을 집에 걸고 싶겠어요?" 그가 물었다. "아니요." 진심이 불쑥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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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서 전시에 걸릴 작품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오치균. 오른손 손가락엔 물감이, 왼손 손등엔 호랑이 문신이 보인다. 오치균은 녹색과 파란색이 섞인 작품 속 의자에 맞춰 녹색 티셔츠와 하늘색 바지로‘깔맞춤’을 하고 카메라 앞에 섰다. /김연정 객원기자
작가가 지난 1년 동안 공들인 작품을 모아둔 방에 들어섰다. 창문 옆 갓 쓴 램프, 의자에 올려둔 조명을 담은 그림들을 마주하니 겹겹이 쌓인 물감층에서 노르스름한 불빛이 번져 나오는 듯했다. 호기심에 조명을 꺼봤다. 그림 속 조명이 살아있는 광원(光源)처럼 빛났다.

빛은 오치균의 작품 전반을 흐르는 주요한 요소다. 시기마다 빛의 결은 달랐다. 1980년대 뉴욕 유학 시절 가난했던 자신의 삶을 투영했던 '인체' 시리즈에선 '처절한 빛'이 보인다. 귀국 후 그린 '감나무' 시리즈엔 '평화로운 빛'이 흐른다. 이번 작품에선 '따뜻한 빛'이 묻어난다. "지난해 하루는 일어나는데 무릎 아래가 안 움직이는 겁니다. 몇 달 동안 그 상태로 꿈쩍 못했어요. 공황장애로 마비가 왔던 거였습니다." 참담했던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작가는 작업실 한구석으로 스며든 한 줄기 빛을 마주한다. 어둠을 깬 보드라운 햇살. 그 희망을 화폭에 담았다.

건축가 최욱이 설계했다는 작가의 작업실은 화이트 큐브 형태의 갤러리처럼 깨끗했다. 6년간 썼다는데 흰 벽에 튄 물감 자국도 몇 안 됐다. 작업대 가까이 싱크대가 있다. 손으로 그리는 그가 하루에도 수백번 손을 씻기 때문이다. 오치균은 결벽증이다. 완벽주의자다. 일상에서도, 그림에서도.

작가는 가난과 작별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대전의 빈한한 농가에서 10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젖동냥으로 오치균을 키웠다. 그는 "어쩌면 문신과 근육은 콤플렉스 많고 여린 진짜 오치균을 가리기 위한 보호막 같은 것"이라 했다. 고학으로 서울대 미대, 미국 브루클린 미대를 다녔다. 유학 시절 세탁소에서 다림질하며 생계를 잇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1년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귀국전에서 '홈리스' '인체' 시리즈가 화단의 호평을 받으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생존한 국내 작가 중 가장 작품 값이 비싼 작가 중 하나가 됐다. 얼마 전 전두환 전 대통령 미납 추징금 환수를 위해 검찰이 압류한 장남 전재국씨 소장품 중에 그의 작품이 10여점 포함돼 있어 주목받기도 했다. "치열하게 그린 것 말고는 없어요. 전 친구도 없습니다."

오치균은 말했다. "아파 보니 더 또렷이 알겠더군요. 내게 그림은 생명이란 사실을. 죽는 날까지 그릴 겁니다. 끝까지, 혼신을 다해." 선글라스 너머 그의 눈이 빛났다. (02)732-3558
김미리 기자  입력 : 2014.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