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이태원 건강빵 전문점 ‘오월의 종’ 정웅 파티셰

해암도 2014. 6. 6. 13:22

시멘트 만지던 연구원 빵으로 건강을 빚다


합리적인 가격의 건강빵으로 일본인 관광객에게까지 입소문 난 곳이 서울 이태원의 ‘오월의 종’(정웅 파티셰)이다. 정 파티셰는 이스트가 아닌 직접 배양한 천연 발효종으로 빵을 만든다. 대표 품목은 호두와 건무화과가 잔뜩 박혀 있는 ‘무화과 호밀빵’과 묵직한 무게감을 자랑하는 ‘오렌지필 호밀빵’이다.
   
   크랜베리와 호두가 박힌 바게트도 갓 구워 낸 바삭함이 좋다. 건강빵이지만 프랑스산(産) 밀가루나 유기농 재료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소수의 애호가만이 아닌 누구나 편히 즐길 수 있도록 합리적 가격대를 유지하려는 생각에서다. 한정량 판매에 가격도 합리적이다 보니 오전 11시 오픈시간이면 가게 앞에 긴 줄이 늘어선다. 평일 오후 한두 시가 되면 빵이 떨어지기 일쑤다. 주말이면 그보다 더 빨리 떨어져 원성이 자자하다고 한다.
   
   정웅씨는 1968년 충남 공주생. 서울에서 초중고를 마치고 명지대(무기재료공학)를 졸업했다. ROTC 포병장교로 전역한 후 선택한 직장은 한 시멘트 회사의 연구실이었다. “평범한 직장인보다는 내 의지로 간섭 없이 살고 싶다는 욕망이 커졌어요. 그러다 사무실 건너편 제빵학원에 충동적으로 찾아갔죠.”
   
   제빵학원에 찾아간 정씨는 제빵 전문가 과정을 수강하려 했다. 하지만 “나이 제한으로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한참을 졸라서 겨우 제빵학원에 등록을 마쳤다. 하지만 32세에 시작한 제빵사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제빵학원 강사들보다 많은 나이였다. 제과점에 취업해서도 어린 동료들에게 따돌림당하기 일쑤였다. 그걸 이겨내는 길은 성실함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남보다 일찍 출근해서 더 열심히 빵을 구웠다. 그런 노력을 인정받으며 차례로 제빵기술을 익혀 나갔다.
   
   무작정 시작한 제빵일이었지만 매력을 느꼈다. 미래에 대한 확신도 생겼다. 결국 정씨는 2004년 5월 경기도 고양시 일산 행신동에 빵집을 열었다. 직원 4명으로 출발한 빵집은 적자가 이어졌다. 10개 만들면 9개가 남는 무화과빵이 아까워 모아뒀다가 크리스마스트리로 만들었던 서글픈 추억도 있다. 빵값으로 돈을 내는 대신 직접 기른 가지와 호박, 채소를 빵과 맞바꾸자는 할머니들도 많았다. 가게 한쪽에는 각종 자루 포대들이 쌓여 갔다. 개업 1년 만에 정씨 혼자만 남게 됐다. 정웅 파티셰는 “천연 발효종을 쓴 호밀빵을 내놨더니, 특유의 시큼한 맛이 났다. 이걸 상한 것으로 오해해 경찰에 신고당한 일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카드 5장으로 돌려막기 하며 버텨오던 첫 빵집은 그렇게 접고 말았다. 첫 사업을 통해 정씨가 배운 것도 있다. 우선 빵 종류를 크게 줄였다. 또 남이 좋아하는 빵이 아닌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들을 해나가며 자신만의 방식을 확립하게 된 것. 더욱이 그의 제빵 솜씨를 아까워하던 이들도 있었다. 정씨의 기술을 아껴 밀가루를 외상으로 장기간 배달하던 공급업자도 있었다. 결국 그의 솜씨를 아까워하던 지인 중 하나가 서울 이태원의 적당한 소규모 점포 자리를 좋은 조건에 소개해 줬다.
   
   그 덕에 2008년 새 빵집을 지금의 위치에 열었다. 흔히 볼 수 없는 건강한 재료의 빵은 이태원이라는 상권 영향 덕에 곧장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이태원 인근의 삼성그룹 광고계열사 제일기획 직원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인터넷을 통해 소문이 퍼져 나갔다. 일본인 관광객들까지 몰려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일본인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무슨 일인가 했어요. 옆 건물 2층에 짝퉁 명품가게가 있었는데 거길 들렀던 관광객들을 통해 일본에까지 소문이 났고, 일본 잡지에까지 제 빵집이 실렸다지 뭡니까.” 노력과 함께 행운까지 찾아든 셈이다.
   
   작은 크기의 1호점 인근 골목에 최근 큰 규모의 2호점 겸 제조실도 마련해 운영 중이다. 1호점은 대중적인 빵 위주로 단팥빵(1000원), 호두크림치즈빵(2000원) 등을, 2호점은 식사 개념의 건강빵 중심으로 판매하고 있다. 두 곳을 다 둘러보길 권한다.
   
   “빵을 만드는 과정이 좋아서 평생의 업(業)으로 삼았습니다. 제 대학 전공과도 통했죠. 흙을 빚고 구워서 단단한 자기를 만드는 것처럼 곡식을 빚어 만드는 빵도 가루와 물 그리고 불이 함께 만드는 작품이죠. 그러면서 건강을 첫째로 여깁니다.”
   
   자기(瓷器)와 빵, 둘 다 고온의 불과 화덕이 만들어 내는 예술이라는 점에 필자도 동의한다. 적어도 이 집의 빵을 놓고 보자면 말이다. 입안의 즐거움만으로가 아닌 ‘끼니’로서의 건강한 빵을 원하는 이들에게 권한다.
   
   오월의 종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229 (02)792-5561 일요일 휴무
   
박태순
   
   2003년부터 각종 포털과 매체에 독특한 관점의 음식 칼럼을 게재하고 있는 우리나라 음식 분야 정상급 파워블로거.
   blog.daum.net/gundown

박태순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