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日서 23년간 식당 운영 교포 한국에 와서 2년 만에 망했다

해암도 2014. 1. 15. 09:07

 



③ 일본 상인 vs 한국 상인

23년 대 2년.

이시영(44·여)씨는 일본에서 23년간 식당을 운영했다. 2011년 한국에 돌아와 경기도 화성시 동탄에 일식집을 차렸다. 일본에서 익힌 손맛과 손님 접대 노하우로 입소문이 났다. 장사가 잘되자 건물주는 1년 만에 임대료를 대폭 올리고 보증금 절반도 ‘원상복구비’ 명목으로 떼 가려 했다. 거절했더니 “나가라”는 요구와 함께 명도소송을 받았고 지난해 강제집행을 당했다.

일본에서 임차상인으로 23년간 탈 없이 장사했던 이씨, 한국에선 2년 만에 쫓겨났다.

망했던 점포, 맛집으로 만들었더니…

이씨는 장사로 잔뼈가 굵었다. 중학교 졸업 후 할아버지가 계신 일본으로 갔다. 식당을 하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어깨너머로 요리와 운영을 배우다 20대 초반 가업을 이었다. 직접 음식을 했는데 맛이 좋아 단골이 늘었고 점포를 4개까지 불리기도 했다. 어려서 살던 한국에서도 장사를 해보고 싶어졌다.

2011년 8월 지인의 소개로 동탄의 건물주(62)와 보증금 1억원, 월세 550만원에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계약기간은 1년이었다. 3층 점포인 데다 주차장도 좁아 여건은 별로였다. 전에 장사하던 중국집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갔다. 번번이 망하는 곳이란 소문을 이씨는 개의치 않았다.

몇 달 뒤 이씨의 일식집은 오산 수원 용인 등지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맛집’이 됐다. 조미료 대신 쓰는 천연 발효양념이 인기였다. “큰길 건너 대형 영화관과 우리 가게 앞을 잇는 횡단보도가 생길 정도였어요.” 이씨의 일식집은 상가건물 전체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건물주는 2012년 5월 월세를 800만원으로 올리고 보증금 중 4800만원을 원상복구비로 공제하겠다는 재계약 조건을 내밀었다. 이씨가 해놓은 인테리어를 언젠가 상인이 바뀌면 철거해야 할 테니 그 비용을 미리 떼겠다는 거였다.

거절하자 2개월 뒤 명도 소장(訴狀)이 날아왔다. 재판은 2013년 6월 건물주의 승소로 끝났다. 곧 강제집행 집달관이 와서 이씨는 쫓겨났다. 그는 “이렇게 되면 내가 투자한 시설로 건물주가 직접 장사하거나 다른 상인에게 넘겨 (시설)권리금을 챙긴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듣고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화가 난 이씨는 3억원을 투자해 갖춰놓은 가게 시설물을 망치로 부쉈다. 건물주에게 재물손괴와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당한 상태다. 그는 “한국에서 장사한 2년은 지옥 같았다”고 말했다.

일본에선 상식…한국선 통하지 않았다

이씨의 남편도 얼마 전 암 수술을 받기 전까지 일본에서 장사하던 사람이다. 28년 동안 한 건물에서 건물주와 별 갈등 없이 지냈다고 한다. 일본에서 이씨가 운영했던 식당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하던 식당도 그랬다. 평생 일본에서 장사한 이씨의 상식은 ‘아무리 건물주라도 임차상인을 함부로 내쫓지 못 한다’는 거였는데, 이 상식이 한국에선 통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말들을 쏟아냈다.

“일본에선 1년 계약을 해도 임차인이 하고 싶을 때까지 장사할 수 있어요. 월세 못 내면 소송을 당하는데 임차인 나가라는 명도 소송이 아니라 월세를 언제까지 낼지 다투는 소송이에요.”

“한국에선 건물주가 왕이더라고요. 가게에 와서는 목에 힘주고 ‘장사 잘돼요?’라고 해요. 일본에서 만난 건물주들은 ‘힘드시죠. 감사합니다’라고 했어요. 남편 가게 건물주는 경기가 나쁠 때 먼저 전화해서 ‘임대료가 비싸지 않나요? 조금 싼 옆 점포로 옮겨드릴까요?’라고 물은 적도 있어요.”

“일본 상인들은 개업해서 바로 장사 잘될 거란 생각 절대 안 해요. 그래서 법도 오래 장사하게 보장해주니까 오래된 가게들이 많아요.”

“경기가 나빠지면 자영업자의 파산이 늘고 그러면 나라 경제에도 안 좋잖아요. 일본은 1991년에 경기가 나빠지니까 임차인을 보호하는 법을 만들었어요. 한국도 지금 경기 안 좋고 자영업자는 많은데….”

일본의 차지차가법과 권리금

이씨가 말한 일본법은 차지차가법(借地借家法)이다. 이 법은 임차상인을 약자로 본다. 일단 임대차 계약이 체결되면 건물주 마음대로 조건을 바꾸거나 해약하기 어렵게 돼 있다.

계약 기간이 만료돼도 건물주는 ‘정당한 사유’를 제시해야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 정당한 사유도 건물 붕괴 우려 등으로 엄격히 제한되며 서류로 입증해야 한다. 아예 계약 기간을 정해놓지 않는 형태의 계약도 인정된다. 반면 임차인은 장기 계약을 했어도 장사가 안 되면 언제든 계약을 끝낼 수 있다.

이씨는 동탄에서 개업할 때 다행히 권리금 없이 계약했다. 이전 상인이 망하다시피 했기에 가능했다. 이씨는 “만약 권리금이 물려 있었으면 건물주 요구대로 임대료 올려주며 장사해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도 권리금 관행이 존재하지만 개념과 형태가 조금 다르다. 시설·영업권리금은 임차인 간에 오가는데 바닥권리금은 건물주가 받는다. 임차상인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장사할 권리 등을 강하게 보장받는 대가로 건물주에게 주는 일종의 프리미엄이다.

토지+자유연구소 조성찬 연구위원은 “지역·업종마다 차이는 있지만 일본은 건물주가 계약 때 바닥권리금을 받기 때문에 임대료 인상 유혹이 상당 부분 억제된다”고 말했다. 또 일본의 임차상인은 도시 재개발 등으로 불가피하게 점포가 폐쇄될 때 휴업보상비와 이전비 외에 단골 감소 손실까지 보상받는다. 상인이 그 점포에서 창출한 무형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특별취재팀=태원준 차장 이도경 박세환 기자    국민일보 2014-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