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노벨상 수상 머튼 교수가 말하는 은퇴자금 마련

해암도 2014. 1. 12. 08:56

목표소득 달성했다면 위험자산 투자 줄이고 안전자산 비중 높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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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할 때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부를 쌓는 것이 아니라 은퇴 전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로버트 머튼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는 은퇴 준비에 앞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은퇴를 준비하는 과정은 무조건 높은 수익률을 거둬 많은 자산을 축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상 우리가 은퇴를 두려워하는 이유를 따져보면 고정 수입이 사라지면서 은퇴 이전보다 생활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은퇴 후 원하는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소득이 어느 정도 필요하는지를 정하는 게 은퇴 준비의 첫걸음이라는 뜻이다.

머튼 교수는 "목표하는 소득을 ’보수적인 목표’와 ’희망하는 목표’의 두 가지로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현재 연소득이 8000만원이고 은퇴 후 희망하는 소득대체율이 70%라면 ’희망하는 목표소득’은 연 5600만원이 된다. 이 중 2000만원이 확정급여형(DB형)연금과 국민연금으로 충당된다면, 나머지 3600만원은 확정기여형(DC형)에서 투자를 통해서 만들어야 한다.

’보수적인 목표소득’은 현재 저축하는 금액과 은퇴 시기를 고려했을 때 96% 확률로 달성이 가능한 목표를 말한다. 예를 들어 월 30만원씩 저축해 60세에 은퇴한다고 했을 때 이를 안전 위주로 투자한다고 해보자. 이 경우 은퇴 후 연 1000만원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보수적인 목표소득은 연 3000만원이 된다. 희망하는 목표소득과의 차이 2600만원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저축금액을 늘리거나 아니면 안전 위주 투자에서 벗어나 주식투자 비중을 늘려야 한다. 이처럼 최소한의 보수적인 목표를 잡아놓고 희망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저축하고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머튼 교수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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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튼 교수는 일단 은퇴 후 희망하는 목표 소득을 달성하게 되면, 주식을 비롯한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를 전부 줄이고 안전자산에만 투자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은퇴 자금을 마련하는 목표가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리스크에 노출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100-나이’의 법칙이나 ’공격투자형인지 위험회피형인지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비판했다. 머튼 교수는 "사람마다 자산 축적 속도와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개인별로 맞춤형 투자가 필요하다"며 "주식시장이 잘 되면 공격투자형이 되고 주식시장이 폭락하면 위험회피형이 되는 것이 사람의 투자성향"이라고 비꼬았다.

머튼 교수는 "투자자들은 ’중요한 정보’가 아닌 ’의미 있는 정보’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자동차엔진의 압축비율은 연비를 결정하는 중요한 정보이지만, 이걸 딜러가 고객에게 말해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을 몇 대 몇 비율로 해야 하는지도 고객에게는 의미 없는 정보"라고 설명했다.

고객에게 유용한 정보는 내 현재 소득과 은퇴 예상 시기, 내가 원하는 목표소득과 같은 정보를 제공했을 때 내가 목표소득을 얻기 위해선 ’얼마를 저축해야 하는지’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와 같은 정보라는 것이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개인은 더 저축을 할 것인지 아니면 목표 소득을 낮출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머튼 교수는 "이렇게 은퇴 후 목표 수입을 정해놓고 개개인에 맞춤화된 은퇴 계획을 짜면 자연스럽게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의 배분이 된다"면서 "인생에서 중대한 변화가 생기면 그에 따라 동태적으로 조절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은퇴소득을 얻기 위한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다"면서 "더 오래 일하거나, 더 저축하거나, 더 많은 리스크를 감당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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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튼 교수는 4가지 단계로 나눠 은퇴 후 소득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확정된 수입을 통한 준비다. 연금저축이나 공적연금, 확정급여형을 통해서 얻는 소득이다. 두 번째는 보수적인 목표 하에서 얻는 소득이다. 은퇴자에게 유동성을 제공하거나 유산으로 남겨주기 위한 목적의 소득이다. 세 번째는 희망소득이다. 이 소득은 은퇴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 사용하기 위한 소득이다. 마지막으로 장수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한 장수보험이 있다.

장수보험은 85세 이후 소득을 보장하는 보험이다. 머튼 교수는 "사람들은 장수하고 싶어하지만 반대로 자기가 보유한 자산보다 더 오래 사는 것을 두려워한다"면서 "장수 리스크에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연령 조정 연금이 있는데 연금을 넣어도 85세 이후부터 지급되고 그 이전에 사망하면 한푼도 받지 못하는 상품"이라면서 "이런 보험 성격의 연금을 통해 장수 리스크에 대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개별맞춤화된 은퇴계획은 왜 필요한 것일까. 머튼 교수는 지금의 확정급여형 연금제도가 계속 유지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머튼 교수는 "지난 10년간 퇴직연금은 확정급여형에서 확정기여형으로 바뀌는 것이 전 세계적인 트렌드"라고 진단했다. 고령화와 장수에 따라 근로자의 노후를 보장하는 것이 기업에 막대한 부담이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아는 모든 최고경영자(CEO)들은 기업 경영을 하는 리스크보다 연금 리스크를 끌어안고 가는 것을 더 두려워 한다"고 설명했다.

머튼 교수는 "직원 입장에서 보면 확정급여형은 내가 급여를 얼마나 받는지 외에는 다른 것을 알 필요 없었는데, 확정기여형이 되면서부터는 투자 결정을 책임지게 됐다"면서 "이를 개개인이 결정하기는 너무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은퇴 후 재정계획을 짜는 것을 외과의사가 수술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비유했다. 그만큼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머튼 교수는 디폴트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디폴트 제도란 연금 가입자가 별도 선택을 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정해 있는 계획에 따라 투자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확정기여형에서는 개인이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디폴트 제도가 아주 중요하다"면서 "대부분의 디폴트 제도는 투자 비중을 나이를 기준으로 해서 기계적으로 투자하도록 되어 있어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디폴트 제도에서도 머튼 교수가 설명했던 것처럼 개인별 맞춤형 연금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머튼 교수는 한국의 역모기지론(주택연금)에 대해 극찬했다. 그는 "한국의 역모기지론은 은퇴자에게 축복"이라면서 "이것이 없는 나라도 있는데 이를 은퇴자에 맞게 제대로 설계하면 더 좋은 제도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머튼 교수는…

1944년 7월 31일 미국 뉴욕에서 출생했다. 1966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공업수학을 전공한 뒤, 1967년 캘리포니아공과대학을 거쳐 1970년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로 일하고 있다. 1997년 주식 옵션과 다른 파생상품의 가치 측정 공식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블랙-숄스 방정식’으로 유명한 마이런 숄스(Myron S Scholes) 교수와 함께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 <용어 설명>

▷확정급여형(DB) : 회사가 직원의 연금을 운용해 퇴사할 때 미리 계산된 급여를 지급하는 구조의 퇴직연금.

▷확정기여형(DC) : 회사가 정해진 만큼의 기여분을 매달 연금계좌에 넣어주고 개인이 이를 운용해 자금을 불리는 구조의 퇴직연금.

[이유섭 기자 / 이덕주 기자] 2014.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