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사슴, 소 등 우제류, 새나 새알 등 먹는 경우 있어
미친게 아니라 부족한 영양분 보충하려는 것
우제류 중 돼지는 아예 잡식성으로 진화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 디즈니 만화 밤비의 주인공.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대명사…. 우리가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사슴의 이미지는 이렇게 연약하고 아름답습니다. 이 이미지를 확 깨버린 사슴의 동영상이 지금 미국을 달구고 있습니다. 질겅질겅, 쩝쩝, 찹찹… 흰꼬리사슴 한 마리가 보기만 해도 찰지게 씹어먹는 먹방 동영상인데요. 우선 보실까요? 미국 아웃도어 매거진 ‘아웃도어 라이프’ 등에 소개된 동영상입니다.
사슴도 먹고 자고 싸고 흘레붙으며 본능을 발산하는 동물이니 언제든 먹방이 가능할 겁니다. 그런데 이 먹방에서 사슴이 질겅질겅 씹는게 다름 아닌 뱀이었습니다. 텍사스주에서 트레이 라인하르트라는 사람이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린 동영상은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동영상 속 흰꼬리사슴은 자동차 속 촬영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흠칫 뒷걸음질을 하는가 싶더니 계속 씹기에 열중합니다. 이 사슴의 입에 물려있는게 뱀의 몸뚱아리라는 걸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이렇게 찰지게 씹는 이빨안에서 비늘과 뼈와 가죽과 살은 뭉개지고 짓눌리면서 곤죽이 됐을 겁니다. 한번 씹을 때마다 체액이 즙처럼 쪽쪽 목구멍으로 넘어갔을 거고요. 사슴은 오로지 풀과 나뭇잎만 씹어먹는다는 통념을 단박에 날려버리는 이 동영상 속 주인공은 살짝 돌은 걸까요?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육식 본능이 있는 걸까요? 사슴을 오랫동안 지켜본 이들은 주저하지 않고 후자라고 답합니다.
이 동영상을 입체적으로 분석한 미국 잡지 ‘아웃도어 라이프’ 기사 내용을 소개합니다. 전미 사슴 협회의 매트 로스 국장은 드물긴 하지만 사슴이 육식을 하는 사례가 있었다고 단언합니다. 아주 극소수이긴 하지만 작은 산새나 새알이 사슴 식단에 오르기도 한다는 겁니다. 사슴이 사냥당하거나 병 등으로 죽은 다른 동물의 사체를 먹는다는 사례도 보고돼왔습니다. 이렇게 사슴이 사체를 먹는 동물 중에는 인간까지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슴의 육식 장면을 포착한 다른 동영상(Linda Loo Youtube) 보실까요?
이 동영상이 다소 충격적인 것은, 이미 죽은 몸뚱아리가 된 뱀의 사체를 먹는게 아니라, 사슴이 먼저 적극적으로 새를 ‘사냥’했다는 점입니다. 먹잇감으로 희생당한 녀석은 아마도 날갯짓이 서툰 어린 새로 보입니다. 사슴이 성큼성큼 잔디밭을 걸어들어갈 때 사슴 뿔 언저리에서 다급하게 날갯짓을 하던 새들은 아마 부모새로 보이고요. 이들은 사슴이 자기 새끼를 먹잇감으로 노리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모양입니다. 단번에 낚아채 잘근 잘근 씹은 뒤 목구멍으로 꿀떡 넘겨버리는 모습은 사자 못지 않은 사냥꾼의 모습을 연상케도 합니다.
평생 풀만 뜯으면서 살것 같은 이 짐승들은 왜 이처럼 포식자로 돌변하는 걸까요? 이는 영양 균형 섭취의 일환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말합니다.실제로 사슴을 포함해서 일부 초식동물들은 비타민D나 칼슘 등 특정 양분이 부족할 경우 새의 새끼나 토끼 등을 먹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다소 섬뜩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본능적으로 식단을 조절할 수 있도록 돼있는 것이죠. 로스 국장은 “이 사슴은 허기가 져서 굶어죽지 않기 위해 뱀을 씹어먹는게 아니라, 뱀의 맛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뱀의 몸뚱아리에서 풍겨나오는 풍미가 사슴의 취향을 자극했을 수 있다는 것이죠.
사슴은 우제류입니다. 짝수의 발굽을 가진 이 무리에는 가축으로 친숙한 소와 돼지를 비롯해 영양, 낙타, 하마, 기린, 사슴까지 실로 정말 다양한 무리들이 포진돼있어요. 주목할만한 건 이 중 다른 짐승을 잡아먹는 무리들이 집중 포진돼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돼지의 경우 영양분이 부족할 때 이따금씩 먹는게 아니라, 아예 고기와 풀을 함께 먹는 잡식성 동물로 발전했습니다. 오늘날 집돼지의 조상 격인 멧돼지의 경우 새와 알은 물론 뱀과 개구리, 물고기, 설치류까지 잡아먹는 사실상의 맹수입니다. 가축인 소도 이따금씩 살아 움직이는 먹잇감을 사냥하는 장면이 포착됩니다. 밧줄에 묶여있는 소가 병아리를 잡은 뒤 아작아작 씹어먹는 동영상(Navomiya Productions Youtube)입니다.
우제류는 전세계 곳곳에서 정말 다양한 형태로 적응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북미의 사슴, 아프리카의 하마, 안데스 고원의 라마까지 모두가 같은 ‘소의 패밀리’지요. 이들이 이렇게 번성하는 기저에는 통념을 와장창 깨뜨리는 극강의 환경적응력도 한 몫 하지 않았을가 싶습니다. 이따금씩 뱀의 육즙을 빨아먹고, 새 몸뚱이의 아삭한 식감을 즐기는 식성이 그 징표이기도 하고요.
정지섭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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